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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8 조회수2,092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떻게 살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고 또 그 진리가 거룩하게 해 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말씀이 거룩하게 해 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거룩의 사전적인 의미는 성스럽고 위대하다고 하지만, 신앙에서는 구별됨, 성별됨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좀 더 의미를 부연하면 헛됨과 죄로부터의 구별도 있을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도 해당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보시다시피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삶은, 진리와 배치되는 삶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에서 저희를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그 자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게 말씀의 위력입니다. 누구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그걸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어느 순간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말씀이 머리에 있을 땐 그게 잘 작용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내려와 심비에 새겨졌을 때 그게 가능할 수 있습니다.

 

말씀도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심비에 새겨지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닙니다. 계속 머리에라도 남게된다면 그게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심비에 새겨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을 겁니다. 비근한 예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후에 언제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이 슬피 울었던가요.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 후였습니다. 이때 말씀은 우리가 평소 말하는 말씀과는 조금 다르긴 다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예언적인 말씀이긴 하지만 그 말씀도 엄밀하게 말하면 말씀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만약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회개를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결국 베드로 사도에게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된다는 그 말씀이 자신의 양심에 비수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 비수가 인간의 나약함을 찔렀던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도 알 수 있게 해 준 것이었습니다. 이런 게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거룩한 몸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덧없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우리의 신앙이 허무하게 끝나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몸이 거룩하게 되는 걸 원하십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도우심도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선조의 여인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은장도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정신만은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에 그 여인들이 지녔던 은장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확신하는 게 있습니다. 지금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게 아주 많습니다. 한마디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완전 언행일치는 아니더라도 거의 언행일치가 되는 날이 오리라고 희망합니다. 그나마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잘 녹아들기만 하면 거룩한 몸으로 되는 건 식은죽 먹기일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그렇게 많이 봐도, 볼 때만 와 닿은 것은 완전히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용해되어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가로막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성일 것입니다. 이 죄성도 결국은 말씀으로 씻어낼 수가 있을 겁니다. 결국에는 말씀이 우리의 심비에 새겨지게 되는 선순환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몸이 죄와 악으로부터 구별된 삶인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거룩과 말씀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 말씀이 그 말씀이지' 하는 인식이 작용하면 그렇습니다. 다 아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무미건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무미건조함을 오아시스와 같은 샘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는 건 순전히 자기의 몫입니다. 그건 무미건조함을 인내로 이기면 언젠가는 그 무미건조함이 오묘하고도 달콤한 말씀으로 다가오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말씀은 자신의 영혼을 지켜주는 영원한 보루가 됨을 다시 한 번 더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거룩함에 이르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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