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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이란 (요한17,1-11ㄴ)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8 조회수2,702 추천수0 반대(1) 신고

 

2021년 5월 18일 화요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영원한 생명이란 (요한17,1-11)

6월7일 부활제7주간 화요일 

 

1독서<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려>(사도20,17-27)

17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18 그들이 자기에게 오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20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2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이제내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26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27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화답송 시편 68(67),10-11.20-21(◎ 33ㄱㄴ)

◎ 세상의 나라들아하느님께 노래하여라◎ 알렐루야.

○ 하느님당신은 넉넉한 비를 뿌리시어메말랐던 상속의 땅을 일구셨나이다당신 백성이 그곳에 살고 있나이다하느님당신은 가련한 이를 위하여은혜로이 마련하셨나이다

○ 주님은 날마다 찬미받으소서우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 구원이시다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주 하느님께 있네

 

복음<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17,1-11)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때가 왔습니다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오늘의 묵상(2019.6.4. 부활제7주간 화요일) 이성근 사바 신부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사도20,17-27)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2~24)

 

사도행전 20장 22절부터 27절까지는 에페소 교회를 위한 사도 바오로의 고별 설교의 두번째 부분으로서 사도 바오로 자신이 장차 받게 될 투옥과 환난에 대한 현재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사로잡혀'로 번역된 '데데메노스'(dedemenos)의 원형 '데오'(deo)는 '묶다', '속박하다'는 뜻으로 육체적인 매임 뿐만 아니라 영적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루카13,1

본문에서는 수동태 완료 분사로 쓰였다.

 

성령께서 예루살렘에서 있을 사도 바오로의 환난을 예고하시면서(23절; 사도21,11), 동시에 사도 바오로로 하여금 그 길을 당당하게 가게 하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성령의 강력한 이끌림에 따르긴 하였지만, 그 자신도 그 길을 가고자 열망했다는 말이다.

 

그의 최고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ek.(24절; 사도21,11). 그의 마음에는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 그리고 스페인까지 가고자하는 원대한 비전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사도 바오로의 미래에 대한 성령의 증거는 투옥과 환난으로 요약된다.

'투옥'으로 번역된 '데스마'(desma)의 원형 '데스몬'(desmon)은 '띠', '끈'이라는 뜻으로 쇠사슬이나 끈으로 속박당한 상태, 즉 결박을 상징한다.

 

또한 '환난'으로 번역된 '틀립세이스'(thlipseis)의 원형 '틀립시스'(thlipsis)는 '압박', '궁핍', '곤고'란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고난이나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반드시 받게 될 고난을 가리키는 때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에서 투옥과 환난은 문자 그대로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 경험하게 될 감옥 생활과 그로 말미암은 극심한 고난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고난받을 것에 대한 성령의 예언적 경고를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요 관심사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 즉 복음 증거의 사명을 힘써 완수하는 것이지, 어떻게 고난없이 쉽게 봉사할 것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댓가도 지불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번역되 '메누신'(menusin)의 원형 '메노'(meno)는 '머무르다', '떠나지 않다', '지속적으로 소멸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여 사도 바오로가 만나게 될 투옥과 환난을 단순히 일회적으로 경험하게 될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될 사건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난이 자신에게 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완수해야 할 사명을 위해 그 길을 거부하지 않았던 사도 바오로의 태도는 마치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시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루카9,51

 

하느님의 봉사자로 자처하는 자들은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고난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교회가 유익하고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면, 사도 바오로와 같은 결단을 기꺼이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본절은 고난과 환난이 자신 앞에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겠다는 사도 바오로의 강한 사명 의식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구절이다. 여기서 '달릴 길' 번역된 '드로몬'(dromon)의 원형 '드로모스'(dromos)는 '노정'으로 직역되며, '인생의 노정'이나 '직무의 노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에서 '달릴 길'은 사도 바오로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사명자로서의 노정을 가리킨다. 즉 사도 바오로의 '달릴 길'이란 궁극적으로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 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의 길이며, 구체적으로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스페인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다.

 

한편 우리는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표현을 통해 사도 바오로 자신이 받은 사명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란 사실에 매우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자긍심은  확실한 사명감으로 연결되어 그의 복음 전파의 기초가 되어 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신에서 항상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사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하며 밝히는데, 자신의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사명임을 나타내는 본절의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란 표현 역시, 사도 바오로가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는 표현들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직무'로 번역된 '디아코니안'(diakonian)의 원형 '디아코니아'(diahonia)는 '직분'(ministry), '사명'이라는 뜻이며, 특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직분을 가리킨다. 사도 바로는 자신이 복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부름받았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분명한 사명은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다. 즉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정한 복음을 한마디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요약해서 표현했다. 하느님은 죄로 말미암아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해 주셨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게된 이러한 죄사함의 은총과 영생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소중한 죄사함의 은총과 영생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거룩하고 보배로운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면, 누구나 누리게 되고 소유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온'(euanggelion)는 '좋다'라는 뜻의 부사 '유'(eu)와 '말', '소식'을 가리키는 '앙겔리아'(anggelia)의 합성어로서, '좋은 소식', 기쁜 소식'(good news)이란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칠 수만 있다면'으로 번역된 '호스 텔레이오사이'(hos teleiosai)는 '마치기 위해서'라는 목적의 뜻을 나타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곧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조차도 기꺼이 내놓기로 각오하였던 것이다.

 

 

 

2018.05.17. 부활제7주간목요일 조재형신부/조영만신부

 

부활 제7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17,1-11ㄴ)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생명'(영생)이라고 번역된 '헤 아이오니오스 조에'(he aionios zoe; eternal life)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데여기에 대해 분명히 밝혀 주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하느님과 그분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고 정의를 내리신다.

 

'~~아는 것'으로 번역된 '히나 기노스코신'(hina ginoskosin; that they might know)은 현재 시제 가정법으로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란 뜻인데이 동사가 나타내는 ''은 단순한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영적인 친교를 말하며성부와 성자께서 사랑 가운데서 서로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 하느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흠숭하고 존중해 드리며그분의 뜻에 자발적인 순종을 하기 위해 힘쓰며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자시요중재자시며 임금으로 알아 영혼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예수님의 존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리게 된다.

 

성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바로 이와 같기에 이러한 ''이 바로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지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요한 5,11~12)

 

우리는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기노스코신'(ginoskosin)이란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희랍어의 현재 시제는 일회성(단회성)이 아니라 계속성(영구적 지속성)을 뜻하므로결코 그 앎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매일 가까이 다가가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고안 만큼 사랑해야 할 대상이며,몸으로 살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가장 중심과 마음의 중심에 끊임없이 모시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여러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길 빕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에페3,16~19)

 

나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닮으려고 애쓰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대하고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성체조배와 영성체를 하는 것을 말하며희생과 봉사고통을 봉헌하며 자선의 애덕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운명과 가치관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고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아실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2019.6.4. 부활제7주간 화요일) 이성근 사바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성자께서 자신의 전 존재를 성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왔음을 아시고 그 시각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이 ‘때’는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순종과 겸손으로 이루어진, 영광스럽게 되는 때이며(마태 25,31 참조), 성자께서 성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때입니다. 또한 성자를 보내신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어(요한 6,44 참조)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거저 선물로 받는 때입니다.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히브 9,1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성찬례를 통하여 당신의 생명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믿음으로 주님을 알아봅니다. 미사 때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하는 순간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시간입니까?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신비하고 거룩하며 기쁨으로 가득 찬 부르심에 동참하기로 다짐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응답에는 십자가와 부활로 길이 영광받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우리가 이 신비로운 ‘때’의 증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히브 7,27 참조) 주님을 따라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는 감염병(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 하기도, 성체를 모시기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성체를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던 순교자들의 신앙심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 어려움으로 성체를 모시기 어렵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실 수 있는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찾아, 신앙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노력합시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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