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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보기 / 뱀처럼, 비둘기처럼, 양처럼, 예수처럼 (마태10:5-2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9 조회수5,661 추천수1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7. 9. 성경바로보기

 

 뱀처럼, 비둘기처럼, 양처럼, 예수처럼

 

(마태10:5-23)

5 예수께서 이 열 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6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가라. 7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10 식량자루나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11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12 그 집에 들어 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14 어디서든지 너희를 받아 들이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도시를 떠날 때에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나는 분명히 말한다. 심판 날이 오면 소돔과 고모라 땅이 오히려 그 도시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16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 17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 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19 그러나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21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여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동네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이유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난 그거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라는 소중한 것! 아마 자식이 있으신 분들은 자식들을 떠올리셨을 거고, 미혼인 분들은 부모나 형제 혹은 사랑하는 사람 등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재산이나, 명예나 인기! 이런 것들을 떠올리셨겠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떠올린 그 존재나, 그 물건이나, 그 상황을, 누군가가 우리 코앞에서 죽이고 부수고 빼앗아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가 우리 코앞에서,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자식의 가슴에 칼을 꽂고, 우리 눈앞에서, 부모의 심장을 도려내며, 애써 모은 재산을 일거에 다 불태워버리고 있어요.

지금 우리 것을 빼앗고 있는 그 존재를 우리가 보고 있는데, 그 존재를 제압할 힘이 있어요. 그 때 그 존재를 두말할 것 없이 죽이죠. 내 생명 같은 것을 빼앗아 가는 존재니까. 아마 갈기갈기 찢어서, 능지처참을 해버릴 것 같지 않으십니까?

하느님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시고, 부요하게 만들어주시고, 안락하게 만들어주시기는커녕, 내가 생명처럼 여기고 있는 것을 죽이고 빼앗아 가신다면, 그래도 하느님을 믿겠느냐 말이에요? 생명 같은 내 것을 빼앗아 가는 존재는, 그것이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죽이고 싶은 것이 죄인들의 본성이에요.

그런데 하느님이, 그 생명 같은 것들을 끊어내시고, 하느님을 생명으로 여기게 만드는 걸, 신앙생활이라 그래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여 버린 거예요. 내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래서 진짜 자식을 객관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식의 인생 속에 쌓이는, 그 어떤 스펙,(specification), 보다도 그 자식의 올바른 신앙에 집중하여 관심을 가지게 돼요.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하느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처럼 살고 싶어 해요. 그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라는 존재의 강함을 위해 관계와 소유라는 스펙을 쌓아요. 그래서 그렇게 쌓아가고 있는 라는 존재의 울타리 속의 것들에 손해를 끼치거나, 상함을 초래하는 것들은, 즉시 경쟁자요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한 것을 빼앗아 간 분이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하느님의 뒤를 쫓아가서, 그분의 등에 칼을 꽂아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그 존재를 하느님이 와서 우리 코앞에서 죽여요. 그리고는 너 그런데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니?’ 물으신단 말이에요. 내가 내 생명처럼 여기는 내 자식, 내 재산, 내 명예, 이거 없으면 목매달아 죽을 거 같은데, 하느님이 오시더니 그걸 부셔요. 그러더니, ‘너 이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 그럴 때에, 몇 명이나 그 앞에서, ‘, 그럼요.’라고 대답할 수 있겠느냐 말이에요. 그게 쉽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죽기보다 더 힘든 게 신앙생활인 거예요.

 

(요한12: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이 택한 백성들의 삶에 뚫고 들어오셔서, 그들이 , 사륵스, 의 존재에 확장으로 쌓아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폭격해서 떼어내시는 거예요. ? 살려내야 되니까. 그거 떼 내지 않으면 죽어요. 살려내야 되니까.

 

(마태복음 10:34-39)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보내셨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가 아녜요. ‘, 우리끼리 행복하게 잘 살자, 구원에 도달하자!’ 이게 뭡니까? 바벨탑이에요. 하느님은 그걸 부수십니다. 바벨탑을 부수겠다.’가 바로, ‘내가 칼을 주러 왔다.’라는 뜻이에요. ‘나는 평화를 주러온 게 아니야. 너희들 바벨탑 부술 거야.’

성경은 모든 성도에게 유효한 말씀이지 어떤 특정한 부류만을 위한 내용을 기록하는 게 아녜요. 인간은 자아실현이라는 명분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자기 챙기기의 달인(達人)이에요. 순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슬람 자살 특공대들 보세요. 순교거든요. 순교는, 나는 할 수 없는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목숨을 이렇게 끊어 가는데도, 내가 아무런 반항을 할 수 없게끔 나를 이렇게 만들어 가시는구나! 그게 성도의 순교인 거예요.

하느님의 선택 밖의 존재들은, 하느님을 영원히 등지고, 하느님이 안 계신 곳으로, 스스로 발길을 돌이키게 되는 거고, 그게 지옥입니다. 하느님의 선택 안에 들어있는 존재들은, ‘, 나는 아니구나.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요만큼도 깨끗해질 수 없는 존재구나!’로 가는 거예요. 그걸 구원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욥이 결국에는 자신의 본전을 완전히 폭로당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때까지 귀로만 듣던 지식의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여호수아 24:23)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 있는 남의 나라 신들(맘모나스)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신 야훼께 마음을 바치시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라는 존재의 확장을 꿈꾸며 쌓고 있는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이 우상이에요. 그걸 이방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예수님이 맘모나스라고 바꿔서 이야기도 했지만!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서, 이방 신에게 가있는 상태, 그게 부정(不淨)이에요. 죄예요.

신앙생활이란, 자기 사랑이라는 죄에서 돌이켜서, 하느님 사랑이라는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앉는 과정인 거예요. 그게 구원이에요. 성경은 누누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그러지, 내가 거기서 너를 도와줄게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컴 아웃 마이 피플(Come out, my people!), 나와라예요. 나와라!

당신의 나라에서 나와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옮겨가서, 이제 당신은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 말은 당신의 꿈 깨라는 뜻이에요. 비전! 야망! 다 내어 놓으라는 뜻이거든요. 그것까지 전해야 복음이에요. 그게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예요.

예수님께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던 유대인에게, 외치셨던 복음은 너무나 심플한 거였어요. ‘회개하라.’ 회개하라는 건, 지금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니까, 반대 방향으로 가라는 뜻이거든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너희들의 모든 노력과 시도를 일단 중단하고, 먼저 너희들의 무력함과 불가능함과 교묘하게 감춰둔 추악함을 인정하고, 너희 밖의 어떤 존재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에요. 그게 전도예요.

그런데 자존심 상하니까. 많이 배우고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은, ‘. 지금까지! 내가 행하는 거 부정하고, 하느님의 은혜만 붙들라고 하느냐는 거죠.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어영부영 배우려면, 안 배우는 게 나아요. 생짜배기들이 훨씬 나아. 복음전하는 데는요.

그러니까 올바른 전도를 받은 그 대상의 첫 번째 반응은,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나라는 존재의 자존심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인 자이며, 오늘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존재의 가치 챙기기를 위해서, 예수를 죽이고 있는 자입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돼요. 단언컨대, 구원이라는 걸, 나의 천국확보, 나의 구원확보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 갑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에서 유발된 감사는, 어떻게 죽은 흙에 불과한 이런 존재를, 아니 지금도 예수를 죽이고 있는 이런 존재를,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자각할 수 있는 산 존재로 만들어 주셨는가에 대한 면목 없는 감사여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들에게로 보내는 것 같은 마음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가서 세상에게 먹히라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냥 보내시니까, 인간들 스스로 무장을 했죠.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래서 성공했나요?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악의 실패예요. 양으로 가라 그랬는데, 이 양들이 사자의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나간 거예요.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한 마디로 전도는, ‘세상과 하느님 백성을 가르기인 거예요. 단절이에요. 분별이에요. 잘라냄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전도의 행위에 의해, 어떤 무리는 심판으로 떨어지게 되고, 어떤 무리는 구원으로 올라오게 되는, 분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절대 전도는 설득이 아녜요.

이사야가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라고 하는 하느님 앞에, ‘제가 갈게요.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하고 나섰을 때, ‘그래 가라!’ 그래놓고 뭐라 그랬어요? ‘가서 세상의 눈과 귀를 막아라! 못 알아듣게 해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서 모아오려고 그래요. 그래서 교회가 이 모양이 된 거예요. 엉뚱한 것을 기대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성당(예배)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올바른 전도가 행해지면, 세상이 예수를 때려죽였을 때처럼, 전도자를 죽이고 싶어야 정상이에요.

예수님이 복음 전했는데, 착하게 살던 세상이, 예수님을 때려죽였단 말입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올바른 전도를 행하려면, 그 회중에게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일이 일어나야 돼요.

 

(디모테오후서 4:2)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가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전도를 명하면서 전도의 정의를 내려줘요.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건, 아무데나 가서 중들 머리에다 손 얹고 복음 전하고 이러란 말이 아녜요. 그건 무례한 거죠. 하느님이 때를 주실 때, 항상 말할 수 있는 걸 준비하라는 거예요. 그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라는 말이에요..

따라서 전도는, 자신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모으는 행위여서는 안 되는 거예요. 오히려 가라지들을 갈라내기 위해서,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도저히 인간적인 가치기준으로는, 복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 앞에서 계속 생명나무 열매를, 거룹들과 불칼로 막아버리는 역할을 하는 게, 전도자란 말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그나마 갖고 있는 세상적인 힘들을 다 빼앗아버린 거예요.

 

(마태복음10:9-10) 9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10 식량자루나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먹을 것을 하느님이 챙겨줄 테니까, 그것 이외의 너를 증명하고 자랑할 만한 모든 것! 네가 힘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다 놓고 가라. 빵 공장 이런 거 갖고 가지 말라는 거예요. 연약한 모습으로 가서, 복음만 전해보라는 거예요. 그 때 누가 그거 듣고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못 온다는 거예요. 세상은! 하느님이 개입하신 자만 돌아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설교하는 사람만 답답해서 그렇지! 못 알아들어야 맞아요. 게다가 전도를 하는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데,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에요.

 

(마태복음 10:17-23) 17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 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19 그러나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21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여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동네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전도하라고 내보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해요?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는데요. 즉 세상의 권세자 들에게도 미움을 받고, 가족들에게까지 버림을 받아서, 하느님과만 묶이게 되는 게, 전도자의 삶이라는 거예요. 그 하느님이! 전도하라고 보내 놓고! 잘 살고 있는 사람, 다마스코에서 끄집어내더니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렸어요.

전도라는 거,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하느님께서 이런 것들을 막아주셔야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이 돼요. 그런데 핍박을 말씀하시는 주님이 그걸 막아주시겠다고 하지 않고, 그냥 다른 동네로 피하라, 그래요. 다른 동네로 피하면 핍박이 없어요? 거기도 있어요. 계속 당하라는 뜻입니다. 안 막아준다는 뜻이에요.

이러한 핍박과 고난이 분명, 그들에게 닥칠 것을 아셨으면서도, 가진 것까지 다 빼앗아버리고, ‘나가! 양으로 가!’라고 이야기하는 게 하느님이에요. 그게 성도의 이 세상살이입니다.

심지어, 이리들 앞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양으로 선,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그래요. 그 말은 양은 끝까지 양의 신분을 지켜야 하는 거고, 그 어떠한 곤경에도 이 세상의 다른 먹잇감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거예요.

뱀이라는 동물이 그의 지혜로, 이 세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적은 에덴동산에서입니다. 그래서 결국 피조물이라는 인간이 자기자리를 벗어나서 하느님 자리로의 도약을 시도했어요. 그걸 휘브리스, 교만, 라고 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리들 틈으로 양으로 보내지는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신 건, 절대 마귀의 유혹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양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말고, 끝까지 양으로 죽으라는 거예요. 사자로 무장하지 말라는 거예요. 변신해서 이리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뱀의 지혜예요.

에덴동산 이후로 뱀은, 모든 이들의 기피 대상이 돼요. 뱀을 보는 사람들은 징그럽고 무서워서 돌을 던지죠. 뱀은 날아온 돌을 뱀으로 계속 맞아야 돼요. 예수님이 구리뱀이 되셔서, 저주의 놋뱀이 되셔서, 장대에 달려서, 돌을 다 맞은 것처럼, 우리는 뱀으로 취급을 받아야 돼요. 이 세상에서! 돌을 맞아야 돼요. 그런데 다른 걸로 변신이 안 돼. 이게 뱀의 지혜예요.

비둘기의 순결함! 마찬가지예요.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물이 얼마나 감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먼저 날려 보냈는데, 이놈이 안 돌아왔어요. 성경에 의하면, 물이 마를 때까지 창공을 날아다녔다, 그래요. 어떻게 날았을까요? 까마귀가 그렇게 오래 못 날아요. 그런데 비둘기를 보냈더니 돌아왔어요. 발 디딜 데가 없었거든요. 7일 만에 또 보냈더니, 그 다음에 잎사귀 하나 물고 왔어요. 그 다음에 또 보냈더니, 이제 발 디딜 곳이 있어서 날아갔습니다. 주인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딴 거 안 먹고, 딴 데 발 안 딛고 주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거죠. 비둘기예요.

까마귀는? 하느님이 이거는 안 된다 해서 전부 멸해버린 그 세상, 그리고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그 물 위에, 죽은 고기에 발을 딛고, 죽은 고기를 먹고, 물이 마를 때까지 버틴 거예요. 그게 까마귀입니다. 따라서 비둘기의 순결함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이 세상의 죽은 고기에 눈을 안 돌리는 게, 비둘기의 순결함이에요.

그러니까 뱀의 지혜나, 비둘기의 순결함은, 하느님이 있으라고 한 그 자리! 어떤 자리? 양의 자리에서, 이 세상의 죽은 고기 끌어다가 사자로 호랑이로 무장하지 않는 거, 그냥 양으로 이리에게 먹히는 존재로 사는 거! 이게 뱀의 지혜! 비둘기의 순결함이에요. 그게 쉽냐고요? 그런데 그렇게 세상에게 먹혀 죽음으로, 그들은, 세상에 심판의 근거를 마련하는 거예요. ‘네가 내 백성들 그렇게 먹었지? 죽였지?’라는 심판의 근거, 그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미끼입니다.

 

성령이 너희들 입을 통하여 할 말을 다 하게 만들겠다는 거예요. ‘, 우리는 그냥 영감 받아서, 하느님이 그냥 아무 때나 막 전도하게 하시니까, 공부 안 해도 돼. 영감 받아 설교하면 돼. 영감 받아 전도하면 돼.’ 그게 무당입니다. 영감으로 설교하고, 영감으로 전도하는 인간들이 무당이에요.

하느님이 끌고 간다는 거예요. 네 자리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성도의 전도는 세상을 설득하여 성당(교회)으로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과 성도를 구분하고 가르는 행위인 거예요. 폭로시키는 거예요. 심판하는 거예요. 절대 인간의 노력과 열심을 보태서, 하느님의 일을 돕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성도는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은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저주의 독설 같은 복음을 전파하며, 숨어 있는 악당들의 악을 끌어내는 미끼인 거예요. 그게 전도란 말입니다. 다들 착하게 살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진짜 복음을 확 던지면, ‘왜 나를 무시해?’하고 그들의 악이 확 끌어 올려진다 말이에요.

성도는 근사한 종교행위와 도덕과 윤리 등으로, 선한 자인 양 행세하고 있는 더러운 죄인들을, 죄인으로 폭로해내기 위해서, 피 묻은 미끼가 되어서, 그래서 피가 필요한 거예요. 성도의 피! 피라니아들에게 물어뜯기면서, 성도와 세상의 구별을 짓는 자들인 거예요.

요거 피라니아, 나는 물리고 있어요.’ 그런데 피라니아가 나라는 미끼를 물고 끌어 올려지고 있는 거예요. 그게 거룩이에요. 구별됨! 착하게 사는게 거룩이 아니라, 피라니아와 내가 구별이 되는데, 나는 물리고 있어요. 그게 거룩이에요. 세퍼릿(separate)! 그걸 전도라 그래요.

그래서 주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사마리아인에게도 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다만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잘못 번역이 된 단어예요. ‘반드시라는 뜻이에요.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가라는 뜻이에요.

그 하느님의 선택된 자들만, 너희들의 말을 이해할 거야!’가 바로 잃어버린 양에게만 가라는 뜻이에요. 반드시 그들만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이에요. 분리요, 구별이요, 단절인 거예요.

 

(마태복음 10:11-15) 11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12 그 집에 들어 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14 어디서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도시를 떠날 때에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나는 분명히 말한다. 심판 날이 오면 소돔과 고모라 땅이 오히려 그 도시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구별을 해버리세요. 단절, 분별을 해 내신다니깐요. 전도로! 성도는 세상에 나와서 평화을 비는 자래요. 평화를 빈다는 어구를 직역하면, 샬롬을 전하라는 뜻인데, 그건 단순히 그 집에 평안함으로 빌어주라는 말이 아니라, 샬롬이신 예수를 전하라는 뜻이에요.

세상은 돈과 명예, 관계 이런 것 속에서 평안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데, 예수님만이 진짜 샬롬이시라는 복음을 전하라는 거예요. 그 때에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겠어요? 평화을 전하는데, 왜 이리가 양을 물듯이 물겠습니까? 평화을 전한다는 건, 예수만이 평화의 근거라는 걸 전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지금 평안의 근거라고 잡고 있는 거 아니라고 부정해 버리라는 게 평화을 전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반드시 반응을 하겠죠? 이게 어디 와서 갑자기 헛소리야! 그 때에 또 설득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라 그래요.

유대인들이 발의 먼지를 떨었을 땐, 이방 땅을 두루두루 여행하다가 자기 땅으로 돌아왔을 때, 고 경계선에서 먼지를 떨어요. 이방 땅의 그 부정한 거! 그 먼지조차도 허용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들의 땅에서는! 그래서 먼지를 떠는 거거든요.

그 말은 얘는 이방인이다. 하느님나라의 외인이다. 심판해버리라는 거예요. 구별해버리라는 거예요. 못 알아듣는 자는 하느님백성이 아니다. 잔인하죠? 그게 전도입니다. 하느님의 택한 백성만 알아듣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전도했을 때 진짜 누군가가 그 복음을 알아듣고 나 예수 믿을께요.’하고 나오면, 우린 무덤 속에서 시체가 기어 나온 것보다 더 무서워해야 돼요. 하느님이 진짜 오늘도 일하시는구나. 그런데 개나 소나 전부 설득해서 데리고 오니까, 이게 전도인 줄 알고, 하나도 기뻐하지 않아. 누가 성당에 온다, 그래도요. 그냥 전부 자기 유익을 찾아서 왔거든요. 그런데 이게 교회인 줄 알아요. 아녜요.

전도는 분리예요. 구별이란 말입니다. 심판이에요. 잘라내는 거예요. 못 알아듣는 자들아! 너희들이 좋아하는 이야기해주는 데로 가라. 이게 전도예요. ‘심판으로 떨어져라가 전도예요. 이걸 사랑이 없다 말씀하시면 안 돼요.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예요. 이것이요!

그렇게 그들에게 쫓겨나면, 그 평화가 너희들에게 돌아온다, 그래요. 그 말은 아무에게나,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잘 되세요! 잘 되세요!’ 해주면, 그가 그걸 안 받으면, 그게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그런 뜻이 아녜요. 고런 의도로 하는 인간들도 있어요. 또 고것도 죄예요. 자기를 위한 거잖아요? 그건,

평화가 너희 것이 될 거라는 거. 그들이 평화의 근거로 붙들고 있는 그것과, 너희들이 평화 근거로 붙들고 있는 것의 분리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너희 것이 진짜라는 게 확증된다가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온다는 뜻이에요.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있어야 ,이게 빨리 끝날 텐데. 하나도 모르니 길어질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그렇게 제자들을 발가벗겨서 내보내시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 가,

 

(마태105-8) 5 예수께서 이 열 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6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가라. 7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런 권능을 갖고 보내지는 사람이 양이에요? 이건 양이 아니라 용이죠. 그럼 예수님의 말씀에 모순이 있잖아요? 왜 이런 권능을 주시고, 이리에게 양으로 먹히라고 하시냔 말이에요? 오늘 본문 바로 앞 장으로 가시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이유가 명확하게 나와요.

 

(마태복음 9:35-36) 35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병들고, 슬픔과 고통이라는 죽음의 증상 속에 놓여있는 이유가 목자가 없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거예요. 그래놓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의 마음을, 병 고치는 것으로 보여줬는데, 그 말은 얘들아 너희들은 너희 스스로 병 하나 못 고치는 자잖아? 그건 죽음의 증상인 병에서 너희들 스스로는 못 나온단다.

왜냐하면 너희들에게 목자가 없기 때문에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목자가 되어서, 너희들의 그 병과 죽음을 내가 다 가져가야, 너희들은 살 수 있어!’ 이 복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설명해준 게, 예수님의 자비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해준 게, 병을 고친 거예요.

예수님이 자비(측은지심)의 마음을 갖고, 그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주었던 그 행위! 그 능력을, 제자들에게 그대로 주면서,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것을 했는지를, 너희들이 먼저 알고, 그리고 너희들도 그들에게 가서 똑같이 전하라는 거예요. 너희들은 스스로 병 못 고치잖아? 예수님의 자비로만 나올 수 있어. ‘볼래?’하고 고쳐주라는 거예요. 그걸 구원이라고 그래요.

 

(마태938)38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그러니까 추수할 일꾼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너희들은 하느님의 측은지심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복음을 선포하여, 죄인들과 알곡들을 갈라내라는 거예요. 그게 추수꾼이에요. 추수의 완료는, 항상 알곡만 거두는 게 아니라,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서, 가라지를 불에 태우는 것까지, 가라지를 가라지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누어 내는 것까지가, 추수란 말예요. 그래서 추수꾼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추수꾼이 부족하니까, 추수꾼을 더 달라고 기도하라고 해놓고, 그래놓고 그냥 12명만 보내요. 이 말은 전도할 사람이 부족하니까, 선교사를 많이 보내주세요. 이렇게 또 써먹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그 말이 아니라, 그러면 열두 명이 아니라 한 24명 보냈어야죠? 기도했는데 안 온단 말예요.

그 말은 너희들이 추수꾼이 되어서,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서, 죄인들과 악인들과, 하느님의 백성들 가르는 역할을 너희들이 해야 되는데, 미끼의 역할을 해야 되는데, 너희들이 먼저 자비를 알아야 돼. 하느님의 은혜를 알아야 돼. 그래야 추수꾼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추수꾼이 되게 해달라고, 그 자비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에요. 추수꾼이 모자라는 구나! 그러니 내가 한 30명 더 부를께가 아니잖아요? 추수꾼이 모자란다. 기도해라! 그리고 딱 그 사람만 보낸 건, 그들에게 내가 추수꾼의 자격을 갖추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거예요.

이건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인 우리 교회에게 한 말이란 말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바로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추수꾼이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하시면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신 건, 단순히 그 권능을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바로 전도라는 것이 죽음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것임을,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거예요. 세상은 그러한 기적을 보고도, 기적만을 신기해할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자비를 알지 못해요. 하느님의 자비의 필연성을 전하여, 심판받을 자와 구원받을 자를 갈라내는 거예요.

 

(마태복음 9:36-38) 36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37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38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이제 이게 이해가 가시죠? 이게 뭔 얘기인지, 따라서 그렇게 심판을 선포하는 추수꾼인 성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심판에 처해질 자들에게 당해야 돼요. 무시를 당해야 되고, 철저하게 외면을 당해야 돼요. 이리들은 절대 회개하지 않아요. 절대 세상에게 칭찬 못 받아요. 그래서 주님은, 보내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태복음 10:24-28) 24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25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 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하겠느냐?' 26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27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보세요. 세상은 아무리 기적을 행해줘도 거기서 예수의 자비심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잘남을 챙겨요. 절대 자기들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한다 말입니다. 그분이 먼저 귀신 소리 들었고, 그분이 먼저 돌에 맞으셨고, 그분이 먼저 배신 당해고, 그분이 먼저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쫓아가야 돼요.

전도는, 나의 삶과 나의 말로, 세상과 하느님나라를 분별해내는 거예요. 여기에 진짜 목자에 의해 끌려가는 자가 있구나!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전도예요. 양으로 있다가 사자로 변신해서, 이리를 혼내줄 수도 없어요. 뱀처럼 계속 돌을 맞아야 되고, 비둘기처럼 세상의 죽은 고기도 못 먹어요. 세상 힘을 완전히 무장 해제 당한 채, 신발 하나, 옷 한 벌이라는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게 돼요. 중요한 건, 그에게 목자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성도의 현실이에요. 양은 지독한 근시라, 자기 앞에 있는 목자 밖에 못 봐요. 그래서 목자만 쫓아가요.

 

(요한묵시록 14:4) 4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숫총각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다닙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바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에서의 어디로예요. 따라가야 돼요. 안 따라 갈 수가 없어요. 거기에서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가를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내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진짜 예수 믿고 있습니까? 세상은 자기들이 세운 기준과 잣대를 갖고 우리를 판단해요. 저것들 양이네. 저거 아주 약하네. 아무 때나 밟아도 되겠네. 그걸 몇 명이나 이해하겠느냐고요? 그래서 귀 있는 자만 들으라고 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마지막이 너희들이 이스라엘 마을을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오리라.’ 그러죠? 그 말이 심판의 긴박성이에요. 하느님이 귀 막아라, 눈 막아라!’ 그렇게 결정해놓은 자들은 절대 구원 못 받는다는 뜻이에요. 내가 간단 뜻이에요.

이 세상은 지금 하느님의 심판, 진노의 불길 아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여야 돼요. 온통 불이어야 돼요. 그 때 확 타버리는 게 지옥인 거예요. 하느님의 심판의 불길이 심지어 여길 태우고 있는 게 보여야 돼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자가 세상을 향해 외쳐야 될 말은 단 하나, ‘회개하라 불이야!’ 외쳐야죠? 그게 전도예요. 불이 난 게 내 눈에 보이면, ‘불이야!’라고 와칠 수밖에 없어요.

그가 진심으로 그걸 보고 있다면, 아무리 자제를 해도, ‘불이야!’라고 큰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 세상은, 지금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의 불 아래에 놓여져 있어요. 우리가 지금 심판을 전하는 자들로, 구원을 전하는 자들로, 보내진 거예요.

세상은 우리를 피라니아들이 물어 뜯는 피 묻은 고기 취급할 거예요. 그리고 물어뜯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뜯으러 올라오는 자들이 다 심판으로 떨어지게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당신들에게는 예수의 은혜와 자비가 필요하다고, 끝까지 외쳐주는 거예요. 그게 성도의 삶입니다. 피 묻은 양의 삶! 그 삶을 성실히 살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제발 우리 함께! 天國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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