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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14,13-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2 조회수3,71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2일 월요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14,13-21)

 

 

1독서<저 혼자서는 이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민수11,4-15)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아무것도 없구나.”

만나는 고수 씨앗과 비슷하고 그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백성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거두어서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그 맛은 기름과자 맛과 같았다.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10 모세는 백성이 씨족끼리 저마다 제 천막 어귀에 앉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주님께서 대단히 진노하셨다모세에게도 그것이 언짢았다.

11 그래서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12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그런데 어째서 당신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까?

13 백성은 울면서 먹을 고기를 우리에게 주시오.’ 하지만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14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15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제가 당신의 눈에 든다면제가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81(80),12-13.14-15.16-17(◎ 2)

◎ 환호하여라우리의 힘 하느님께!

○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이스라엘은 나를 따르지 않았다고집 센 그들의 마음을 내버려 두었더니그들은 제멋대로 제 길을 걸어갔다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나 그들의 원수들을 당장 꺾고내 손을 돌려 그들의 적들을 치리라

○ 그들이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아첨을 받고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되리라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리라

 

복음<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마태14,13-21)

13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제1독서 (민수11,4ㄴ-15)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4)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5)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섞여 사는 무리'(mixed multitude; rabble), '잡다한 족속들'이 포함될 수도 있고, 모계쪽만 이스라엘 민족(레위24,10)인 혼혈아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비주류 계층으로 누구보다도 불만이 많을 수 있고,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가 있었다.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로 번역된 '아싸프쑤프'(asapsup)는 탈출기 12장 38절에 나오는 '이국인' 즉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이 다른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함께 모여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키는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있었던 일부 불만 세력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탐욕을 부리다'로 번역된 '히트아우우 타아와'(hithauu thaawa)에서, '히트아우우'와 '타아와'는 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이다. 

 

'히트아우우'는 '원하다', '갈망하다'(잠언21,10), '사모하다', '바라다'(미카7,1)라는 뜻을 지닌 '아와'(awa)의 재귀형으로, '탐내다'(신명5,21)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타아와'는 '아와'(awa)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욕심', '탐욕'(시편106,14), '정욕', '욕심'(잠언21,25), '소원'(시편21,3)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어서 따라오는 내용으로 보아 이들이 가진 탐욕은 음식에 대한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음식에 대한 그들의 탐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지나친 육체적 욕망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앙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 (4) 

 

원문에 '아싸프쑤프'로 나오는 불만 세력들의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갈망하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주위 환경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와야슈뷰'(wayashubu)는 접속사 '와우'(wau)와 '돌아가다'란 뜻을 기본적으로 지닌 동사 '슈브'(shub)의 미완료 3인칭 복수형이 결합된 것이다. 

 

본문에서 이 '슈브' 동사는 '다시'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하느님께로부터 돌이켜 옛 행실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민수기 11장 1절의 말씀은 "백성이 주님의 귀에 거슬리는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그것들 들으시고 진노하셨다. 그러자 주님의 불이 그들을 거슬러 타올라 진영 언저리를 삼켜 버렸다." 이다. 

 

민수기 11장은 지금까지 진술되어 오던 민수기 내용의 전환전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출애굽 제1세대의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이 민수기 11장 서두에, 특히 민수기 11장 1절과 4절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슈브'동사는 민수기 14장에 서술된 내용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슈브)이 낫지 않겠느냐고 서로 논의한 다음, 결국 한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슈브)고 결의한다(민수14,3.4).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민수14,35), 모세는 그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이 주님 뒤를 따르지 않고 '돌아선 탓'<배반했기('슈브')때문> 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민수14,43). 

 

이처럼 민수기 11장 4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울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신앙하는 옛 행실(탈출15,24; 16,2; 17,3)로 '다시 돌이켜서' 결국은 이집트의 옛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려는' 주 하느님께 대한 '배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축에 둘러싸여 있으면서(탈출12,38; 19,13; 34,3) 고기를 달라고 통곡하였다. 아마도 이 가축들은 하느님을 위한 제사용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먹지 않았던 것 같다 (탈출5,3; 10,24-26). 

 

그렇다고 이들은 기근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그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만나가 하느님께로부터 공짜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식용을 다양한 먹거리로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불평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느님에 의해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더 좋고 더 풍요로운 것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미 1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신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탈출16,1.13). 

 

이집트에서 나온 지 1개월 후 그리고 홍해를 건너 엘림을 지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원망했고, 하느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진을 덮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느님을 믿고 간구하기 보다는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라고 슬퍼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 역시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민수11,13)라고 말한 것으로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이나 모세나 모두 1년 전 신 광야에서 메추라기 사건을 별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이 일회적이었다는 점(탈출16,13),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고기를 한 달 간 구역질이 나도록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점(민수11,20)을 참고하고, 

 

 둘째로 봄철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홍해를 건너 이동하는 메추라기가 운좋게 자연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떨어진 것으로 여겨,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안 볼수도 있다는 점

 

셋째는 시간적인 요인으로,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메추라기 사건의 시기는 시나이산을 떠난 시기가 출애굽한 이듬해 이월 이십일(민수10,11)이므로 그 이후가 분명하다는 참고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 광야에서의 첫 메추라기 사건(출애굽 일년 둘째 달 보름; 탈출16,1)이 있은지 약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그때의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믿는 믿음이 많이 시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공짜로'로 번역된 '힌남'(hinnam; freely; at no cost)은 '은혜','호의'를 뜻하는 명사 '헨'(hen)에서 유래된 부사로서, '거저', '값없이'(창세29,15)라는 뜻이다. 즉 여기에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수기 11장 5절에 기록된 음식들은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파와 마늘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일꾼들에게 식사로 제공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노예 생활의 강제 노역에서 이들은 참으로 힘들게 수고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음식들은 지극히 당연한 대가요, 오히려 부족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굳이 '공짜로'라는 표현을 써서 말한 것은 모세를 향한,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강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집트의 종으로 있었을 때에도 이러한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는데, 이제 자유로운 계약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 겨우 공짜로 주어진 것이 이 만나뿐인가?'하는 한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배부른 노예생활, 종살이가 배고픈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로운 생활보다 더 낫다는 불신앙의 극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4,13~21)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여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14) 

 

'군중'에 해당하는 '오클로스'(ochlos; multitude; crowd)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본문은 여기에 양과 정도가 몹시 많음을 나타내는 '폴뤼스'(polys; great; large)란 형용사까지 사용하여 마태오 복음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람들의 수효가 마태오 복음 14장 21절에 의하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따라서 여자들과 아이들 수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에 육박하는 상당히 많은 군중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14장 14절의 언급에서도 할 수 있지만, '군중'을 가리키는 희랍어 '오클로스'(ochlos)가 '귀족'과 대조를 이루는 '천민'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데서도 암시가 된다. 

 

이들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께 큰 희망을 걸고 무리지어 나왔던 것이다. 

 

한편,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e; was moved with compassion; had compassion)의 원형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gchnizomai)는 '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목놓아 기다리다가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아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탕자의 아버지가 가졌던 측은한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보여진다(루카15,20).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병자들을'에 해당하는 '아르로스투스'(arrostous; sick)의 원형 '아르로스토스'(arrostos)는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알파'(a)와 '올바로 살다', '평안하다'(사도15,29)로 번역되는 '론뉘미'(ronnymi)의 변형이 합하여진 단어로서 '평안함이 없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으로 병든 자를 가리키지만(마르코6,5; 16,18), 마음에 괴로움을 안고 사는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당시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음을 알 수 있고, 14장 15절에 저녁때가 되었다는 표현도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들을 고쳐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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