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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정 마리아 기념일] 다 이루어졌다 (요한19,25-3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3 조회수3,963 추천수0 반대(1) 신고

 

2021년 5월 24일 월요일

[동정 마리아 기념일] 다 이루어졌다 (요한19,25-34)

2017.9.15.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독서<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1,12-14)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12 사도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었다.

13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그들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립보와 토마스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다.

14 그들은 모두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화답송 시편 87(86),1-2.3과 5.6-7(◎ 3)

◎ 하느님의 도성아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네

○ 하느님의 도성아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복음<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시스티나 성당(13) - 천지창조 / 낙원추방,웃시야,히스기야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창세3,9-15.20)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5)

 

'나는 ~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원문의 '웨에바 아쉬트'(weebah ashith)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증오를 놓을 것'(And I will put enmity)이다.

여기서 '증오'(에바 ; ebah)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적대자에게 품은 삭힐 수 없는 깊은 원한과 적개심(민수35,21.22)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문장의 서두에  위치시켜 적개심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놓다'는 가슴에 '품다', '품에 안다'(룻기4,16), '갇히다'(시편88,9)로도 번역되는 '쉬트'(shith)의 미완료형으로서, 적개심(증오)을 가슴 속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함으로서 비참한 운명 가운데 처하게 된 인간은 사탄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너와 그 여자 사이에'로 번역된 원문은 '뻬네가 우벤 하잇샤'(beneka uben haisha)인데, 직역하면 '너 사이에 그리고 그 여자 사이에' 이다.

이처럼 본문에는 '~사이에'를 뜻하는 '뻰'(ben)이 2번이나 등장하며, 여자와 사탄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장 형식은 이어 나오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에서도 동일하다.

즉 하느님께서는 뱀과 여자, 그리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앞에 모두 '뻰'(ben)이라는 전치사를 어,  인간이 영원히 뱀 즉 사탄을 멀리하고 적대시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으로 번역된 '자르아흐'(zarah)는 '씨를 뿌리다'(파종하다; 레위25,22)라는 뜻이 있는 '자라'(zara)에서 유래하며, 일차적으로는 '씨'(창세4,25)를 가리키나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후손'(창세12,7), '자손'(레위20,2) 등으로 더 널리 번역되는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단수형이다.

여기서 단수형이 사용된 것은, 히브리인들이 '씨'나 '자손'은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출발한 동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수로 표기된 '여자의 후손'(her seed)은 이어 나오는 뱀의 후손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한 사람, 즉 장차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여자의 후손'(자르아흐)을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마어가 붙은 단수형이므로성모 마리아에게 적용해왔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라4,4)

 

첫 에와와 첫 아담의 하느님께 대한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남용으로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과 축복과 생명의 구원사로 바꾸시기 위해, 둘째 에와이신 성모 마리아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의지의 선용과 협력이 하느님 아버지께 필요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로 번역된 '에슈페카 로쉬'(yeshupeka rosh)에서 '상처를 입히다'(상하다;슈프; shup)는 '때리다', '타박상을 입히다', 혹은 '눌러서 뭉개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로쉬; rosh)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각 개체를 대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머리를 뭉갠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회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이와같이 사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분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 승리하셨다.

이로 인하여 사탄은 머리가 상한 뱀과 같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사탄의 모든 세력을 불과 유황 못에 던짐으로써(묵시20,10.15) 완전한 승리를 이루실 때까지, 상한 머리를 감싸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머리가 상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미 사탄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을 때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상처를 입히다'(상하게 하다)의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 상하게 하는 일이 계속 지속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실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군사인 성도들에 의해 계속 패배당하고 있다.

이와같이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이루어지는, 본절에 나오는 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언을 우리는 원시 복음(原始 福音;첫 복음; Proto Evangelium)이라고 부른다.

 

원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셔서,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게 하셨다.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여기서 '상처를 입히리라'로 번역된 '테슈펜누'(theshuphenu)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슈프'(shup)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앞 문장에서는 '머리'가 상하게 하는 대상인 반면에여기서는 '발꿈치'(아케브; aqeb)가 그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머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가장 중요하며, 상처를 입을 때 치명적이지만, 반대로 발꿈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부위를 상징하며,상처를 입어도 치명적이지 않다.

사탄의 공격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며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중단케 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서 그 발꿈치의 상처마저 완전히 치유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상하게 하는 역사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상하게 하다'(슈프; shup)는 히브리어는 집요하게 공격하여 상처를 남긴다는 의미이며, 또한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사탄은 상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묵시20,10.15;1베드5,8).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요한19,25-27)

 

[성모 마리아 기념일]

 

사람에게서 성령을 빼면 똥자루일 뿐이다. (예수회 박홍사제)

 

(요한19,25-27)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 어머니- 마리아, 이모-마리아, 그리고 막달레나 마리아.

성경은 십자(나무)가 곁에 ‘마리아’ 그 이름, 그리고 ‘여자’만을 소개한다.

 

(마태27,55-56) 55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56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마리아들이 ~ 

(마태28,1)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 우리가 공부했듯이 마리아 ‘쓰다’ ‘쓴물’ 이라는 뜻, 그 쓴물(마리아)들이 십자나무를 담아 단물(의인)이 되는 하느님의 계명,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십자나무의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의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가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마리아, 여자들이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어머니를 여인으로 부르신다. 남편의 짝, 아내. 그 호칭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여자(테무트-그릇) 마리아(쓴물)들의 교회의 구성이 완성된 것이다.

에수님의 열두 살(완성), 그 완성의 때에도 관습에 따른 축제로 예수님을 잃었고, 그 잃음은 예수님을 사람들 사이에서 찾으려 했던 마리아(루가2,42~참조),

그렇듯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도 늘 예수님 밖에서 서 있었던 마리아~~

 

(마르3,31-34)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늘 밖에 있었던 마리아가 오늘 복음에서 드디어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마리아가 우리(교회)가 닮아야 할 어머니이며, 죄인(쓴물)들의 모형인 것이다.

그 마리아 처럼이 성모신심의 모형인 것이다. 내 소원, 내 기도를 빌어 달라며 공경하고 섬기는 것, 성모신심이 아니다.

내 마음속 교만을 흩으시고 끌어내리시는 그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만들어 살리시는 그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는 것, 그것이 성모 신심인 것이다.

 

(루가1,50-53) 50 그분(하느님)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마음속 교만, 위선을 드러내고 내 자아를 끌어내는 사건들, 시련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자비인 것이다. 그래서 시련의 사건들은 꼭 필요한 것이다.

오늘 히브리서도 전하지 않는가?~~~

 

(히브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그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찬송을 드리는 것이 성모 신심인 것이다.

처녀, 동정녀(여자*테무트), 그 빈 그릇에 하느님의 것을 담으면 깨끗하고 거룩한 생명의 그릇이 되지만, 사람의 것을 담으면 개짐(이사64,4) 곧 더러운 걸레(똥걸레)를 담는 죽음의 그릇이 된다.

*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간구해 주소서 아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미사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요한19,25~2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6~27)

 

요한 복음 19장 25절과 19장 27절에는 '어머니'라는 뜻의 '메테르'(meter)가 사용되었다.

19장 25절에서는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과 마리아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고, 19장 27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하면서 당신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뜻의 정감있는 '메테르'(meter)란 표현을 했다.

 

하지만 요한 복음 19장 26절에서는 '메테르'를 사용하지 않고, 셈족 계통의 언어로서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인 '귀나이'(gynai)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여인', '부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어떤 여인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4절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해 '귀나이'(gynai)라고 불렀고, 지금 자신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십자가 형틀 위에서도 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느님의 계획하에 치밀하게 이루어진 구원 사업 안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둘째 하와이신 마리아의 성소와 역할을 규정지어 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피와 살을 나눈 혈육적 관계 안에서의 모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공적으로 첫 기적을 베풀어 당신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야 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자리와, 인류 구원 사업이 완성되는 십자가의 형틀의 자리와 거기에서 모든 은혜가 내려져서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와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자리가, 혈육과 육정의 관계를 넘어 각자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자신의 성소와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 구약 성경을 통틀어 첫 복음이라고 불리워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에 해당하는 '잇샤'(isha) 70인역(LXX)에서는 '귀네'(gyne)로 번역되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여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맡기기 위해 부르는 호칭으로만 '귀네'(gyne)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여자의 후손'이라는 모티프(motif)를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 그리고 출산 후에도 평생 동정이시라는 교리를 신덕 도리로 이천년 동안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는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 교회의 모친,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수락하셨는데, 그 수락한 모성이 요한 복음 19장 26~27절에서 인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를 상징하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루카복음 23장 34절, 루카복음 23장 43절에 이어서 세번째 말씀인 요한복음 19장 26~27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도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심으로써 이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시는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오는 것이 가장 구원과 완덕에 이르는 쉬운 길이며 빠른 길이고, 가장 완전하고 완벽하며 안전한 길이라는 말이다.

 

마리아론 학자들은 이 길은 바로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는 것과,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신 마리아의 성덕(聖德)을 본받는 것, 그리고 묵주의 기도로서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와 전구에 의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완전한 하느님이셨지만(요한1,1), 보통 여느 사람들처럼 이성과 감정을 지니신 온전한 인간이기도 하셨다.

 

자신의 손과 발이 못박혀 몸이 찢기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요한19,18.28)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눈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을 낳고 길러준 육신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무죄한 당신이 고통받고 죽어야만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이 아루어지기에,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는(요한19,25) 아들로서의 심리적, 영적 격정은 그의 온 심장과 오장육부를 파고들어 타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이 되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이 친어머니처럼 섬겨주기를 바랬던 마리아는 바로 자모이신 성교회,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교회를 상징하는데(십자가의 길 13처), 주님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는 믿음의 모델이며 은총의 전구자이시고, 예수님의 첫 제자이기도 한 마리아를 통해 구원과 성화와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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