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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 속에서 찾는 하느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9 조회수3,120 추천수3 반대(0) 신고

 

조금 전에 카르투시오 수도원과 잠깐 5분 남짓 통화를 했습니다. 저번에 스페인 출신 노 수사님이 다큐에서 보면 주방 담당하시는 수사님이 독뱀에 물려서 그때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습니다. 회복이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면 끝기도 시간이고 해서 간단하게 안부 전화만 했습니다. 다행히 수사님은 잘 치료가 돼서 퇴원하셨다고 합니다. 수도원 소식을 잠시 듣다가 묵상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 두 분의 형제님이 그것도 20대 후반이라고 합니다. 성소 체험 피정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피정을 한 후에 처음으로 피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이후로 성소 문의를 하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 피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한국 수도원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 수도원도 보편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 아르헨티나 수도원은 성소자가 10명이라고 합니다. 아주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워낙 카르스마가 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사님은 지난 주에 가족과 1년에 한 번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전화를 했는데 가족과 보내셔서 통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지 않았다면 벌써 사제가 되어 이제 주임신부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10월 달에 심사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 수사님 한 분이 지금 부제품을 받으셨는데 그분은 이제 조금 있으면 서품을 받을 겁니다. 아마 이때 수사님은 부제품을 받을 것 같습니다. 흰 종이에 볼펜으로 십자가를 그어서 기도하는 모습이 방영된 수사님이십니다. 다큐에서도 나왔지만 통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수도생활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체험 피정을 하는 성소자 이야기를 하다가 수사님이 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동안 성소자가 없었는데 지금 이런 성소자가 생긴 이유를 추측하자면 코로나 영향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코로나 영향이라기보다는 코로나로 인해서 세상이 힘들어서 회피의 수단이 아니라 삶이 고통스럽다면 하느님을 찾는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하고 계셨습니다. 실제 2차 대전 후에 성소자가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묵주기도 할 때에 나오는 신비의 이름을 언급하셨습니다. 고통의 신비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현상이 고통의 신비 같다고 하셨습니다이 말씀을 듣는 순간 묵상거리가 떠올라서 바로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녁 7시가 다 되어갑니다. 수도원 시계로는 끝기도 할 시간입니다. 이 기도를 한 후에는 취침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자정쯤에 일어나 밤기도를 하려면 그렇습니다.

 

만약 이 수사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라면 인간에게 고통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이 없다면 하느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고통이라는 게 하느님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고통이라는 게 필요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고통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이 고통이 없다면 하느님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확률은 높다는 건 사실일 것 같습니다. 당연할 겁니다.

 

삶이 고통만 있다면 그야말로 그건 지옥과도 같은 삶이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은 고통은 없지만 그런 환경에서 하느님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갈구하고 찾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라도 고통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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