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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 예언자의 표징 (마태12,38-4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9 조회수2,08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7월 19일 월요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요나 예언자의 표징 (마태12,38-42)

   

 

1독서<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14,5-18)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 임금에게 전해졌다그러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 백성에 대한 마음이 달라져,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 하고 말하였다.

파라오는 자기 병거를 갖추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섰다.

그는 병거 육백 대에 이르는 정예 부대와군관이 이끄는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나섰다.

주님께서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므로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았다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파라오의 모든 말이며 병거그의 기병이며 보병 등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가바알 츠폰 앞 피 하히롯 근처 바닷가에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다.

10 파라오가 다가왔다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을 들어 보니이집트인들이 그들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이스라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11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12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13 그러자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두려워하지들 마라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14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7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너희를 뒤따라 들어가게 하겠다그런 다음 나는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18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화답송 탈출 15,1ㄷㄹㅁ-2.3-4.5-6(◎ 1ㄷㄹ)

◎ 주님을 찬양하세그지없이 높으신 분.

○ 주님을 찬양하세그지없이 높으신 분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주님은 나의 힘나의 굳셈나를 구원하셨네주님은 나의 하느님나 그분을 찬미하리라내 조상의 하느님나 그분을 높이 기리리라

○ 주님은 전쟁의 용사그 이름 주님이시다파라오의 군대와 병거를 바다에 내던지시니뛰어난 장수들이 갈대 바다에 빠졌네

○ 바닷물이 그들을 덮치니돌처럼 깊이 가라앉았네주님당신 오른손이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시니주님당신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나이다

 

복음<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마태12,38-42)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제1독서(탈출14,5~18)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5ㄷ~16) 

 

'앞으로 나아가라고'에 해당하는 '웨잇싸우'(weissau)의 기본형 '나싸'(nassa)는 장막의 말뚝을 뽑아 내어 여행을 출발하거나 진행 중임을 뜻하는 단어이다. 즉 장막을 걷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다.  

 

하느님께서 출발 명령을 하시는 이러한 모습은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명령을 연상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군대로서 하느님의 명령과 함께 이제 하느님의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의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하시는 총사령관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16) 

 

'가르고서는'에 해당하는 '우베카에후'(ubeqaehu)는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그것을 쪼개라'는 뜻이다. '베카에후'의 기본형인 '빠카'(baqa)는 '(하나로 된 것을)쪼개다', '(닫힌 것을)열다', '(알을)깨다' 등의 의미가 있다. 본문은 홍해 바다를 둘로 완전히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가 단순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모세가 단지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가르는 행위까지 그에게 속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강한 바람을 사용하여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다(탈출14,21).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홍해를 '쪼개는' 일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 임무는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속한 것임을 이러한 표현으로 시사하고 있다. 

 

'빠얍바샤'(bayabbasha)는 '마른 땅'으로 번역되었다. '마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베쉬'(yabesh)에서 유래한 명사 '얍바샤'(yabbasha)에 '~안에(안으로)' 뜻의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런데 '야베쉬'(yabesh) '얍바샤'(yabbasha) 어근은 기본적으로 '수분을 지닌 물체가 수분이 없어서 마르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 속에는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려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있다. 

 

바다나 강에 물이 빠지고 나면, 원래 물에 깊이 잠겼던 부분은 갯벌이나 진흙 수렁과 같이 사람이 걷기에도 힘든 땅이 되는 것 당연하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금 그것이 마른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과 짐을 실은 수레들이 안전하고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役事)하실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말씀이다.

 

더군다나 '마른 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얍바샤'(yabbasha)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창세기 1장 9절과 10절 창조 때에 물과 분리된 '마른 땅' 기리키는데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물 가운데서 땅을 분리하여 그곳엔 온갖 생명이 자라게 하셨다. 

 

또한 노아의 홍수 후에 물이 걷히고 땅이 마른(창세8,14) 다음에 그 땅위에서 생명체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 속에서도 바다가 갈라지고 그곳에 드러나는 마른 땅은 하느님께서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한 또 다른 당신의 자비로우신 의지가 개입된 특별한 역사(役事)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바다 가운데 새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을 위한 재창조의 역사(役事)가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는 현상 가운데서도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탈출기 14장 24절에 '새벽에'(habboqer)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2018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마태12,38-42)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스승님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때에앞부분과 연결되는 이야기라는 의미

 

앞 37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

하느님의 진리곧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죽음을 구원의 복음으로 말하면그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을 전가받아 의인으로 선고 받을 것이고인간의 진리 곧 도덕과 윤리를 구원의 길로 말하면 죄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이니 죄의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

그것이 율법곧 제사와 도덕과 윤리로는 그 어느 인간도 구원이 이를 수 없기에~, 하느님나라는 완전히(100%) 깨끗한 이들만 들어가는 곳이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야고2,10참조)

 

예수님만이 우리 구원의 표징이신 것,

(루가2,11-12)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구유그 짐승(죄인)들의 양식으로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그 표징이신 분 앞에서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 예수님을 잘 못 알고잘 못 믿고 따르는 잘못()된 신앙이라는 것,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죗값그 대속의 죽음으로 사흘 밤낮을 계시는 것,

 

(마태16,21) 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요나는 죄인들의 구원자 이신 예수님의 모형인 것이다요나의 큰 물고기뱃속(스올저승곧 사흘 밤낮 죽음으로 죄인 니네베가 살아나듯 우리 또한 예수님의 죽음으로 살아나는 것,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느님 평화의 지혜로대속으로 얻는 용서안식그 평화의 예수님이시다.

요나의 죽음과 솔로몬의 지혜그 표징의 실체이신 예수님성경에서 모든 치유기적 등은 십자가의 예수님그분의 대속으로 얻는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

오늘 독서 미카서에서 이집트(세상)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의 마음자비 그분의 의로우심을 모르면서~

자신들이 준비한 제사의 제물(수천의 숫양)로 또 자신의 소생(아들곧 자신의 열심히 낳은 그 자기 의로움그 착한일로 하느님 앞에 한탄만 하는 이들그들은 그 모든 것이 구원의 능력 없음을 인정하는 그 부인버림으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늘의 공정을 실천해야 하는 것,

그 공정이란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죄의 대속으로 구원에 필요한 하늘의 의로움을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의로움을 전가시켜 주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 하느님의 공정(公正).

그 공정(진리)의 하느님을예수님을내가 먼저 믿고 이웃에게 전해야 하는 것그래서 이웃과 내가 살아나는 그것이 하느님의 공정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아멘.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2,38~42)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38~40) 

 

여기에서 '표징'으로 번역된 '세메이온'(semeion; a sign)은 어떤 인격이나 사물을 다른 것으로부터 두드러지게 구별해 주는 표시와 같은 것들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이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징조'와 같은 것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유대 랍비들은 장차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면, 그가 진정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은 표징을 보여줄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진짜 메시야일지도 모른다는 궁금증 때문이 아니라, 메시야가 아닐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에게 표징을 구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능력있는 가르침이나 지금까지 일으키신 많은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앞서 마귀들린 자를 고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오히려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한 것이라고 공격하였으며(마태12,22~24), 이제는 또다시 표징을 요구하는 변덕을 보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구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을 향해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절개없는'으로 번역된 '모이칼리스'(moichalis; aduterous)는 '간음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모이큐오'(moicheuo)에서 유래한 형용사로서 '간음하는', '혼외(婚外)정사를 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하느님과 그 백성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느님께 신실하지 못한','신앙을 버린'이라는 의미로 쓰인다(야고4,4; 에제16,15). 

 

전에 신앙을 가졌던 자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말씀에 만족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기적을 찾게 된다. 

 

지금 예수님께로부터 책망받고 있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인들 역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리울 만큼 악했으며(마태12,34), 눈에 보이는 기적으로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야 할 정도로 하느님께 신실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한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큰 물고기에서 삼키워져 죽은 줄 알았던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온전하게 살아나옴으로써  하느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세우셨음을 보여 주었던 표징을 가리킨다. 

 

'요나에 관한 표징'이 예수님의 표징이 될 수 있는 것은 요나가 바로 예수님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표징은 B.C.8세기경 북부 이스라엘의 예언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갇혀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 당신도 죽어 땅 속에 사흘간 묻혀 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땅 속에'로 번역된 '엔 테 카르디아 테스 게스'(en te kardia tes ges; in the heart of the earth)에서 '카르디아'(kardia) '마음', '심장'(heart) 으로 번역되는데, '땅 속에'라는 말은 '땅의 심장 안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문학적으로는 땅의 가장 중심부를 가리키지만, 비유적으로는 '죽음의 영역인 저승(스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 '스올의 뱃속'에 있었다고 표현하였으며(요나2,2), 이것은 그가 죽은 자의 영역에 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생명 자체이시고(요한14,6)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만(요한1,4), 죄인들을 대신해 죽음에 이르렀으며(히브2,9) 완전한 죽음의 영역에 종속되어 있었다(로마6,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므로(히브4,15) 더 이상 죽음의 권세에 매어 있을 수 없으셨고(사도2,24), 결국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41ㄷ) 

 

여기서 '더 큰 이'로 번역된 '플레이온'(pleion; a greater)은 '폴뤼스'(polys)의 비교급으로서, 양에 있어서 더 크거나 질에 있어서 더 우수하고 나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플레이온'(pleion)이 중성 단수로 쓰였다. 예수님께서 굳이 비교급 중성을 사용하신 것은 '요나'라는 사람과 예수님 당신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비교하시는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로부터 받은 심판의 메시지'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의 메시지와 은총'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예언자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 하나만을 듣고도 회개했는데,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심판 때에 그들은 더욱 철저하게 단죄받게 될 것을 보여준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42ㄷ) 

 

에디오피아 지역 스바에서 온 여왕은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만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모든 지혜를 보고 듣고 알고 배우기 위해서 그에게 왔던 것이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유대 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솔로몬보다 더 완전한 지혜를 소유한 분이 그들의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혜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유대인 자신들의 눈앞에서 가장 많은 지혜의 말씀과 기적을 베풀어도 믿지않는 그들의 불신앙과 완고하고 사악한 고집 때문에, 그들의 죄를 뒤집어 쓰고 무죄하신 당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수 밖에 없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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