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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 바벨탑 이야기(I) (창세11: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4 조회수2,528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5. 14. 성경바로알기

 

 바벨탑 이야기

 

(창세11:1~9)

1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2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6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7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8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 두었다. 9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1장부터 11장까지를 한 묶음으로 12장부터 끝까지를 두 번째 묶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묶음을 원()역사(歷史)라 부르고 두 번째 묶음을 족장(族長)()라 부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11장까지를 창세기의 서론(序論)이라 칭합니다.

우리는 오늘 창세기 서론의 마지막부분인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오르려 탑을 쌓다가 하느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혼잡해지고 온 땅에 흩어지게 되는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행위와 행위의 산물을 가리켜 바벨이라합니다.

그런 인간들의 행위는 한 마디로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대항하여 하느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사건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과 그 내용이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도 한 마디로 줄이면 바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의 모든 패역과 범죄 함은 바벨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결론 부분인 요한묵시록에서 의 총체를 가리켜 바벨론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표기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서론의 첫 번째 바벨의 사건인 아담의 선악과 사건은 곧 카인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질서와 창조 목적을 떠난 인간은 즉시 자신의 세상 임금 됨을 유지하고 증명하기 위해 자신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자를 사정없이 살해하는 포악한 힘의 원리로 이 세상을 살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자들은 반드시 다른 이들의 공격이 두려워 성을 쌓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래서 카인이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쫓겨난 이후에 가장 처음 한 일이 에녹성을 쌓은 것입니다. 역시 저주받을 바벨의 정신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분쟁과 다툼과 분열은 모두 그 영웅주의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영웅주의와 거대주의, 거인 숭배 사상은 반드시 타인과의 전쟁을 낳습니다. 그러한 영웅주의는 라멕으로 이어져 소년을 죽이고도 자신의 포악함을 자랑하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역시 바벨의 정신입니다

그 라멕의 후손들이 네피림으로, 거인으로, 용사로, 땅에 유명한 자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지배와 통치를 거부하고 하느님 앞에서 거인으로 영웅으로 서려는 시도, 역시 바벨의 정신이지요?

하느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順服하지 않고 그렇게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떠나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영웅이 되어 사는 자들은 모두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그럼에도 창세기 10장의 노아의 족보를 보면 그 노아의 후손에서 니므롯이라는 영걸(英傑)이 나옵니다. 그리고 라센을 쌓고 거대한 나라들을 세운 그 영걸 니므롯에서 오늘 본문의 바벨탑으로 이어지며 창세기 서론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저주 받을 바벨론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인도로 그 바벨론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인도 되는 장면이 12장의 아브람의 등장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데아 우르가 바로 바벨론이거든요. 그리고 그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이 시작되고 그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낍보르를 번역한 말인데 이 낍보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강하다, 크다, 뛰어나다, 용맹스럽다, 포악하다라고 번역이 됩니다. 시편 521절의 악명 높은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일을 스스로 자랑하느냐에서 악명 높은 자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낍보르입니다

그러니까 영걸 니므롯은 크고 강하며 용맹스러우나 악명 높은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가 힘이 세고 용력이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께 대항하고 사람들을 압제하는 폭군이요, 전제 군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가 창세기 10 9절에 나옵니다.

 

(창세 10:89) 8 구스에게서 니므롯이 났는데 그는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였다. 9 그는 야훼께서도 알아주시는 힘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야훼께서도 알아주시는 니므롯 같은 힘센 사냥꾼' 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9절을 보면 니므롯이 야훼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었다고 나오지요? 거기서 알아주는라고 번역이 된 전치사 은 원래 위에, 넘어서, 대항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번역을 하면 니므롯은 야훼 하느님을 뛰어넘으려 야훼와 대항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냥꾼이었다는 말은 당시 고대인들의 왕의 역할에 대한 사고가 반영이 되어있는 어구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에는 이미 들 짐승들이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의 왕은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온갖 사나운 야생 동물들을 멸절시키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왕을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英傑 니므롯은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을 대항하고 사람들을 압제하여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 앉아 있는 세상의 왕, 타락한 자의 대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가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보면 그 점은 더 명확해 집니다.

 

(창세 10:1012) 10 그의 나라는 시날 지방인 바벨과 에렉과 아깟과 갈네에서 시작되었다. 11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아시리아로 나와서 니느웨와 르호봇성과 갈라를 세우고, 12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이라는 아주 큰 성을 세웠다.

 

바벨론과 아시리아를 처음 세운 왕이 니므롯입니다. 이렇게 그 세상의 왕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니므롯에 의해 아시리아와 바벨론이 생겨났습니다. 아시리아와 바벨론은 성경과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백성들과 하느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나라의 역할을 충실히 하다가 사라진 나라들입니다. 그 건 역사 속에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 바벨론에게 망하지요? 그렇게 아시리아와 바벨론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의 반대편에서 하느님을 대적하는 막강한 세상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요한묵시록에서도 세상의 마귀 세력을 바벨론이라 지칭하신 것입니다.

 

(묵시 14:8) 8 또 둘째 천사가 뒤따라 와서 '무너졌다! 큰 바빌론 도성이 무너졌다! 자기 음행 때문에 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 무너졌다!' 하고 외쳤습니다.

 

(묵시 18:21) 21 또 힘센 한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바윗돌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그 큰 도성 바빌론이 이렇게 던져질 것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 바벨론에서 나와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묵시18:24) 2 그리고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3 마치 사자가 으르렁대는 것처럼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고함을 지르자 일곱 천둥이 각각 제 소리를 내며 말을 했습니다. 4 그 일곱 천둥이 말할 때에 내가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자, '그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비밀에 붙여 두고 기록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 왔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영웅이 되어 하느님처럼 살려고 하는 모든 존재들의 상징인 바벨론이 바로 저주받은 함의 자손 니므롯 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바벨론적 삶을 사는 자들은 모두다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지만 그 속에서 택해진 하느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 진노의 심판을 모면하게 되는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책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진노 앞에 서게 될 바벨론적 삶의 전형(典型) 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바벨탑 사건인 것입니다이 바벨탑 사건이 우리 성도들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확인해 야 할 것이 왜 하느님은 바벨탑 건립에 그토록 진노하셨는가?’ 입니다. 본문 3절과 4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창세 11:34)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4절을 보면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으려는 이유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스스로 하늘에 닿으려 한 것입니다. 그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몇 명이서 몇 년을 쌓아야 그 탑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요?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당시 바벨탑을 지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지그라트라는 탑들이 지금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프라테스 강변에 30여개가 남아있는데 4 각형으로 되어 있는 그 탑들은 한 변의 길이가 약 100미터 정도입니다. 밑변이 100미터인 탑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남아 있는 지그라트 중에 가장 높은 탑이 20미터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탑들은 사각형 계단식으로 되어서 5,6층마다 쉴 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판에서 계단을 사용 하여 중간 중간 쉬며 꼭대기 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탑들의 꼭대기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전과 제단이 있었습니다. 바벨탑이 아무리 대형 탑이었다 할지라도 당시의 건축술의 한계를 보여 주는 그러한 지그라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벨탑은 인간들이 하느님께 대항하여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의 존재를 멸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탑인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했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에 닿자는 말은 한 마디로 하느님과 맞장 한번 떠 보자는 말인 것입니다.

이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로 바벨론의 역사를 기록한 에누마 엘리쉬라는 책 655절부터 64절 사이에 에테 메낭키라는 이름의 탑으로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벨탑 사건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탑이었다는 말 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첫 번째 이유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여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불필요성을 과시해 보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기들이 용사인데 자기들이 용사인데 왜 하느님이 필요하며 왜 하느님께 순종하여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단어가 3절의 벽돌과 역청이라는 단어입니다. 당시는 고대시대입니다. 고대시대의 건축물은 대부분 돌과 진흙으로 지어진 건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벽돌이라는 것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벽돌은 인간이 자기들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명과 문화의 상징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고안해낸 진흙을 불에 구운 벽돌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그 벽돌을 사용하여 벽을 올리고, 그 벽돌의 연결을 진흙 대신 역청, 아스팔트를 사용하는 데까지 그들의 지혜를 뽐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바벨론과 바벨은 인간이 고안하고 인간의 힘을 사용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지만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것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상징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극명하게 인간의 행위와 하느님의 은혜가 양극(兩極)으로 대조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의 시작조차 자신들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탄생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존재하는 이들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을 알게된 것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러데 왜 선악을 알게 된 것이 하느님의 저주와 심판의 근거가 되느냐는 말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자신들의 행위를 보태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들이 하느님처럼 되겠다고 자신들의 힘과 행위로 하늘에 닿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 대신, 진흙 대신이라 고 대신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에 닿으려는 바벨탑은 단순히 탑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영웅주의와 거대주의, 그리고 거인 숭배 사상에 빠진 인간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바벨탑을 심판하러 내려오셔서 바벨탑을 부수지 않으시고 인간들을 흩어 버리신 것 입니다. 바벨탑이 문제였다면 탑을 부수셔야지요. 심판의 대상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대접하지 않는 인간의 罪性 이었던 것입니다.

 

(시편127:1) 1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일이다.

 

(시편 28:5) 5 야훼께서 하신 일, 손수하신 일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짓부수어 주소서!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모든 시도들은 전부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것들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덮어줌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저주받은 함과 가나안의 후손인 영웅 니므롯이 바벨론의 왕으로 등장을 하는 것이고 그들이 바벨탑을 쌓았으며 그 함의 후손들은 모두 결국 하느님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는 바벨론의 아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창세10:1518) 15 가나안에게서 태어난 첫아들은 시돈이었다. 또 그에게서 헷족과 16 여부스족, 아모리족, 기르갓족, 17 히위족, 아르키족, 신족, 18 아르왓족, 스말족, 하맛족이 나왔다. 가나안족은 뒤에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저주받은 함과 가나안의 후손들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는 족속 이름이지요? 이스라엘에게 멸망당한 가나안 족속들의 이름이 함의 자손의 이름들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덮어줌의 은혜를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우상을 만들고 자신들을 왕 삼아 사는 자들은 모두 멸망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영걸(장사) 파라오 와 에집트도 저주받은 함의 자손입니다.

 

(창세 10:6) 6 함의 아들은 구스, 에집트, 리비아, 가나안,

 

여기서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이 바로 이집트을 가리키는 셈족의 언어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것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영적 바벨론에서 건져내신 사건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 10장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덮어줌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인간들의 힘과 행위를 의지하여 스스로 왕이 되어 사는 자들을 가리키는 함의 후손들은 모두다 이 세상에서 영웅의 모습으로 거대한 제국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에도 마찬가지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자원과 지혜와 열심으로 만들어 놓은 문명과 문화를 의지하여 행복과 만족에 다다르려 하는 모든 이 세상의 함의 후손들은 비록 세상에서는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 떵떵거리며 자기들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겠지만 終局에는 전부 소리 없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는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이 전부라면 그 함의 자손들이 축복을 받은 것이지 저주받은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 이 세상 에서 영웅으로 대 제국으로 떵떵거리며 살다간 그들을 가리켜 저주받은 자의 후손이라 한다고요. 그 말은 이 세상의 화려함은 하느님의 축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 단 하나, 永生입니다. 영생을 잃은 자들에게 영생을 회복시켜 돌려주시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시편 133:3) 3 헤르몬산에서 시온산 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 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

 

야훼의 은 곧 영생이다. 그렇게 이 세상의 존재자체가 하느님의 복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셔서 마지막 날에 완성이 될 하느님의 복은 영생인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영웅, 영걸은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자신을 자랑하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이 세상이 전 부가 아님을 알고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 영생을 바라보며 그 영생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진정한 英雄이며 英傑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웅 되려 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다가 아닌 것을 알기에 하느님 나라를 所望하며 영생의 삶을 이곳에서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진짜 받은 진짜 英雄들인 것입니다.

 

(고전 3:18~20) 18 어느 누구도 자기 기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서에 '하느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빠지게 하신다' 고 기록되어 있고 20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아신다' 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11:23) 23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마태 23:1012)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10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지도자, , 유일한 영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자기를 낮추시고 비우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원수까지 섬기다 가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중에 큰 자, 진짜 영웅, 진짜 영걸은 섬기는 자라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영생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바보들을 가리켜 성경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바벨탑과는 정 반대의 탑을 제시하며 그 탑을 쌓으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디전6:17~19) 17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18 또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라고 하시오. 19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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