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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마태12,14-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7 조회수4,14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7월 17일 토요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마태12,14-21)

 

 

1독서<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탈출12,37-42)

37 이스라엘 자손들은 라메세스를 떠나 수콧으로 향하였다아이들을 빼고걸어서 행진하는 장정만도 육십만가량이나 되었다.

38 그 밖에도 많은 이국인들이 그들과 함께 올라가고양과 소 등 수많은 가축 떼도 올라갔다.

39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반죽으로 누룩 없는 과자를 구웠다반죽이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은 이집트에서 쫓겨 나오느라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여행 양식도 장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40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다.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주님의 모든 부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42 그날 밤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으므로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도 대대로 주님을 위하여 이 밤을 새우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136(135),1.23.24.10.11.12.13.14.15

◎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주님을 찬송하여라좋으신 분이시다

○ 비천할 때 우리를 기억하셨네

○ 원수에게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네

○ 이집트의 맏배들을 치셨네

○ 이스라엘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셨네

○ 강한 손팔을 펼쳐 이끄셨네

○ 갈대 바다를 둘로 가르셨네

○ 그 가운데로 이스라엘 지나가게 하셨네

○ 파라오와 그 군대를 갈대 바다에 처넣으셨네

 

복음<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마태12,14-21)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내가 선택한 나의 종내가 사랑하는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제1독서(탈출12,37~42)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반죽으로 누룩없는 과자를 구웠다. 반죽이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쫓겨 나오느라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 여행 양식을 장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심년이다."  (39~40)

 

'누룩없는 과자', 즉 '무교병'은 이집트에서 경황없이 나오느라고 누룩으로 반죽을 부풀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반면에 누룩이 있는 빵, 즉 누룩으로 잘 부풀린 빵은 급박하지 않은 상황, 고난이 배제되어 있는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신명기 16장 3절에서는 직접적으로 누룩없는 빵을 고난의 빵으로 언급하면서 그 이유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급하게 나왔기 때문" 이라고 한다.

 

 고난의 빵인 누룩없는 빵과 어린 양의 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날에 빵과 잔을 나누시면서 그것을 '내 살과 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마르14,22~24).

 

출애굽 이후로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바로 이 누룩없는 빵을 먹으면서 그들이 이집트 땅에 있었을 때에 숱한 고난을 생각해야 했다(탈출13,3~10).

 

한편, 탈출기 12장 40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얼마나 거주했었는지 그 기간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을 근거로 해서 출애굽의 시점을 계산할 수 있다.

 

 야곱이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갈 때가 B.C.1876년이므로,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머문 430년을 빼면 B.C.1446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은 성경의 다른 부분과도 조화를 이룬다.

 

열왕기 1권 6장 1절을 보면,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후라고 되어 있다.

이때의 연도를 약 B.C.960년으로 보면, 출애굽 연도는 960년에 480년을 더하면 대략 B.C.1440년이 된다.

 

또 다른 증거로는 판관기 11장 26절을 보면, 입타 시대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거주한 지 300여년이 지난 때라고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판관 입타가 사울 임금보다 약 50년 전의 사람이므로, B.C.1050년에 통치한 사울 임금의 연대에 입타와의 간격 50년을 더하면 B.C.1100년이 된다.

 

여기에다 가나안 정복 후 입타까지의 300년 광야 생활 40년을 더하면 출애굽 연도는 B.C.1440년경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출애굽의 연대를 B.C.144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창세기 15장 13절에서 이집트 체류 기간을 400년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은 100년을 1대(代)로 계산해서 4대(代)만에 돌아올 것을 강조한 것이지 탈출기 12장 40절처럼 정확한 연수를 말한 것은 아니다(창세15,16; 사도7,6).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 예언을 이루시려고 

(마태12,14-21)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

 

앞절 마태12,10 마침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 앞8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 이라는 말씀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그 마음이 오그라든 마음이다성경은 고발 하려는 그 사람의 마음을 말씀하시며 그를 치유하시고자 하시는 것.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13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손을 뻗자 다른 손처럼 성해져 건강하게 되었다.

그런데 12절에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다른 번역본에는 선한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병행복음(마르루가)으로 가 보면 좋은일과 해치는 일목숨을 구하는 일과 죽이는 일말씀하시며 진노하신다.

그러니까 안식일에는 반드시 사람을 살리는 좋은일을 해야 하는 것그 좋은 일이란 어제 묵상 했듯이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것.

그분의 십자가로 얻는 용서하늘의 의로움그 십자가의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알려주어 용서로 사람을 살리는 그것이 안식일에 해야 하는 좋은 일인 것.

제사만 열심히 드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제사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된 것이기에(히브10,11참조), 그러기에 제사와 자기 의로움으로 착하게 살았던 그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한 것이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왜요예수님의 올바른 구원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욕망원함을 위한 그릇된 소문으로 말할 것을 아셨기에~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내가 선택한 나의 종내가 사랑하는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올바름,(공동번역에는 정의라고 번역되었음하늘의 정의하늘의 의로움인 것그 하늘의 정의를 반하는 것이 불의인데~

 

사도 바오로의 동족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보면~

(로마10,1-3) 1 형제 여러분, 내 마음의 소원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아닌 자기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삼는 것불의입니다.

 

(마태7,21) 21 “나에게 주님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하늘의 의로움정의를 실행하는 것인데하느님께서 세상의 속죄 제물로 보내신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그것이 실행인 것이다.

 

(요한6,29)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19 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사람의 거리그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는 듣지 못한다는 것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러 오셨기에~

 

(이사53;7)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올바름 하늘의 정의의로움을 이룰 때까지 곧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속의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하늘의 정의의로움을 아 이루실 때까지그 어떤 죄인도 꺽지도끄지도 않는 곧 죽음의 판결을 내리시지 않으신다는 것.

 

(요한12,47)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하늘의 용서생명의 희망인 것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 계약의 효과는어제도 오늘도 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하늘의 올바름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 구원의 올바른 말씀은 언제나 유효한 것.

 

(히브4,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아멘.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2,14~21)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18~21)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신 이유 구약의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찾고 있다.

 

주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 즉 이 세상에 보내실 메시야는 이방에 공의를 선포하며,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지 않으며, 이방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되실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메시야로서 자기 본래의 사명을 다 완수하기도 전에 백성들의 세속적 기대에 부응하여 단지 병고치는 분으로 널리 알려지길 원치 않으셨다.

 

마태오 복음 12장 18절 '종'으로 번역된 '파이스'(pais; servant) 사회적 신분으로서 '종'뿐 아니라 혈통적인 관계에 있어서 '아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분을 잘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 못해서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와 같은 '종'('둘로스';  doulos)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버지께서 마음에 드시는 일을 행하는 아들과 같은 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라는 뜻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 내면에 하느님께서 마음에 드실 만한 요건이 충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요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안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며(요한14,10),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당신 독자적인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요한7,16).

 

또한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I will put my Spirit on him)에서 '내가 ~ 주리니'에 해당하는 '테소'(theso; I will put) '두다', '놓다' 뜻을 지닌 동사 '티테미'(tithemi)의 미래 1인칭 단수로서 '내가 둘 것이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당신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두실 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 머리 위에 내려오신 사건(요한3,16)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에서 '그가 ~선포하리라' 번역한 '아팡겔레이'(apanggelei; he will proclaim) 원형 '아팡겔로'(apanggello) '~로부터'(from)라는 기원과 근원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 '소식이나 사건을 알리다', '전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앙겔로'(anggello)가 결합된 합성 동사로서, 다른데서 얻은 소식 따위를 공개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민족들에게 알릴 '올바름'이 하느님께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것이 공개적으로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기서 '올바름'으로 번역된 '크리신'(krisin; judgement; justice)의 원형 '크리시스'(krisis) '심판'보다는 '정의'(공의)의 의미를 더 함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민족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널리 선포할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전해진 '복음'이 그의 제자들을 통해 널리 증거되어질 것(마태28,18~20)을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2장 19절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는 같은 뜻을 지닌 내용을 두 번 반복해서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동의적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소리치지도'로 번역된 '크라우가세이'(kraugasei; cry out)의 원형 '크라우가조'(kraugazo) '크게 소리지르다', '야단스럽게 떠들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식의 의(義)를 내세우기 위해 타인과 논쟁한 경우가 없으며, 자신이 한 행동을 자랑하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니면서 떠들어 댄 적도 없었고, 길에서 소리 높여 광고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메시야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마태11,29).

 

그리고 마태오 복음 19장 20절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마태오 복음 12장 19절과 마찬가지로 동의적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부러진'으로 번역된 '쉰테트림메논'(syntetrimmenon; bruised) '깨트리다', '산산이 부수다', '상하다'는 뜻을 지닌 원형 '쉰트리보'(syntribo)의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 갈대가 '이미 썩어 부서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썩어 부서진 갈대는 그 자체로, 꺾지 않고 그대로 놔 두어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그러한 갈대를 꺾어 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부러진 갈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 비유하며,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꺾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푼다는 뜻이다.

 

또한 '연기 나는'으로 번역된 '튀포메논'(typhomenon; smoking)은 '연기를 뿜다', '꺼져가다'는 뜻을 지닌 원형 '튀포'(typho)의 현재 분사로서, 심지가 '현재 연기를 내고 있는 것'을 뜻한다.

 

초의 심지에 연기가 나고 있다는 것은 그 심지의 불꽃이 금방 꺼져버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금방 꺼져버린 심지는 끄지 않고 그대로 놔 두어도 불꽃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심지를 끄는 행위 역시 잔인하며 몰인정한 것이다.

 

여기서의 심지도 산산조각난 갈대처럼, 죄로 말미암아 아무런 희망없이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비유한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종, 또한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시는 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희망없이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이심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끝으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승리를 향하여 올바름을 이끌 때까지' 혹은 '승리를 위하여 올바름을 이끌 때까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마태오 복음 12장 18절 '올바름'에 해당하는 '심판' 혹은 '정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영광스럽게 그 뜻을 펼칠 때까지를 가리킨다.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고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하느님의 정의가 그 목적을 성취할 것이며, 그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인생들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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