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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3 조회수3,016 추천수2 반대(0) 신고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요한16,16-20)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합니다. 평생 이별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한다 해도 때가 되면 이별을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사랑의 관계가 참되었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잠시 잠깐의 만남을 기뻐하고 어떤 이는 좀 더 오랜 만남을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기왕이면 떠날 때 떠나더라도 가슴에 남는 만남을 이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16,16. 20). 하고 말씀하시며 세상을 떠나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게 됨을 제자들에게 거듭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자들은 십자가에 무참하게 처형된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직접 겪은 후에야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조금 있으면...‘보지’ 못하고...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앞의 ‘보다’는 ‘테오레오’라는 단어로 구경거리를 보는 일차적 의미를 지니고 뒤의 ‘보다’는 ‘호라오’라는 단어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본다는 이차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시선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다음에 수용하겠다는 것도 꼭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머리가 아니라 먼저 가슴으로 따르고 비로소 논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알아듣지 못해도 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그때 아는 것은 이미 있었던 진리를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 제자들은 함께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 합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우리 앞에 놓인 힘든 일은 그만큼 큰 기쁨이 숨겨져 있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스승과 깊은 신뢰를 쌓고 스승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스승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참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승은 많이 알아서 스승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어서 스승입니다. 지금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심을 믿고 여기서 기쁨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진통이 끝난 뒤 반드시 새로운 기쁨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매 순간 그분께서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을 선택하게 될 때 주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신앙여정도 한결같이 좋기만 할 수도 없고, 한결같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기쁨을 희망하는 만큼 아픔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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