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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녹) 연중 제18주일 ...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31 조회수3,681 추천수1 반대(0) 신고

복음<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5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려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가?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이영헌 신부님)

24

공동체의 일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에 그 근원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 안에 그 공동체가 받아들여짐으로써 일치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 원칙이 예수의 기도에 표현되고, 예수는 그런 일치를 아버지 하느님께 전구한다. 이 일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주어지고 또한 가능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는 믿는 이들의 일치를 위한 원형이요 모범일 뿐 아니라 일치를 가능케 하는 원인이요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이 일치는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공동체가 실제로 일치를 나누어야 할 임무다. 이것은 사랑의 계명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공동체의 일치는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를 믿도록 이끄는 일치로서 공동체의 임무와 함께 더욱 명료하게 언급된다. 공동체는 하느님과 결속된 실존 안에서 하느님을 멀리한 인간세계를 위해 증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여기서 하느님의 사람과 예수의 구원행위가 이룰 수 있는 대상으로 시사된다. 이 내용은 예수가 세상을 위해 아버지 하느님께 간구하지 않는다는 말과 상충되는 둣하지만. 그 관점이 다르다. 여기서는 세상에 대한 복음선포적 관점이 강조된다. 아마도 요한 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사가 반영된 듯하다.

 

25

동문서답식 반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예수의 신원에 관한 질문이므로 오히려 예수와 대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예수를 랍비라고 부르는 것도 직접 무엇인가를 듣고 배우고자 하는 원의를 시사한다.

 

당시 상황에 걸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예수가 홀로 물 위를 걸어온 것을 상기시킨다.

 

26

예수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알고서 그것을 들추어낸다. 즉 제자들만이 물 위를 걸은 예수를 체험했음을 시사한다. ”표징을 본다란 예수의 행위에서 신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기적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보고 파악함을 가리킨다. 예수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빵의 기적이 아직 그런 의미로 파악되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된 셈이다.

 

27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약속된 양식으로 언급된다. 이 양식은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양식으로서 이른바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양식이며 사람의 아들이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맥상 사람의 아들은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맥상 하늘부터 내려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을 뜻한다.

 

따라서 이 양식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아들이 주게 될 천상적 선물이다. ”사람의 아들이 줄 것입니다라는 미래적 표현이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구원의 선물로서 먹고 마시도록 제공될 예수의 살과 피곧 성체성사적 선물로서의 음식과 음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맥상 예수 자신이 계시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빵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자는 현존하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또한 예수 자신이다. 이 예수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때문에 자신이 곧 구원의 선물을 주는 분이요, 또한 자신을 음식과 음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다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아들로서 구원의 선물, 곧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 줄 양식이란 신적 생명을 지닌 예수 자신과 그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과 동시에 성사적 음식과 음료와도 관련된 표현이라고 폭넓게 봐야 한다.

 

원래 의미는 봉인하다“,”날인하다란 뜻인데, 이 동사가 사용된 3.33의 맥락과 한 문맥에 따라 확증하다로 전역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의 아들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확증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하느님이란 표현은 파견된 사람의 아들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시사한다.

 

28

예수의 말을 오해한 질문이다. 힘쓰시오란 말을 오해하여 일들로 생각한 것이다. 사실상 하느님의 일들은 하느님 자신의 행위이고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이해하고 찬미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다만 하느님에 의해 요구되는 을 뜻할 뿐이다.

 

29

하느님의 일들이 예수의 대답에서는 단수형태,하느님의 일로 언급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은 곧 당신이 파견한 이를 믿는 것 하나뿐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이 파견한 이를 믿는 인간의 행위 또는 태도다. 하느님의 요청 또는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바로 이것을 하느님은 원하시며, 이것으 하느님의 원의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다. ”하느님의 일로서의 믿음이 인간의 성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원의에 따른 인간의 태도 또는 행위로 부각된다.

 

30

예수를 믿게 할 만한 표징을 요구한다. 이 표징은 우선 외적으로 명확히 드러나느 놀라운 기적으로 또한 31절에서 시사하듯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상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자기네가 생각하고 요구한 대로 신기하게 이루어져야 믿겠다는 뜻이다.

 

28절과 정반대되는 입장표명이다. 즉 자기네가 하느님의 일들을 하고자 예수에게 물었던 자들이 이제 반대로 예수더러 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표징 요구와 함께 예수에 대한 그들의 불신을 시사한다.

 

31

출애 16.4.15;시편 78.24참조

요구한 표징이 이제 광야의 만나와 같은 것으로 시사된다.

 

32

인용된 성서구절이 예수 편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만나를 주셨다. 당시 유다인들은 모세를 해방자”,“구원자로 여겼고, 모세가 약속한 메시아적 예언자도 모세처럼 만나를 먹게 해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는 모세를 통하여 만나를 주신 분이 곧 자기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모세를 능가함을 시사한다. 과거형 주었다를 현재형 준다로 설명한다.

 

물론 유다인들도 출애굽이나 만나를 과거사건으로만 여기지는 않고 앞으로 올 메시아 시대와 연관시켰다. 예수의 현재형 언급은 바로 그 시대가 지금 와 있음을 뜻한다. 예수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주시는 빵은 참된 빵이다. 하늘의 빵은 만나보다 훨씬 뛰어난 빵이며 실제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빵으로서 새로운 빵이다. “참된 빵이란 하늘의 빵이 만나의 의미를 참으로 성취하고 신적 본질과 생명으로 충만함을 가리킨다.

 

33

예수가 말한 하늘의 빵만이 왜 참된 하느님의 빵인지를 밝힌다.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빵의 능력과 역할이 예수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졔시한 말과 연결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믿는 자 모두에게 생명을 준다와 비교할 수 있다.

 

34

여기서 선생님은 그리스도론적 칭호가 아니라 그냥 존칭이다(4.1-15 참조).

예수의 말을 오해한 말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의 말을 오해한 것처럼 그들은 계시되는 예수의 인격보다 약속한 선물을 먼저 생각한다. 즉 예수가 말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빵을 지상적 기적의 빵으로 생각한다. 이리하여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27)자들임이 드러난다.

 

35

예수 자신이 32-33절에 언급된 하느님의 빵이라는 결정적 자기계시다. 즉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빵으로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자기계시가 촉구와 구원 약속으로 연결된다. 이런 구조로 된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은 요한복음에 더러 있다. 허기와 갈증의 해소는 구약성서에서 실존적 위기와 불안을 이겨내는 구원을 가리킨다. “오다믿다
에는 모두 예수를 믿으라는 촉구가 내포되어 있다. 문맥상 이 구절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길이 남아 있을 양식을 예수 안에서 또한 예수를 통해서 얻게 되리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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