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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9-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4 조회수2,414 추천수0 반대(1) 신고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9-17)

 마티아 사도를 선발했던 보궐선거, 무슨 의미였을까... 

 

1독서<마티아가 뽑혀사도가 되었다.>(사도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화답송 시편 113(112),1ㄴㄷ-2.3-4.5-6.7-8(◎ 참조)

◎ 주님은 그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셨네◎ 알렐루야.

○ 찬양하여라주님의 종들아찬양하여라주님의 이름을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이제부터 영원까지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드높은 곳에 좌정하신 분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귀족들과당신 백성의 귀족들과그를 한자리에 앉히시네

 

복음<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서로 사랑하여라.”

 

 ♡5월 14일·오늘의 성인 ▷ &apos; 성 마티아 &apos;/사도, 순교자사도 마티아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제1독서 (사도1,15-17.20-26)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그러고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21~26)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공생활은 승천으로 마감된다.

가리웃 사람 유다로 인한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사도의 후보로 오른 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천거된 요셉과 마티아의 이름이 복음서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은 놀랍다.

 

이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마치 일지를 적는 것과 같이 있는 그대로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고성령의 역사에 의해 자신의 공동체에 꼭 필요한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요셉이나 마티아는 그 동안에는 특별하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열 두 사도의 일원이 되기 위한 두가지 조건을 이야기 한다두 가지 조건은 바로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을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21~22).

바로 이 두 가지가 그리스도교 역사상 단 일회적 사건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가리옷 사람 유다를 대신할 사도에 선출되기 위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기존 사도들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사람을 사도로 선출하기 위하여 최대한 기존 사도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예수님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를 사도로 뽑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조건들은 열 두 사도의 일원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 이라기보다는 충분조건으로 봐야 한다왜냐하면 사도 바오로는 두 번째 조건 밖에 충족시키기 못했음에도(1코린15,8) 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에페1,1).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예수님께서 기적이나 치유를 포함한 여러가지 활동을 행하신 목적은 사람들을 고치고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함께 하는 제자들로 하여금 보고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 제자들을 직접 현장 학습시키신 것이다본절은 인격적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끼리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는 의미의 히브리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신명28,6; 1사무29,6).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예수님을 아는 정도가 아니고그분과 함께 동고동락하여 그분과 인격적 고통을 나누었던 사람이어야 한다오늘날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거나 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했다던가 아니면 교회안에 어떤 직책이나 감투를 쓰고 있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과 개인적 묵상(기도)을 통해 직접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고서는 제자가 될 수 없을 뿐더러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일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가리웃 사람 유다를 대신하여 새롭게 사도의 일원이 된 사람의 사명이 명시되고 있다즉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사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말 속에는 이미 인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난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신실한 선포자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바르사빠스'를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Bar)와 '안식일'이라는 뜻의 '사빠스'(Sabbath)의 합성어로 보면이것은 '안식일의 아들'이라는 뜻이다아마도 그가 태어난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인 '요셉'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유스투스'는 '의로운 자'란 뜻을 지닌 라틴식 이름이다초대 교회 당시에는 필요에 따라 히브리식 이름에 그리스식이나 라틴식 이름을 더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마티아'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히브리식 이름이다니세포루스에 의하면그는 이디오피아에서 선교 활동을 했으며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그리고 에우세비우스에 의하면마티아나 요셉은 모두 루카 복음 10장 1절에 나오는 70인의 예수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이렇게 기도하였다.' 새로운 사도를 뽑기 위해서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행한 것은 기도하는 일이었다.

 

'기도하였다'로 번역된 '프로슉사메노이'(prosuksamenoi)동사의 주어가 3인칭 복수란 사실은 그들이 이 한가지 문제를 놓고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도를 충원하는 제비뽑기에 있어 단순히 사람의 뜻을 배제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고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서 기도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쉬 키리에 카르디오그노스타 판톤; sy kyrie, kardiognosta panton) 직역하면 '당신은주여모든 이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이다.

여기서 2인칭 단수 대명사 ''(sy)와 호격 '퀴리에'(kyrie; 주여), 그리고 '마음을 아시는'에 해당하는 남성 단수 호격 '카르디오그노스타'(kardiognosta)는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이러한 중복적 호칭을 사용한 사실을 통하여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일에 있어서 마르코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이 얼마나 신중하게 하느님의 뜻을 물었는지 알 수 있다.

 

한편본문은 하느님께서 요셉과 마티아의 마음속을 아시므로두 사람 중에 어떤 이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도로 더 적합한 사람인가를 아신다는 제자들의 신앙 고백이다이런 고백은 구약 성경에 기초한 것으로서 시편 139장 13,14절에 나오는 대로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고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가 어떤 자인 줄을 아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주님께서 뽑으신'에 해당하는 '엑셀렉소'(ekselekso)의 원형은 예수님께서 처음에 12제자들을 택하신 경우를 묘사한 2절의 '그의 택하신'에 해당하는 '엑셀레사토' (ekseleksato)의 원형과 동일한 '에클레고마이'(eklegomai)이다.

이 단어의 변형들이 사용된 용례를 보면마르코 복음13장 20절에서는 세말에 구원받을 '택하신백성에 대해루카복음 6장 13절에서는 산에서 열 두 제자를 택하셨을 때에루카복음 9장 35절에서는 하느님의 아들로 '간택을 받은'자인 예수님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즉 '에클레고마이'는 구원을 베풀기 위한 하느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단어이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할 사도가 될 사람을 뽑으면서도 자신들의 판단에 의지하기보다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존하였음이 이 단어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다.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리 이 직무곧 사도직의 자리를'

사도행전 저자는 죄를 짓고 죽음을 택한 유다의 운명(제 갈 '')과 이제 그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도로 선출된 자의 '직무'를 동일한 단어인 '톤 토폰'(ton topon)을 사용해 공간적 이미지화하여 표현함으로써 비교의 효과를 높였다따라서 본문의 경우 '직무'라는 단어 대신에 '자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한편 후일에는 봉사와 사도의 직무 중에 봉사의 직무는 새로 만들어진 부제들에게 위임되었다(사도6,3.4). 그래서 '사도'로 번역된 '아포스톨로스'(apostolos)가 사도직을, '직무'로 번역된 '디아코니아스'(diakonias)라는 용어 자체가 부제직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예수님을 은 삽심에 팔아넘기고 자살했던 유다의 최후에 대한 본문의 묘사는 매우 문학적이다.

'제 갈 곳'은 유다의 최후의 운명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다음과 같은 대상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지옥이다둘째그가 죽은 장소이다셋째그가 예수를 버리고 배반한 행위 자체이다.

위의 견해들이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첫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왜냐하면 위의 세 가지 중에 어떤 경우를 택한다고 할지라도사탄의 사주를 받아 (요한13,27~30) 예수님을 판 자의 최종 도착지는 지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제비를 뽑게 하니'

(에도칸 클레루스 아우토이스; edokan klerus autois; they gave forth their lots; they cast lots) 제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사용하였다제비뽑기는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방법이다(레위16,7~10; 1사무10,20).

23절을 보면당시 모인 120명의 사람이 요셉과 마티아를 추천했지만이렇게 추천하는 일은 그들의 주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21절과 22절의 조건에 부합된 사람을 고르는 객관적인 작업이었다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천한 두 사람을 두고 하느님께 기도한 뒤에 제비뽑기를 통해 마티아를 사도로 뽑았으므로이일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해진 것이다.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분을 증거하는 일을 할 사람을 성자 하느님께서 친히 뽑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또한 '뽑다'로 번역된 '에도칸'(edokan)의 원래 의미는 '주었다'(gave)이고좀더 문맥에 맞게 번역하자면 '던졌다'(drew)이다.

'그들에게'라는 뜻의 '아우토이스'는 번역에서 제외되었다이런 의미들을 살려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그들에게 제비를 던졌다'이다.

 

본문의 의미가 120명 가량되는 무리가 두 사람을 위하여 제비를 던졌다는 것인지아니면 두 사람이 스스로 제비를 던지게 하였다는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제비뽑기는 두 사람의 이름을 적은 표식을 그릇에 집어넣고 세게 흔들어서 튀어나온 것에 적힌 이름을 가진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제비뽑기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도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지만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무조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교회가 천거하는 사람들이라면제비를 뽑아 어떤 사람이 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제비뽑기가 행해지지 않았고또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도 이 방법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앞뒤의 정황을 살펴보면신약시대의 제비뽑기는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의 강림 사이의 공백기에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임시적으로 사용된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본문의 제비뽑기의 방법을 오늘날의 모든 의사 결정에 항상 사용하여야 하는 절대적 방법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2016년 5월 14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성 마티아 사도 축일)

 성마티아 사도 축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느님처럼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당신의 목숨까지 내주신 사랑입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그 뜻을 거스르는 가지들을 들어 올리시고가지치기를 하셨듯이 그 같은 사건들이 일어날 때우리는 주님을 원망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머물지 못하고 의심합니다그러면서 떨어져 나가는 이도 있습니다그때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십니다.

그 가지치기가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히브12,5-6. 10)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구원의 나무로 사랑하셨고예수님은 당신의 가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믿는 것사랑 안에 사는 것입니다하느님 나라의 완성인 구원의 일에 동참 시키는 그 사랑입니다.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계명은 주시는 분의 뜻이마음이 새겨져 있습니다그래서 계명을 말씀과 동일하게 하셨습니다.(511일 묵상)

그 계명과 말씀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끈임을 깨닫고옳습니다하며 믿음으로 갖는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그 사랑을 주는 것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14,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믿는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그런 사랑우리는 못하는데그러면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나요?

그런데~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말씀)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그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로마5,6-8)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죄인인 나를 사랑으로 친구로 삼아 주셨습니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친구를 위해 죽는 그 사랑의 계명을 예수님께서 지키시어 그 계명의 열매를 주시기 위해 뽑으셨습니다.

언제나 남아있을 계명 지킴의 영원한 구원의 열매입니다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기쁨입니다그래서 계명을 지키신 분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인들이 하늘의 용서평화생명을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를 위해 죽는 그 이타의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이타의 사랑을 하라고우리가 서로 하늘나라 완성에 동참하는 그 사랑 안에 머물라고7절에서 시작된 결론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서로 사랑하게 된다.

아멘,

 

 

2019.05.14.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복음 (요한15,9-17)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0~11)

 

요한복음 15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성자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모델로 내세워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고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요한복음 15장 1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성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모델로 내세워 당신의 계명을 지켜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도록 촉구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 15장 10절에서도 앞서 9절에 있는 '~처럼'으로 번역되는 접속사 '카토스'(kathos)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계명 준수를 제자들의 계명 준수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생략해도 내용 전달에 지장이 없는 인칭 대명사 '내가'에 해당하는 '에고'(ego)를 사용하여 당신이 제자들의 삶의 모델이 됨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10절 후반절(새 성경원문은 전반절)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그것은 바로 '내 계명을 지키면'으로 나오듯이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면'에 해당하는 '데레세테'(teresete; obey)의 원형 '테레오' (tereo)는 '준행하다', '유의하다'는 뜻을 전달한다이 단어가 70인역(LXX)에서는 주로 히브리어 '샤마르'(shamar)의 역어로 나오는데주요한 뜻은 하느님의 명령이나 지혜의 명령들(1사무15,11; 잠언3,1) 에 대한 종교적인 준행을 말한다.

 

신약에서도 '테레오'(tereo)가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히 지키는 것(1테살5,23; 1티모5,22), 율법(야고2,10), 규정(마르7,9) 등을 가감없이 따르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그러니까 요한복음 15장 10절은 모든 계명들을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수정해서는 안되고손상됨 없이 철저히 지켜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1절은 예수님께서 앞의 요한복음 15장 1~10절의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한 교훈을 주신 목적이 제자들 안에 당신의 신적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임을 밝힌다.

그리스도와 일치한 자들의 삶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이다제자들은 기쁨의 사람들이다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웃음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의 군대이며우울하고 침울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일치한 사람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데그중의 하나가 언제나 기뻐하는 것이다(1테살5,16). 사도 바오로는 옥중에서도 찬미가를 불렀고(사도16,25),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도록 성도들에게 권했다(필리4,4).

 

기쁨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곧 예수님과 일치한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열매들 중의 하나이다(갈라5,22).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참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확인하게 된다이것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충만한 상태의 삶을 얻게 된다이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기에예수님꼐서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평화' (요한14,27)처럼이 기쁨도 예수님의 것즉 천상에 속한 것이며사람이나 세상의 어떤 것들이 빼앗아 갈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이기에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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