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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금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0 조회수1,791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21

그 무렵

13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14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리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16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7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 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대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8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몰었습니다.

21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 역주 정태현 신부님)

13

마르코스 율리우스 아그리빠 2세는 헤로데 대황의 증손자로, 27년에 태어나 100년에 죽었다. 그라우디오 황제의 영으로 아버지 아그리빠 1세의 왕국을 물려받았고 레오 황제로부터 팔레스티나 여러 도시의 주권을 넘겨받았다. 유다 항쟁 동안 내내 로마인들에게 매우 충실한 식민지 군주로 행세했다. 베르니케는 아그리빠 2세의 한 살 아래 여동생으로 남편이 죽은 뒤 오빠의 궁전에 들어와 살았다.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둘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좋지 않은 소문거리로 나돌기도 했다.

 

14

루카는 페스도의 사건 요약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사건의 전체적 윤곽을 다시 한번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16

로마법에 의하면 피고발자를 보호 없이 고발자에게 넘겨주지 못하며, 피고발자는 스스로 변호할 권리가 있고 그 변론은 반드시 청취되어야 했다. 유다인들의 왕 아그리빠에게 로마의 재판관습을 설명해 주면서 페스도 총독은 은연중 민족적 우월감을 드러낸다.

 

18

루카는 제3자로 하여금 바오로의 무죄를 다시 한번 선언하게 한다. 바오로는 페스도가 염려한 것처럼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폭도가 아니라 유다 지도층 내부의 신학적 논쟁에 본의아니게 휘말려든 사람이었다.

 

19

부활과 관계된 신학적 논쟁은 페스도의 판단능력을 뛰어넘는 문제였다. 루카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인 예수의 부활을 이방인인 로마 총독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20

로마의 고위직 관리가 스스로 어떤 문제에 대해 재판 능력이 없다고 인정했다는 사실은 바오로 사건이 위험한 범죄 행위와 관계없는 유다인들 내부의 종교적인 논쟁과 얽혀 있는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복음<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이영헌 신부님)

15

부활한 예수와 시몬 베드로의 이른바 특별대담이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먼저 베드로에게 발현했다는 전승과 관련된 듯하다.

일부 사본에는 요한의 아들로 되어 있다. 아마도 마태오복음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요한의 아들은 요한복음의 고유한 표기다.(1.42 참조).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와 베드로의 관계가 특별히 큰 사랑의 관계라야함을 전제하고서 그런 사랑의 준비태세를 묻는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드로만이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따르겠다고 장담한다. 바로 그런 베드로의 태도를 상기시킨 듯하다. 두 번째 와 세 번째 물음에도 비교급 없이 표현된 점에 유의해 볼 만하다.

 

예수의 물음에 대한 긍정적 대답을 신뢰에 가득 찬 겸허한 자세로 표현한다.

 

베드로의 사목권이 목자와 양들비유의 표현으로 부여된다. 그런데 첫 번째 와 세 번째 위임에서는 먹여 기르시오, 두 번째 위임에서는 지켜 돌보시오로 표현되지만 내용상 차이는 없고 표현을 달리함으로써 오히려 목자가 해야 할 일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양들양들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예수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총칭한다. 부활한 예수는 자기에게 속한 신앙공동체를 돌보도록 시몬 베드로에게 위임한다. 시몬 베드로는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예수와의 결속관계 안에서 지키며 보호해야 한다.

 

16

사도 20.28;1베드5.2‘에페4.11참조. 그리스도는 여전히 목자들의 으뜸이고 목자의 역할은 양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목자는 양들을 지키고 돌보며 이끈다.

 

17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에게 세 차례나 묻는 것은 우선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상기시키고 또한 베드로를 의심하는 것으로 시사된다. 베드로가 슬픔에 빠져있었다는 것은 베드로의 부끄러움과 슬픔을 가리키며 회개를 뜻한다.

 

모든 것이란 표현은 베드로가 모든 자기확신을 포기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 부활한 예수에게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베드로의 겸허한 자세가 표현된다.

베드로는 세 번 예수에 대한 사랑을 다짐받으면서 그때마다 부활한 예수의 양떼를 돌보도록 위임받는다. ,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을 모두 용서받고 예수의 제자로서 받아들여진다. 베드로에게 부여된 임무는 이 사실을 입증한다. 그는 목자들의 으뜸으로서 또한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로서 또한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로서 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베드로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양떼전체의 사목에 역점이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수위권이 시사된 마태오복음과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베드로의 선교 임무나 다른 제자들에 대한 우위권이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교황직에 관련하여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많은 논쟁이 되어 왔고, 또한 교회일치 차원에서도 그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18

일종의 비유로서 60년대 중반의 베드로 순교를 시사한 이른바 사후예언이다. 문맥상 나를 따르시오라는 촉구와 함께 베드로가 지상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양떼를 돌보듯이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에도 동참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활한 예수는 이제 베드로의 확고한 자세를 받아들인 셈이다.

 

19

베드로의 순교, 곧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13.31-32; 15.8; 17.4 참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때 주로 사용한 말이다(사도7.5.55-56 참조)

가리키신 것12.33 참조. 여기서는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추종을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해 언급된다.

 

나를 따라라는 고별 때 예수와 베드로가 나눈 대화를 상기시킨다. 당시 상황과는 달리 부활한 예수는 이제 베드로에게 추종을 촉구한다. 이 추종은 예수의 운명에까지 동참하는 죽음의 추종이다. 이런 추종 가운데 이루어지는 베드로의 순교가 강조된다. 베드로는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착한 목자처럼 목숨까지 희생하지만 그것은 양들을 위한 죽음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봉사로서의 죽음이다. 바로 여기에도 베드로 사목권의 특성이 시사되어 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양들을 위해 자유롭게 자신의 목숨을 아버지께 바쳤다.(10.14-18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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