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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8(녹) 연중 제8주간 금요일 ...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27 조회수2,399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우리의 선조들은 자비로워 그 이름이 대대로 살아 있다.>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44,1.9-13

1 훌륭한 사람들과,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9 어떤 이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으며, 그 뒤를 이는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10 그러나 저 사람들은 자비로워, 그들의 의로운 행적이 잊히지 않았다.

11 그들의 재산은 자손과 함께 머물고, 그들의 유산은 후손과 함께 머물리라.

12 그들의 자손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고, 그들 때문에 그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13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들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선조들의 의로운 행적은 잊히지 않고 자손들에게 이어지며 그 영광은 사라지지 않는다.

 

 

 

 

 

복음<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였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시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11

입성사화는 본디 이윽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로 끝맺었을 가능성이 짙다. 나머지 부분은 마르코의 가필일 것이다.

 

12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이동은 마르코의 가필

 

13

사실 무화과 철이 아니었던 것이다는 전승자, 마르코 또는 필사자의 가필임에 틀림없다. 이 부분이 빠져야 이야기가 무리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무화과 철은 그 열매가 익는 때이겠는데 5월 말경부터 10월까지다.

 

14

먹는 일이 없으리라는 직역하면 먹지 못하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그분 제자들도 들었다는 마르코가 덧붙인 것이다. 원래 14ㄱㄴ절은 20-21절과 직결되었다.

 

15

장소 이동은 마르코의 가필.

성전 마당 가운데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 구역에서 상행위를 했는데 475곱하기 300평방미터나 되는 넓은 뜰이다.

주로 제물용 품목을 거래했는데 특히 희생제물인 소, , 염소, 비둘기 따위를 거래했다. 이 가운데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것이므로 빈자의 제물이라 일컫는다.

이스라엘 남자면 누구나 매년 한 번씩 성전세를 내는데 꼭 이스라엘 은화 한 세겔로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로마나 그리스 화폐를 이스라엘 화폐로 바꾸어 주는 환전상이 있게 마련이었다..

 

16

직역하면 그릇”.

 

17

인용 도입부. “또한 가르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마르코의 필치다. 따라서 인용문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 것이다강도들의 소굴역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의도를 마르코가 나름대로 풀이한 것이라 하겠다. 예수께서는 성전이 세속화하는 것을 혐오하고 온 인류가 모여 기도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해석인데 실상 예수님의 뜻은 그분 생전에는 실현되지 않았고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할 무렵에는 온전히 이루어졌다. 즉 하느님의 새로운 집인 교회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 구별없이 모두 함께 모여 기도했던 것이다.

 

18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매우 놀라워했기 때문이다는 마르코의 전형적인 필치이므로 그의 가필일 것이다.

 

19

시간의 흐름. 장소의 이동을 내용으로 하는 19절은 역시 마르코의 가필.

 

20

예루살렘에서의 사흘가운데 셋째날이 시작된다. 마르코의 가필이다.

 

22

2-23절 단절어의 변체가 어록에도 전해온다. 루카 17.6에 어록의 말씀이 고스란히 수록된 것 같아 그것을 옮겨 본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뽕나무더러 뿌리채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마르코의 말씀보다 루카 17.6에 보존된 어룩의 말씀이 더 신빙성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와 비슷한 과장법 또는 과장된 상징어를 퍽 즐기셨다.

 

상징어의 뜻인즉, 믿음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과연 지극히 약한 믿음이 그런 힘을 낼 수 있을까? 경험에 비추어 그렇지 않다. 강한 믿음만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어느 전승자는 루카 17.6의 말씀을 고쳐 22-23절을 만들었는데 빗나간 개작이 아니다.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도 엄청난 힘을 낸다는 말씀에는 이스라엘 특유의 또한 예수님다운 과장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23

원문에는 아멘

 

24

하느님이 청도를 들어주신다는 단절어다. 네 복음서에는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자주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 비유(루카11,5-7의 원형):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 재판관의 비유(루카18.1-8): 아들의 청을 들어주는 아버지 비유(마태7,9-11=루카11,11-13): 청하면 들어주신다는 단절어(마태7,7-8=루카11.9-10) 그리고 요한 14,13-14;15.7;16.23도 같은 내용의 말씀들이다.

 

청하면 들어주신다니 아무거나 청해도 좋단 말인가? 아니다. 우선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즉 하느님의 뜻이 이러어지기를 청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는 않고 오직 인간적인 소원이 성취되기만 빈다면 하느님을 요망의 노리개로 취급하는 불경이 되기 십상이다.

 

25

남을 용서해 주어야만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단절어의 변체가 마태6,14-15에 있다. 아울러 똑같은 사상이 주기도문. 먼저 화해하고 나서 제물을 바치라는 단절어, 무자비한 종 비유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 예수님이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신 기사는 두 갈래로 전해왔는데, 마르코와 요한은 제각기 하나씩 수집해서 자기 복음서에 수록했다. 두 복음서의 기사를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 차이점이 발견되나 우선 성전정화 시기가 아주 다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공적 활약 초기에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말기에 성전을 정화하셨다.

 

어느 것이 더 역사적 신빙성이 있을까? 예수님이 최고의회에서 심문받으신 때와 십자가에 처형되신 때 성전 모독죄가 거론된 것으로 보아 마르코가 전하는 대로 당신 생애 말기에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셨다고 하겠다. 성전에서 하는 짓거리들이 매우 못마땅해서 그렇게 하신 것은 틀림없으나 그 자세한 동기는 밝히기 어렵다.

 

양 복음서의 기사를 보면 예수님 자신이 성전정화의 동기를 밝히시나 그 내용이 아주 다르다. 이는 예수 친히 밝히신 동기라기보다 마르코의 교회나 마르코 자신의 풀이요 요한의 교회나 요한 자신의 풀이에 불과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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