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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신앙의 페이스메이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0 조회수1,694 추천수0 반대(1) 신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겐 성공도 우연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보기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남의 눈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보기엔 그렇게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말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엔 생각지도 않게 모든 변수가 호재로 작용돼 그럴 수도 있다고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역으로 생각했을 때 그런 경우가 막상 자기에게 닥쳤을 때 자기도 성공할 수가 있는지입니다.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자기의 논리라면 성공해야 합니다. 근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무엇을 간과했을까요.

 

그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성공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공에 필요한 노력과 땀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노력과 땀을 흘리지 않고 성공을 했다고 한다고 해도 그걸 우리는 성공이라고 부른다면 조금은 이상합니다. 그건 결과가 성공한 모습으로 보여졌을 뿐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판단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걸 성공이라고 한다면 성공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그걸 성공이라고 여긴다고 해도 그런 성공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땀으로 일구워낸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요행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을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어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신앙인으로서 성공을 한다면 그게 무엇이고, 실패한 신앙인이라면 그게 무엇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신앙이 무엇인지 논한다는 것은 교만일 겁니다. 하지만 고민 정도 해보는 것까지는 교만 정도까지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신앙의 도약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마라톤 경주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은 마라톤 선수에 비길 수 있습니다. 마라톤이라는 경주는 일등도 중요하지만 마라톤만의 독특한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마라톤은 완주에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주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운동입니다. 마라톤 선수라고 해도 어느 순간에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건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한계 상황에서는 기권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와도 참고 인내해서 완주를 하려고 합니다. 만약 그 고통에 함몰되면 포기하기가 십상입니다. 완주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고통이 없겠습니까? 그건 절대 아닐 겁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기량의 차이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변수를 제외한다면 완주와 포기의 기로는 누가 좀 더 참고 인내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장거리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체력에 맞게 페이스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철저히 자기의 페이스에 맞추어야 합니다. 상대의 페이스를 보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버페이스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지인 중에 전문 마라톤 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외 유수한 마라톤 경기에 참석한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원론적인 말씀 하나를 더 하자면 이걸 또한 가능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땀과 노력입니다. 야구선수였던 이승엽을 보더라도 홈런왕이라는 애칭을 가질 만큼 상당한 타격 실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우리는 그 선수가 그냥 야구를 잘하는 운동선수로만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잡지에서 그 운동선수가 그런 자리에 가기까지 그가 얼마나 남보다 노력을 하고 땀을 흘렸는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낼 그런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런 명예를 거머쥘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할까요? 모든 것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기본기입니다. 기본기가 되지 않으면 그 위에 아무리 기량을 연마한다고 해도 실력 향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저는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제가 학생들을 지도해보면서 그간 경험한 것입니다. 이건 진리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에도 기본기가 있을 겁니다. 기도를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고 해도 신앙의 기본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모래성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는 걸 수도원에서도 들어봤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글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되었든, 수도 공동체가 됐든, 어떤 조직과 단체에서도 사람이 어우려져 사는 공간에는 서로가 함께 공존하고 평화가 존속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누가 신앙 안에서 배워서 될 것이 아닙니다. 신앙 이전에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지성인으로서, 교양인으로서의 자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면이 잘 완비된 신앙인이라면 이런 신앙인에게는 마라톤 같은 신앙 여정에서 충분히 완주할 실력을 이미 갖춘 신앙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완주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 될 것입니다.

 

같은 말이 되겠지만 완주라는 결과는 레이스 할 때 그런 과정 하나 하나를 잘 수행했기 때문에 완주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도 하차는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지금 냉담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저마다 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라토너처럼 포기하고 싶을 때 굳은 의지로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조금 페이스를 조절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이 신앙 여정이라는 레이스를 잘 완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께서는 등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함께 완주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실 것입니다. 나 혼자 일등하려고 가는 신앙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등을 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일등을 알아주기나 하겠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일등보다는 들어오지 못한 선수를 더 염려하고 걱정할 것입니다. 바로 그게 하느님의 마음이고 이 세상 부모의 마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신앙인은 경쟁을 할 대상이 아니고 서로 윈윈하고 협력하는 대상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안전하게 무사히 항구에 잘 도착할 수가 있게 해 주는 등대와 같은 신앙인이 되는 게 하느님 보시기에 성공한 신앙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 부모도 성공한 자식보다는 뒤처지는 자식이 더 가슴이 아픈 게 인지상정입니다. 사람도 그러할진대 하느님께서야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진정으로 성공한 신앙인이 되려고 한다면 자신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면 그건 확실하고도 분명한, 성공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페이스메이커는 승부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다 천국으로 가는 마라톤 경기에서 페이스메이커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실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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