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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토요일] 그의 증언은 참되다 (요한21,20-2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2 조회수2,77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5월 22일 토요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그의 증언은 참되다 (요한21,20-25)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2013.5.18 부활 제7주간 토요일)

1독서<바오로는 로마에서 지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사도28,16-20.30-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화답송 시편 11(10),4.5와 7(◎ 7ㄴ 참조)

◎ 주님올곧은 이는 당신 얼굴 뵈오리다◎ 알렐루야.

○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하늘에 있는 주님의 옥좌에서당신 눈으로 살피시고당신 눈동자로 사람들을 가려내신다

○ 주님은 의인도 악인도 가려내시고그분의 얼은 폭행을 즐기는 자를 미워하신다의로우신 주님은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니올곧은 이는 그분 얼굴 뵈오리라

 

복음<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그의 증언은 참되다.>(요한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28,16-20.30-31)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20)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의 오해를 받아 쇠사슬에 매인 죄수가 된 것은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하고 있던 것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 유력자들을 자신이 기거하는 곳으로 청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그들과 함께 '그 이스라엘의 희망' 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이 '희망'이라고 번역된 '엘피도스'(elpidos)라는 용어의 개념은 사도 바오로가 유대아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 중에 여러 번 사용한 적이 있는데 (사도23,6; 24,15; 26,6.7), 그것은 곧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희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주신 '구약 성경 약속들의 성취'를 의미한다(사도26,6.7).

 

사도 바오로는 바로 이 희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나자렛 예수에게 그 희망이 성취될 수 없다고 믿는 유대인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 희망'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해 죄수의 몸이 된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점들을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부활 제7주간 토요일 복음(요한21,20~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25)

 

요한복음 21장 25절은 과장법에 의한 수사학적 표현인데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요한복음 사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께 대한 지식조차도 모두 기록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를 다 기록했다면그 내용이 엄청나게 방대했을 것이다하느님께서는 4복음서 저자들에게 그 책을 기록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주셨고각 저자들은 자신들의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지식과 능력을 사용해서 많은 내용들 중에 꼭 필요한 내용만을 취사 선택하여 하느님의 의도대로 기록한 것이다.

 

둘째로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적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온전히 담기에는 부족했다고 알아들을 수 있다.

 

세째로자신의 한계이자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의 일을 기록하는 작업의 한계를 인정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니며또한 자신이 기록한 요한복음의 내용이 부분적이므로요한 복음사가가 함께 했던 교회 공동체가 요한복음에만 한정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 왜 한 제자에 의해 단 한권의 책으로 기록하게 하지 않으시고세 권의 공관복음서를 쓰게 하시고 난 뒤에 다시 요한 복음사가를 통해 요한 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한다.

 

사실 사도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늘 예수님과 동행했고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70년 정도를 더 살면서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많은 사목을 하였다그러한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21장 25절을 통해 요한 복음서를 다 기록한 뒤에 보여 주는 모습은 하느님 역사의 광대무변함과 그분의 크신 사랑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시자,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섭니다(마태 4,18-22 참조). 오늘 복음에서는 이처럼 모든 것을 지체없이 버렸던 베드로의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앞날이 궁금했는지 아니면 자신과 비교하고 싶었는지 베드로는 그 제자의 미래에 관하여 여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처음 따라 나설 때 가졌던 단순함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남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저마다의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경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질까봐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탈렌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길을 잃게 됩니다. 비교는 그만 멈추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연연하지 말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처럼 그분 곁에서 나에게 주신 은총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되돌아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생존 경쟁이 일상화된 현대의 삶에서 남과 비교하여 고통스러워하며 불안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늘 성찰하며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저마다의 소명에 따라 기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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