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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7.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9 조회수3,116 추천수5 반대(0) 신고

 

(요나 예언자의 표징)

2021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2,38-42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어느 과학자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의 조화를 이룬 나비의 품종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이 나비 품종 개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열정적으로

실험을 반복하던 중에한 고치에서

유전자적 대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나비가 되어 부화하는 날그는 전 직원을

불러 모아서 고치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나비를 함께 기다렸습니다드디어

오른쪽 날개가 그리고 그다음

왼쪽 날개 대부분이 나왔습니다.

날개 색을 보면서 성공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왼쪽 날개가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잘 보니

왼쪽 날개의 끝이 고치의 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비도 힘이 빠졌는지 퍼덕이는

빈도수가 점점 줄었습니다.

실패로 끝날 것 같아서 과학자는

작은 칼을 집어 구멍을 아주 조금

잘라내었습니다그제야 나비는 고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비는 날지 못했습니다.

과학자의 피조물을 살리려는 행동이 그만

나비의 힘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며 하느님의 침묵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왜 우리의 일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으시는지,

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이렇게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이 가장 놀라운

기적이고 표징이 아닐까요?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의 놀라운 기적과

표징을 요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스승님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마귀를 쫓아내고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이를 배불리 먹이시는 등 이제까지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기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면 하느님의 아드님이

분명했지만그들은 보잘것없는

나자렛 출신의 목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시면

믿을 수 있을까요주님의 말씀과

기적을 직접 듣고 본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일상의 삶 안에서

주님을 느낄 수 없다면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분명히 놀라운 기적과 표징은 쉼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너희가 먼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자기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남을 자기처럼 망가뜨릴까 염려된다.

(성 아오구스티노).

증명사진

어느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고,

원하는 날짜에 맞춰서

글을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작가 소개와 사진 한 장을

부탁하는 것입니다간단히 제 소개를 써서

보낼 수는 있었지만문제는 사진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제 사진이 없는 것입니다.

겨우 증명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찍은 것입니다.

이 사진을 유심히 봤습니다.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이메일로 보냈더니

곧바로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신부님사진이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한 장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직원들에게 20년 전 제 증명사진을

보여 주며, “지금과 똑같지 않아?”라고

했더니 절대 아니라고 말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니,

20년 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동안 제 얼굴을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늙어갔는지도 몰랐나 봅니다.

지금의 나를 봐야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더 나은

나를 향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심판 때의 남방 여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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