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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요일(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3 조회수2,489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마티아 사도는 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뽑힌 인물로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유다의 자리를 넘겨받는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 온다.

 

 

1독서<마티아가 뽑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15

그 무렵”(직역하면 이 날들에”)이란 막연한 표현은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나온다. 여기서는 문맥상 예수승천과 성령강림 사이의 어느 날을 가리킨다.

백이십 명은 열두 사도와 관련된 수이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도 연결된다. 성령을 받아 창립된 교회는 옛이스라엘 열두 지파와도 연결된다. 성령을 받아 창립된 교회는 옛 이스라엘 백성을 계승한 새 이스라엘이라는 사상이 은연중에 들어 있다 하겠다.

 

다른 견해도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정네 120명이 있어야만 지방의회를 구성해서 합법적 의결을 할 수 있었는데, 루카는 마티아를 뽑은 절차가 합법적이었음을 강조하려고 12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16

이스라엘에서는 혈연을 중시하여 친동기, 친척, 동포를 형제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인연을 중시하여 혈연에 상관없이 서로 형제로 통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중용한 사건을 당하면 구약성서에 미리 예언된 바 있다고 풀이했다. 먼저 사건이 있고 나중에 구약성서에서 그에 알맞은 예언을 찾아냈던 것인데, 이를 두고 사후예언이라 한다. 이는 이 세상 만사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하느님의 뜻은 성서의 말씀을 통해 드러난다는 유다교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16절에서 루카는 유다의 비참한 말로와 유다 대신 마티아의 선발 사건을 다윗이 지었다는 시편의 예언이 실현된 것으로 풀이한다.

 

20

20절 전반부는 시편 69.26의 인용문이고 후반부는 시편 109.8의 인용문이다. 파피아스는 전반부에 인용된 시편 69.26의 예언이 들어맞아 유다가 죽어서 묻힌 토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땅이 되었다고 한다. 마태27,9-10에선 시편을 인용하지 않고 그 대신 즈카11,12-13과 예레 32.6-9를 인용한다.

 

21-22

21-22절에는 루카의 사도관이 잘 드러난다. 사도들은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의 승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공적 활약상 전부를 목격한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평소에 예수를 따랐던 열두 제자만이 사도 자격이 있다. 사도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증언할 임무가 있다. 특히 그분의 부활을 증언할 임무가 있다. 사도직은 지배하는 직분이 아니고 주님과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봉사직이다.

 

이 가운데 부활을 증언하는 임무가 가장 중요하다. 루카의 신학은 예수 부활에 초점을 맞춘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다리로서 유다인 선교신학의 근본이다. 사도행전 뒷부분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다.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지만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예수의 부활이 결코 죽은 이들의 부활 사상을 지니고 있는 유다교의 전통에 어긋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23

요셉의 별명 바르사빠는 사빠의 아들 또는 사바르에서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별명 유스도는 라틴어 유스투스(의인)의 음역이다.

 

26

후보자들에게 제비를 주지 않고,후보자 이름이 적힌 제비 둘을 통에 넣고 흔든 다음에 먼저 뽑은 제비에 적힌 후보자를 사도로 삼았을 것이다.(레위16,5-10참조)

 

 

 

복음<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9

예수는 자기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은 그 사랑으로 제자들을 선택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예수에게 받은 사랑의 삶을 살아 예수의 뜻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 제자들은 참으로 예수의 제자임을 드러내 보이고 증언함으로써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문다.

 

10

예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예수의 사랑안에 머문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예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에 근거하고 예수의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킨 것은 동시에 제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된다는 뜻이다.

 

11

이것들은 예수의 비유말을 가리키고 이제 그 비유말이 끝났음을 시사한다.

기쁨은 예수와 결속되어 있고 제자들에게 선사된 것이며 예수와 함께한 공동체 안에서 가득 찰 수 있는 종말론적 기쁨이다. 그리스도의 현존과 더불어 주어지고 체험되는 기쁨이므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이다(16.22 참조).

 

12

예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그의 사랑 안에 머물게된다는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 계명들서로 사랑하여라는 하나인 계명으로 요약된다. 이 사랑의 계명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예수의 참된 제자임을 드러내는 핵심 계명이며 예수가 제자들을 사랑한 모범적 사랑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 사랑의 계명은 9절에도 설명한다. 즉 예수를 통해 이미 제자들에게 드러난 사랑에 근거한 계명으로 강조된다.

 

13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사랑의 최고 실증이라는 일종의 격언이다. 이말은 14-15절에 연결되어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가 친구관계로 설명된다. 문맥상 예수의 사랑을 가장 값진 친구 사랑으로 시사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예수의 헌신적 사랑을 모범으로 제시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그런 사랑을 실천할 준비를 갖추도록 촉구하는 의미도 지닌다.

 

14

예수를 본받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의 친구가 되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 친구라는 칭호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가 명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동기가 된다.

 

15

예수와 제자들의 새로운 관계를 시사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자기 앞에서 으로만 여겼던 제자들을 친구로 생각하게 이끌고 동시에 그런 관계를 선사한다.

제자들은 예수가 행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선택되었을 때 이미 예수의 친구였다는 뜻이다. 즉 예수는 제자들을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강압적인 주종관계가 아니라 자유롭고 선의에 가득 찬 친구관계로 선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우정관계의 주도권은 예수에게 있다.

예수는 아버지에게 들은 모든 것을 제자들과의 우정관계 속에서 계시했고 또한 아버지의 사랑도 전달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계시는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관계로 머물도록 자유롭게 한다.

 

16

예수의 주도권을 시사하고 동시에 제자들에게 예수와의 우정관계가 선물임을 일깨운다.

제자들의 임무수행을 파견사상의 맥락에서 언급한다. 이 임무수행은 예수에게 무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의식에서 솟아나고 예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떠나)가서 열매를 맺는다란 표현은 문맥상 예수 안에 머물러 열매를 맺으라는 말을 회상토록 촉구하는 뜻이다. “그 열매가 남아 있다란 예수 자신과 그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맺은 열매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예수와의 결속관계에서 아버지께서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그 청을 들어주신다는 확신과 약속이다.

즉 예수는 제자들에게 “(언제자) 남아 있는 열매를 원하고, 제자들의 그런 간청은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고 약속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제자들이 열매를 맺도록 예수 자신도 함께하다는 것을 뜻한다.

 

17

12절이 거듭 강조된다. ,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도록 당부한 예수의 훈계 또는 경고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 안에 머물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비유말이 제자들을 친구로서 사랑한 예수의 사랑을 그들도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로써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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