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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설명 (마태13,18-2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23 조회수4,01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7월 23일 금요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설명 (마태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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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탈출20,1-17)

그 무렵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너의 남종과 여종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1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1(◎ 요한 6,68)

◎ 주님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복음<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마태13,18-23)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어떤 사람은 예순 배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파일:Rembrandt Harmensz. van Rijn 079.jpg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든 모세, 1659년작>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제1독서(탈출20,1~17)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된다." (2~3)

 

사람들은 왜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계명을 왜 안 지킬까?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은 아담과 에와의 속성 때문일까?

 

사실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과 에와가 교만과 불순명, 자유 남용으로 원죄를 지어서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 왔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지성으로 분명히 하느님의 뜻(계명)을 깨닫고, 자유의지로 그 깨달은 계명을 준수하기를 원하시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어떤 사람은 금한 실과 하나 먹었다고 해서 낙원에서 쫓아내고, 남자는 땀흘려 노동해야 양식을 먹을 수 있고,  여자는 산고를 겪고 자식을 낳게 하나? 하고 못 알아 듣는다.

하지만 계명은 창조주 하느님과 하느님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 개념이다.

 

계명을 지킬 때에 하느님을 섬기고 충성하는 피조물인 인간이 인간다워 지고, 하느님의 자녀다워지는 것이다.

이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계약'의 의미를 가르치고 알아 듣게 해야 할 것 같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A와 B가 '계약'을 맺을 때에 송아지를 한 마리 가지고 와 반을 잘라 두 토막으로 가르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을 '계약을 맺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계약'을 어겼을 때, 그 송아지처럼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히브어로 '계약'이란 'berit'(베릿)이란 단어를 쓰고, '맺는다' 혹은 직역하면 '자르다'는 뜻으로 'karat'(카랏)이란 동사를 쓴다.

'카랏 베릿'이란 '계약을 맺는다', '자르다'는 뜻이다.

 

'계약'(베릿)이란 물질 교환의 상행위를 의미하는 'contract'이 아니고,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인격을 나누고 교환하는 'covenant'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피'(생명 혹은 목숨)를 뿌리고 생명을 바쳐 계약을 맺는 것이다.

 

예레미야서 34장 18절을 보면 '나는 내 계약을 어긴 사람들을 곧 내 앞에서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가르고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맺은 계약의 규정들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그 송아지처럼 만들어 버리겠다'라는 말씀이 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그리고 그런 계약을 통해서 받은 것계약의 산물이 십계명<신정법; 神定法 혹은 신법(神法)>이다. 신정법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성격의 차원이 아니고, 안 지키면 벌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명을 어길 때,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인간의 존재 목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구약은 실제로 육신생명과 영혼생명의 죽음을 가져 왔지만, 신약은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으니 육신의 죽음이 없으니까 일단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신약은 육신의 죽음보다 영혼의 죽음, 즉 하느님과의 생명과 친교의 단절, 은총의 상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들은 육신이 없고, 인간보다 고차원의 지성과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단 한번의 충실성에 대한 시험으로 천사와 마귀(타락한 천사)로 운명이 결정났지만, 인간은 육신이 있기에 여러번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의 선함은 무엇이고 악함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은 기껏 백년이지만, 영면의 시간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바다의 물 한 방울과 모래 한 알처럼, 인간의 수명은 영원의 날 수 안에서 불과 몇 해일 뿐이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당신 자비를 쏟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종말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고 아시며, 그런 까닭에 당신의 용서를 넘치도록 베푸신다.'(집회 18.8~12)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계약의 산물인 십계명을 예사로 어길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요한 복음 14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겠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십계명은 위의 세 가지는 천주 사랑의 계명을 계시해 주고, 아래 일곱 가지 계명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계시해 준다.

'주님의 기도'에도 나타나지만,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고,그 다음 하느님안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계시한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대죄를 짓는데, 대죄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계명, 둘째, 지성의 인식 행위, 세째, 자유의지의 동의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할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을, 분명히 지성으로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좋아서 동의할 때 대죄가 성립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일곱 가지 계명은 다음과 같은 뉘앙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공동 생활을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데, 함께 상호 공존(공생)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애덕과 도움을 주지는 못할 지언정, 적어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일곱 가지 계명중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이 제일 중요하고, 이것은 에페소서 6장 2~3절에도 반복되지만, 약속이 붙은 계명이다.

그 약속이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따르는 것이다.  

이 계명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국가와 국민의 관계, 상사와 아래 사람의 관계 등으로 확대 해석하고 적용되는 계명이다.

 

그리고 6계명 '간음해서는 안된다'와 7계명 '도둑질해서는 안된다'는 계명은

실제로 행위로 대죄를 범하는 것을 말하고, 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와 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말라'는 계명은

생각으로 대죄를 범하는 걸 말한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마태 13,18-23)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구원의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알아들으면 모든 것이 헛 것이 되는 것,

성경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큰 지를 인간은 알 수 없음을 깨닫고그 높고 깊으신 하느님의 사랑에넓고 크신 그분의 마음에 의지해야 하는 것,

 

(잠언25,3)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임금의 마음도 헤아릴 길 없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사랑에 인간의 사랑을 비유하여그 인간의 사랑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인간의 사랑을 위한 가르침을 주고받으면그것이 인간의 길로 말씀()을 받은그래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이 또한 돌 밭이 되는 것죄인들의 생명수이신 말씀()이 나오지 않는 돌 밭인 것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우리의 삶인생에는 온갖 시련이 있기 마련인 것이고또한 인간의 사랑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말하면 환난과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요한15,18~참조)

그러나 그 환난과 박해와 함께 가는 것이 신앙이다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안에 숨겨져 있는 그분의 이타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먹고 마셔야(믿어야넘어지지 않고곧 좌절과 실망치 않고 구원의 희망으로 굳건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말씀을 인간의 뜻원함을 위한 것으로 받으면 세상의 재물과 명예의 유혹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간의 사랑의로움그리고 인간의 재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기에성경말씀은그 모든 것을 부인 하라고버리라고 하시기에 숨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어떤 사람은 예순 배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도 또 닮을 수도 없음을 깨닫고 그저 그분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의지하는 그것이 열매인 것이다.

*우주의 크기는 수천억개의 별로 은하계를 이루고 있고 그 같은 은하계가 또 수천억개를 있는 것이 우주라고 한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의 별이 150억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는데빛의 속도로 30만 키로를 150억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 이란다.

하느님은우주를 왜 그렇게 크게 만드셨을까꼭 그렇게 만드셔야 했나그것은 우리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 당신의 무조건적 사랑 고백이신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의 하느님 앞에 인간이 자신들의 이기적 사랑으로 잘 하고 있다고 잘난체하는 꼴이라니~웬 ㅉㅉ~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아멘.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3,18~23)

  

"너희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18~23)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 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 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사탄. 마귀)를 상징한다(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 '가시'나 '가시덤불'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 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소성무일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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