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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 강림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2 조회수2,988 추천수7 반대(1)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휴학하는 신학생들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휴학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본인이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건강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제가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민하기 위해 휴학을 신청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업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휴학생들이 머물 곳을 지정해주곤 합니다. 휴학 중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휴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지금 가슴에는 돌이 하나 있을 겁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돌을 바라보면 그 돌은 하느님께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러나 감사와 기도로 돌을 바라보면 그 돌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될 겁니다.” 휴학기간을 디딤돌로 여긴 학생들은 모두 복학하여 사제가 되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도 없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에도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1986년입니다.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마치고 성당의 군종병으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성당에서 기도할 수 있었고, 주일 미사를 빠짐없이 드릴 수 있었고, 성당이 부대 밖에 있었기에 매일 외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당 군종병으로 3개월만 있었고, 다른 부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저의 부족함 때문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잔디밭에 비료를 뿌리라고 했는데 저는 귀찮아서 대충 뿌리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비료를 많이 준 곳은 노랗게 변하였습니다. 성당의 의자를 닦아야 하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대충 닦고 말았습니다. 미사시작 전에 의자를 보니 의자에 얼룩이 남아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서울로 회의를 가시면서 부대로 복귀하라고 하였는데 저는 부대에 들어가기 싫어서 성당에 남았습니다. 회의가 취소되어서 신부님은 성당으로 왔고, 저는 명령불복종으로 짧은 군종병 생활을 마치고 다른 부대로 가야 했습니다. 신부님의 엄한 가르침이 제게는 남은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1991년 사제서품을 받고 첫 본당의 보좌신부로 갔습니다. 본당에 간지 3일 만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나중에 병명을 알았는데 유행성출혈열이라고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오셔서 기도해 주셨다고 합니다. 동창신부들도 와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의 도움으로 보름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고마운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입원한 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병원에서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열이 나면 이마에 수건을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퇴원하면 어머니께 효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매달 찾아가서 함께 식사하고, 용돈도 드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달은 가지 못하였고, 시간이 나면 가끔 찾아가곤 했습니다.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인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면 덤으로 더 주시곤 합니다. 보름간 병원에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제게 덤으로 시간을 더 주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덤으로 주신 시간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니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3번이나 배반하였던 베드로를 꾸짖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도망쳤던 제자들에게 야단을 치셔도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새로운 제자들을 뽑으셔도 제자들은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벌을 받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용감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땀과 눈물을 닦아 주었던 베로니카 성녀처럼 이웃의 눈물과 고통에 함께 하였습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무엇을 위해서 있을까요? 1독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면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면 이념이 달라도, 계층이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하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성령의 은사는 평화와 용서를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평화는 용서하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루가 복음 15장은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지 못했던 큰 아들처럼 생활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이웃을 위해서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 하고 있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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