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7. 파라오의 딸과 혼인한 솔로몬 / 솔로몬의 통치[1] / 1열왕기[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4 조회수4,086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파라오의 딸과 혼인한 솔로몬(1열왕 3,1-3)

 

다윗이 죽자 솔로몬은 아버지의 여러 유언들을 받들어 후속조치를 신속히 단행하여 왕권을 장악하였다. 이처럼 그의 왕정이 시작되자, 그는 이집트 임금 파라오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이리하여 양 집안간의 결혼은 무엇보다 정략적 차원서 이루어졌다.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가 한때 노예 나라처럼 멸시해 압제하던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다. 그런데 이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왕과 계약을 맺고는 자신의 딸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그 일은 어쩌면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미 여러 나라에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으로 확실히 입증이 되기도 한다. 솔로몬은 이 혼인으로 나중에 파라오에게서 해안 길을 통제하는 성읍 게제르를 얻게 된다(9,16 참조). 그런데 여기 나오는 이 파라오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는 파라오의 딸을 맞아들여, 자기 집과 주님의 집과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성벽을 다 짓기까지 그녀를 다윗 성에 머무르게 하였다. 사실 예루살렘은 여러 세기를 두고 계속 확장되었다. 솔로몬이 도성을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불완전하게만 알려졌는데, 이 공사는 예루살렘의 초기 건립단계에 속한다. 그리고 이 다윗 성은 다윗이 정복한(2사무 5,7-9) 예루살렘의 옛 성채를 가리킨다. 이곳에 파라오의 딸을 위한 특별한 집이 세워진다(7,8 참조). 주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 그때까지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산당은(1사무 9,12 참조) 일반적으로 성 밖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예배 장소이다. 여기에는 보통 부속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12,31 참조), 적어도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식당만은 반드시 딸려져 있었다. 이 산당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늘 자기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풍산 신 숭배와 죽은 이들에 대한 예배와 종교적 간음과 같은 여러 종교 예식을 함께 거행하였다. 그래서 그곳 산당에는 제단과 신을 상징하는 커다란 돌기둥, 그리고 아세라 여신이나 남근을 상징하는 신성한 말뚝이 마련되었다. 산당은 흔히 풍산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들과도 연관이 된다.

 

아마도 산당의 기원은 유목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팔레스티나에 정착할 때에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에 강한 영향을 받아, 이 산당에서 주님께 그들의 제사를 즐겨 바쳤다. 그러나 이런 종교 형태는 당연히 예언자들의 혐오와 비난을 사게 되는데, 그들의 비판 운동이 당시에 반영되어 있었다. 산당을 지배하는 혼합주의는 그 숭배자들에게 늘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히즈키야 통치 시대부터(2열왕 18,4), 특히 기원전 622년 요시야 종교 개혁 때부터 산당서 바치는 제사를 금했다(2열왕 22,23; 특히 23,5.15.19 참조). 모든 경신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거행되었다. 산당의 이용이 완전히 근절된 계기는 바빌론 유배였다.

 

사실 솔로몬은 이 산당이 이스라엘 신앙에 가져올 위험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주님을 사랑해,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그도 산당에서 제사 드리고 향을 피웠다. 이렇게 그가 산당에서 제사를 바친 것은 어쩌면 잘못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율법은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가 파라오의 딸과의 혼인은 정략적 기회를 노린 것이기에 이런 그의 행동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한 율법에서의 금지는 이민족의 딸들이 그들의 아들들에게 불륜을 저지르지 못하게(탈출 34,16 참조)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중에 솔로몬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11,4-8 참조). 그렇지만 이민족 여자들과 혼인하고서도 이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만을 찬미한 이들도 있다. 예컨대 나오미의 두 아들 마흘론과 킬욘, 다윗의 증조부로 이방인 모압 여인의 남편 보아즈가 그렇다(1,2-4; 4,1-22 참조).

 

어쩌면 솔로몬의 경우에는 이집트와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쟁의 위험을 피하고, 주님의 집을 뜻대로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이렇게 그가 파라오의 딸과 혼인한 것은 욕정 때문이 아닌,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파라오의 딸은 이집트 우상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솔로몬도 그녀를 다윗의 거처로는 들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 혼인을 두고 솔로몬을 꼭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그도 아내들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탓에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께서도 솔로몬에게 책임을 물으셨다.

 

이처럼 당시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전이 마련되지 않았다.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고 계약의 궤는 그 다윗 성의 성막에 있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8. 지혜를 청한 솔로몬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파라오의 딸,게제르,지혜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