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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聖女 김바르바라, 이바르바라님의 순교 (순교일; 5월27일)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7 조회수2,658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聖女 김바르바라, 이바르바라님의 순교

               

(순교일; 5월27일)

                   

 

      

             

김바르바라

 

바르바라

 

옥사

 

1839.05. 27

 

이바르바라

 

바르바라

 

옥사

1839.05. 27

                                                                            

                               

                   

                            

 

 

     

                         

      
  聖女
김바르바라

관련성지   옥사

   순교일

  1839.05.27

 

 

 

                      

기해년 5월 27일에는 옥중에서 사망한

김 바르바라와 이 바르바라라고 하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염병(染病 ㆍ 장티푸스)에 걸려 신음하다 죽어갔던 것이다.

사실 당시 체포된 교우들은 고문이라는 형벌보다도

굶주림과 목마를, 그리고 염병이라는 몹쓸 병으로 더욱 고생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부란성 열병(腐爛性 熱病)으로

너무나 좁은 감옥에 많은 사람들은 투옥한데서 발생한 것이었으며,

그곳을 말할 수 없이 불결하게 방치한데서 오는 독기였다.

 

김 바르바라는 1805년(순조5년) 시골에서 아주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본성은 순실 (淳實) 하고 신뢰감 (信賴感) 이 있었으며,

그의 부모와 동생은 비록 선교의 도리를알고 있었으나 독실하게 봉행하지는 않고 있었다.

13세때에 이르러 서울에 살고 있던 황 마리아라는 부유한 교우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후

비로소 입교하였으며 오륙년간 일심으로 천주를 봉행할 수 있었다.

         

김 바르바라는 일찍부터 동정지키기를 원하였으나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와서『훌륭한 자리가 나서 나는 벌써 승낙을 했으니

너도 시집갈 준비를하라』고 하며 마치 상대자가 교우청년인것처럼 꾸며댔다.

이에 그녀가『나는 동정을 지키고싶어요』라고 하면서 자기의 뜻을 이야기하니,

이버지는 만단으로 달래며『혼인하여 부부가 함께 봉행하면 방해함도 없을것이고

네자신이나 부모나 동생들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이다』라고 하여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하는수없이 그녀가 결혼을 하고보니 교우라고 생각하였던 남편은 아주 완고한 외교인이었다.

김 바르바라는 그를 입교시키려고 동거 15년동안

남편을 예로써 섬기며 항상 권면하였으나 결국 성공치 못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 여러자녀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사이는 점점 불합하였으니,

그 고초는 이루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아침내 남편은 귀화하지 못하고 말년에는 빌어먹다가 객사하였다.

김 바르바라는 그딸 가운데 하나만을 개종토록 할 수가 있었으며,

진심으로 교리를 봉행하여 한결같이 화평한 마음을 갖고 생활하였다.

그때 마침 조선에 새로 들어온 선교사들을 알게되어

성사를 받고 더욱 열렬히 기도와 착한일에 전념하였다.

교우들은 이러한 그녀를 거저 바르바라라고 불렀으며

또한 진주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도 유명하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2월에 김 바르바라는

그가 살던 진주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장은 그녀에게 배교하라 하였으나 거절하고,

교우들을 대라고 하였으나 그것도 거절하였다.

포졸들에게 그녀는 주뢰(周牢)를 틀리고 곤장을 맞아 팔이 부러지기 까지 되었다.

형조로 옮겨진 후에도 김 바르바라는 시종 신앙을 고백할 뿐 굴하지 아니하였다.

고문을 당하여 부러진 그녀의 사지는 영영 낫지를 아니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굶주림과 염병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3개월이상이나 그러한 고통 속에서 지내던 김 바르바라는 3개월 옥살이 끝에

5월 27일 옥중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시골 가난한 집에 태어나

13세에 서울 황미라아 댁에서 식모살이를 하다가

아버지의 강권에 외교인에 속고 결혼하여 불행한 15년에 과부가 되었고

 

체포된 후 옥중에서 굶주림, 기갈, 염병의 고통 가운데 

35세에 주님 품에 안기신

성녀 김 바르바라 님이시여

             

님이 계시는 천국을 우러러 기원하오니

천상의 기도 중에 저희를 기억해 주옵소서!....아멘+

 

     

 

  

 

                                                        

 

                     

         

              

              

     
   聖女 이 바르바라

관련성지    옥사순교일

   1839.05.27

    

 

           
  성녀 이 바르바라는 서울 청파동에 살던 교우 양반 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두 숙모인

이영희 막달레나(Magdalena)와 이정희 바르바라에게 양육되어 열심히 믿음을 지키며 자라났다.

그녀가 15세 되던 1839년 박해가 일어났고, 4월 11일에 두 숙모와 함께 체포되었다..

어린 나이에 포청에서 받은 무수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자 형조로 옮겨졌고,

형조판서는 이 바르바라를 배교시키기 위해 때로는 무서운 말로 위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녀를 유혹해 보았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뜻을 굽히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형관은 “나이 어린 것이 요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형조에서 처단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 바르바라를 나이가 어리다는 명목을 붙여 포도청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도 바르바라는 옥중에 퍼져 있던 전염병을 앓게 되었다. 열병에 걸린 이 바르바라는 1개월가량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또 약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운명하였다.

이때가 1839년 5월 27일이요, 그녀의 나이는 겨우 15세였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어릴 때 부모를 어의고

이영희 막달레나와 이정희 바르바라에게 양육되어 열심히 믿음을 지켰고

1839년 박해가 일어나, 4월 11일에 두 숙모와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신앙을 오롯이 지키고

옥중에서 열병에 걸려 1개월가량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또 약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15세에 운명한 성녀 이 바르바라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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