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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 주일(백) 주님 승천 대축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5 조회수2,712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교회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낸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대중 매체를 통하여 교회의 사도직을 수행하고자 각 나라마다 홍보의 날을 제정하기를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1967홍보의 날이 제정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부터 기존의 출판물 보급 주일과 통합하여 해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로 지내고 있다.

 

 

 

1독서<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사도행전의 시작입니다. 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난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 역주 정태현 신부님)

1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을 헌정받은 테오필로스를 가상의 그리스도인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으나, 이 이름의 상징적 해석은 3세기 오리게네스 이후부터 발견되기 때문에 실제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테로필로스는 합성명사로서, 풀이하면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관습대로 루카의 두 저서를 헌정받은 테로필로스에게는 필경사들을 구해 두 작품을 복제하고 판로를 개척할 책임 있었다. 그는 입교 예비자 아니면 입교한 교우였을 것이다.

 

2

루카는 예수시대의 처음을 그분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때로 본다. 예수시대의 마감은 승천으로 생각한다. 사도 1장은 예수시대와 교회시대를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역할을 한다.

성령은 루카의 저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사도들이 성령을 통해 곧 하느님의 직접적 주재를 통해 예수께로부터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권위를 한층 높여준다. 루카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처음부터 승천 때까지 목격한 이들만 사도로 보았다.

 

열한 사도가 그랬고 유다 이스가리옷의 자리를 물려받은 마티아가 그랬다. 예수의 활동상을 다 목격하지 못한 이는 아무리 위대해도 루카는 사도로 여기지 않았다. 예로, 바오로를 무척 존경하면서도 사도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14.4.14에서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사도들이라 했지만 단순히 안티오키아 교회의 심부름꾼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바오로 자신은 사도가 되는 조건을 달리 생각하였다.

 

역사상 예수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사도의 필요조건이라는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생각을 배척했다. 실제로 복음서들은 지상생애 동안 예수 부활의 증인이라는 사실이 사도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이이라면 바오로는 당연히 사도 대열에 든다. 부활하신 주님을 환시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교회 공동체들을 창립하는 것이 사도 자격의 판단기준이라면 바오로야말로 이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바오로는 자신의 선교활동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이방민족들의 사도라 불렀다.

 

사도들에게 무슨 명을 내리셨을까?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것,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을 명하셨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승천하시다는 직역하면 들어올리다의 수동형 들어올려지다이다. “들어올려지다승천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는 2.11-12절이고 이 동사의 명사형 들어올려짐이 승천의 뜻으로 사용된 사례는 루카9.51.

 

3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사십 일만에 승천하셨다고 하는데 40은 루카가 나름대로 만들어낸 숫자일 것이다. 사도 1.3말고는 신약성서 어디에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40일 동안 나타나셨다거나 40일 만에 승천하셨다는 말이 없다. 루카는 해방절부터 계산해서 50일 되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다고 서술할 것이다. 그런데 루카는 성령이 강림하기 조금 전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것으로 서술할 생각이었던만큼, 부활 후 40일을 승천일로 꼽을 만하다.루카는 칠십인역을 자주 참고한 작가인데 거기에는 40일 또는 40년이란 숫자가 유별나게 많다.

 

노아 홍수, 모세의 호렙산 체류.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가나안 정탐, 엘리야의 호렙 산여행은 모두 40일이 걸렸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사막에서 40년간 살았다.

 

 

그런데 루카복음 마지막 장에 보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일요일에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뒤 바로 그날 제자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축복하신 다음 하늘로 올라가셨다. 즉 부활하신 날 승천도 하신 셈이다. 이는 다른 복음서들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왜 부활하산후 40일이 지나서야 승천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가? 이것은 루카가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인간적 사업이 아니라 하느님이 친히 이끄시는 위업으로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언제나 주님의 영, 성령, 천사, 환시 등 신비로운 힘에 의해 움직인다. 루카는 예수께서 부활하고 곧바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자신들의 독단적인 생각과 능력에 따라 교회를 창립하고 선교활동을 벌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그들의 스승인 예수 자신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준비기간을 가지셨던 것이다.

 

4

4-5절의 내용과 아버지의 약속이란 표현은 루카 24.49에서 따왔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여러분에게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높은 데서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도성에 머물러 있으시오.‘ “아버지의 약속높은 데서 오는 능력은 다같이 성령을 뜻한다.

 

5

이미 세례자 요한이 지금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와 장차 메시아가 베푸실 성령세례를 대비한 적이 있다. 5절과 거의 같은 말씀이 11.16에도 나온다.

 

6

종말이 되면 다윗의 왕국이 재건되다는 예언이 있었다.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쏟아져 내려오는 현상을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표지로 여겼다. 따라서 아버지의 약속과 성령세례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종말에 이루어질 다윗왕국의 재건과 성령강림을 연결시켜 예수께 지금 이 때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재건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드린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그들의 질문에는 종말사상과 민족주의가 엿보인다

 

7

사도들은 성령강림때 다윗의 왕국이 재건되리라는 임박한 종말 사상에 젖어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것을 바로잡으신다. 종말은 그처럼 임박하지 않았다. 땅 끝까지 복음이 선포된 다음에야 종말이 온다. 종말의 시기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루카는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이 기록을 남겼다. 제자들로 대표되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의 시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는 소임에 관심을 쏟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8

성령의 능력성령 곧 능력이란 뜻이다. 성령이 능력이라면 누구의 능력이란 말인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요”,“높은 데서 오는 능력이라고 하듯 성령은 원래 하느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그 영이 예수의 영도 되신다. 예수의 영이라는 표현은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사도 16.7에만 등장한다. 루카는 이 표현을 초기교회의 전통에서 빌려왔을 것이다.“예수의 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표현은 그리 흔하지 않다.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예수의 영을 받아야 비로소 예수 사건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 증언할 수 있다. 루카는 특히 사도들의 목격증언을 중요시했다. 사도행전은 모두 증인들의 증언활동을 서술한 책이다. 곧 증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싲가하여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마침내 제국의 수도 로마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며 증언한 것을 서술한 책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한 증언은 로마에서 끝나지 않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계속 추진될 것이다.

 

9

구름은 하느님이 모습을 드러내신 때 또는 그리스도께서 모습을 드러내신 때에 으레 등장하는 소재다. 유다 묵시문학에선 장차 종말이 되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기대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인자로 여긴까닭에 장차 종말에 예수께서 구름에 싸여 오신다고 믿었다. 사도행전의 승천기도 예수께서는 구름에 싸여 승천하고 또한 구름에 싸여 재림하시리라고 서술한다.

 

10

흰옷을 입은 사람 들은 승천사건을 폴이하는 천사 한쌍이다. 갈릴래아 출신 부인들이 일요일 새벽에 예수의 무덤에 참배갔을 때도 무덤 속에 천사가 둘 있었다. 이스라엘에선 법정에서 증인을 채택하거나 공무로 심부름꾼을 파견할 때 둘씩 짝지음으로써 증언 또는 심부름의 신빙성을 높였다.

 

 

 

2독서<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않히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17-23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영을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김영남 신부님)

17

당신을 (참으로) 알아보게 하는 지혜와 계시의 영”: 하느님에 대한 참 지식이란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포괄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18-19절의 하느님께 대한 깨달음은 하느님의 권능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체험을 포함한다.

 

18

마음의 문”. 구약성서적 표현이다(시편 13.4;18.9 참조).

성도들 사이에서”, 깨달음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체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

20-21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당신 오른편에 앉히신 하느님의 보화는 온갖 영적 세력보다 훨씬 높은 하늘에 있다. 3.10;6.12를 보면 권력과 권세 등의 영적 세력들도 이 하늘에 있다. 이렇게 에페소서에서 하늘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20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부활의 힘으로 그리스도는 온누리의 주님이 되셨다.

 

21

그리스도께 주어진 주권에 대해 공간적 표현이 많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현양되었으며 지금은 하늘의 영적 존재들까지 그 아래에 있다. 만물이 그 아래에 있다는 것은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뜻한다. 21-22ㄱ절은 필립 2,9-11과 내용이 상당히 합치한다.

 

후기 유다교는 우주세력 신앙을 헬레니즘과 공유하며 더러 그 명칭도 일치한다. 묵시문학에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세력들에 대한 사변이 많은 데 비해 헬레니즘에서는 인류를 노예상태로 매어두는 하느님 적대세력들에 대한 사변이 많다. 쿰란 문헌에는 양자가 병렬되어 있다. 6.12를 보면 권력들은 적대 존재로 파악되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적대세력을 제압한다는 말은 그리스도 신앙인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10절에서처럼 여기서도 공간적 요소와 나란히 시간적 요소가 나온다.“두 세대 도식이 배경이다.

 

22

이 말씀이 시편 8.7에서는 피조물 가운데서의 인간의 높은 품위의 표현이었지만 바오로 서신에서는 현양되신 그리스도에 적용된다. 이 시편 인용은 칠십인역과 달리 1코린15.27과 문자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1코린에서는 권세들의 굴복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종말 드라마에 속하는 데 반해, 여기서는 그 굴복이 이미 이루졌다고 본다.

 

우주적 전망이 교회론적 전망으로 여겨진다. 에페소서의 교회에 관한 특별한 관심이 엿보인다. 당대의 교회는 숫자적으로나 사회적 영향력으로나 미미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자칫 패배주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을 것임을 감안하면서 이 구절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분을 교회에, 만물 위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4.15-5.23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23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라고 부른 것을 계기로 이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 번역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원문에서 플레루메누는 보통 수동태 분사로 이해되며, 매우 드물게만 능동적 중간태 분사로 이해될 수 있다. 수동태`분사로 본다면, 23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면으로 충만하게 되는 분의 충만함이다.”

 

이 번역에서 충만하게 하는 분은 하느님이라고 전제된다면 23절은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다: 교회는 ... 하느님께서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다. 골로 2.9-10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에 의해 충만하게 되고 신앙인은 그리스도를 통해 충만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로서 하느님의 전적인 충만함 안으로 충만해져 가고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도달해야 하며 자신을 영으로 충만해지도록 내맡겨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리스도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지만,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특별히 교회다.

 

 

 

 

 

복음<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끝입니다.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이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고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 역주 정양모 신부님)

15

루카 24.47; 사도 1.8: 참조: 마태 28.19. 복음의 골자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16

복음선포에 대한 반응은 믿음 아니면 불신이다. 믿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결단이다. 이 결단을 내린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 행위 곧 세례를 수락하게 마련이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종말에 구원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멸망할 것이다. 요한 3.3-38에서도 믿음과 세례와 구원의 상관관계가 드러난다.

 

17

17-18절에서는 신앙인들에게 다섯 가지 기적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네 가지는 사도행전에서 따온 것 같다. 구마이적, 언어이적, 독사이적, 치유이적, 음독이적만은 신약성서 밖의 구전에서 따온 것이다. 가이사리아 주교 에우세베우스는 유스투스 바르사바스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치명적인 독을 마셨지만 주님의 은혜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19

루카 24.50-53; 사도 1,9-11. “올라가시고를 직역하면 맞아들여지시고”(수동형). 하느님이 예수를 승천케 했다는 뜻이 들어 있다.

 

20

이 절은 전도활동 집약문이다.

마태 28.20 참조. 히브 2,1-4 참조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둘째 방편은 예수께서 평소에 명하신 것을 다 지키도록 모든 민족을 가리치는 일이다. 세례를 받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익혀야만, 특히 산상설교와 공동체설교에 실린 윤리적 지침들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만 참 제자들이 되어 참 교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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