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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마태15,21-2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5 조회수2,78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4일 수요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마태15,21-28)

 

 

1독서<그들은 탐스러운 땅을 업신여겼다>(민수13,1-2.2514,1.26-30.34-35)

그 무렵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내가 살아 있는 한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그 날수대로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화답송 시편 106(105),6-7ㄱㄴ.13-14.21-22.23(◎ 4)

◎ 주님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조상들처럼 저희도 죄를 지었나이다불의를 저지르고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저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당신의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 그분의 업적을 어느새 잊어그분의 분부를 따르지 않았네사막에서 그들은 탐욕을 부리고광야에서 하느님을 시험하였네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복음 <여인아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제1독서 (민수13,1-2.25-14,1,26-30.34-35)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주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27-29)

 

'나에게 투덜거리는'으로 번역된 '말라님 알라이'(mallanim allai)에서, '투덜거리는'이라고 번역된 분사 '말라님'(mallanim)의 원형인 '룬'(lun)은 '불평하다', '(거스려)반역하다'라는 뜻이 있다.

 

또한 '나에게'라고 번역된 '알라이'(allai)의 정확한 의미는 '나를 대항하여'(against me)가 된다.

따라서 본문은 '나를 대항하여 불평하는'이란 의미이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가시적인 현상만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항하는 직접적인 도전이며 반역인 것이다(민수14,9).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로 번역된 '아드 마타이 라에다'(ad mathai laeda)에서, 하느님의 분노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로 일반 백성의 대표로 이루어진 '회중' 즉 '에다'(eda)이다.

 

새 성경은 이것을 '공동체'로 번역했는데, 여기서 '에다'(eda)의 의미는 민수기 14장 2절과 3절에 나오는대로, 하느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서 일반 백성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하느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도록 선동하고 주도했기 때문이다.

 

민수기 14장 33절에서 35절에 나오는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지도자(우두머리; 수장) 스스로도 하느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지도를 받는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의 진노 아래로 밀어넣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아드 마타이'(ad mathai)는 '언제까지이냐?' 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원망을 내가 들었는데, '어느 때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하느님의 이 질문 속에는 이 세대의 반역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그것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출애굽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세이상으로 사열을 받고 (인구조사에서 등록되고) 투덜댄 자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민수14,29-30), 새 세대만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주님의 말이다'이라고 번역된 '네음 예흐와'(neum yehwa)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말', '말씀'에 해당하는 '네음'(neum)은 '선언', '판결'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서 성경 전체에 약 360회 쓰인 단어이다.

 

이 단어는 대부분 '주님'을 주어로 취하거나 소유격으로 취하는 하느님의 발언(판결)에 쓰여진다(이사3,15; 에제5,11; 아모2,11).

따라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발언하는 자와 언급된 내용의 권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네움'(neum)은 이 선언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구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예레9,22).

그러므로 이 단어가 여기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 크기와 엄중함을 느끼게 한다.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주겠다'  (28)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로 번역된 '임 로 카아셰르 띱바르템 베오즈나이' (im lo kaasher dibartham beoznai)에서, '띱바르템'(dibarthem; you have spoken)은 '너희가 말한' 이라는 뜻이다.

 

여기 맹세의 문맥에서 '임'(im)은 부정의 뜻을 나타내지만 게다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덧붙여져  '임 로'(im lo)가 되면, 반대로 강한 긍정의 뜻을 가지고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 는 단호한 의미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귀에 대고 한 말은 민수기 14장 2절의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온 공동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이라는 내용이었다.

 

하느님의 징계 아래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우리는 하느님 대전에서 하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해주겠다'에 해당하는 '에에세'(eese; I will do)의 원형 '아사'(asa)는  기본적으로 '행하다', '성취하다', '형성하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이 단어가 하느님께 사용되었을 때에는 자주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행하신 일은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되심을 증거해준다(여호23,3).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계를 초월하시는 절대자이실 뿐 아니라 역사 안에 내재하시면서 당신의 목적을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분이시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너희는 시체가 되어'  (29)

 

원문은 '너희의 시체가 이 광야에 쓰러질 것이다'이다.

'너희의 시체'에 해당하는 '피그레켐'(pigrekem)의 원형 '페게르'(peger)는 동물의 시체가 아닌 사람의 시체를 가리킨다. 방금 죽은 시체가 아닌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는 시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씀을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을 때, 그들이 떠올린 것은 광야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자신들의 송장이었을 것이다. 하느님을 떠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그렇게 처참한 것이다.

 

하느님께 대해 반역했던 그들의 삶은 광야에서의 비참한 죽음으로 마감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하느님의 귀에 대고 한 말, 즉 이스라엘이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민수14,2)이라고 말한 것의 응답인 것이다.




 

2021년 8월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공정과 정의를 이루셨다.

1독서(민수13,1-2.2514,1.26-30.34-35)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가나안은 하느님나라를 모형(模型)한다.

 

(탈출3,8) 8 (야훼)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숫자 4는 땅의 숫자로 40은 우리 인생의 전 생애(生涯)를 뜻하는 것으로 그 한 생애동안 하느님나라를 정찰(偵察)하라는 말씀이다곧 영적전쟁투쟁(鬪爭)을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오늘 본문에서 현세(現世)의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다땅에 숨겨진 하느님 나라를 깨달아 보는 것이 신앙(信仰)이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곧 세상의 지혜(智慧)의 관점(觀點)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도깨달을 수 없는 곳이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다그 자신의 고집(固執)을 버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하느님의 뜻말씀으로 오신 그 예수님을 믿고 따라 가면 갈 수 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칼렙은 자신의 생각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었기에 해낼 수 있다고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칼렙과 달리 자신들의 뜻생각을 고집하며 불가능 하다고 판단(判斷)하는 모습이다.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를 대속하시고덮으시는 하느님의 말씀계명(誡命)을 인간의 말계명으로 받아 절망(絶望)하고 실망(失望)하는 것이 악()이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내가 살아 있는 한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 ‘할 수 있습니다.’ 말하면 할 수 있게 해주고, ‘하느님 정말 불가능 합니다.’ 말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말씀이다곧 마음 안에 간직한 하느님의 계약, 약속그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의탁한다면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하게 하신다.

 

(루가1,37)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그 날수대로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곧 인간의 뜻고집을 버리지 못한 이들을 죽이시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正義), 공정(公正)이다하느님 앞에 죄더러움어둠이 공존(共存)할 수 없기에 그것들을 없애시는 것은 당연(當然)한 것이다.

 

(아모5,6-7) 6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그러면 살리라그러지 않으면 그가 불처럼 들이쳐 요셉 집안을 삼켜 버리리니 베텔에는 그 불을 끌 자 없으리라. 7 아 너희공정을 쓴흰쑥으로 만들어 버리고 정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자들아!”

공정과 정의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죽음에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기에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의 속죄(贖罪제물(祭物)로 내주셨다.

그래서 죽어야 할 우리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다 씻겨깨끗하고 거룩한 자로 예수님을 따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그 예수님의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공정과 정의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히브1,8) 8 아드님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당신의 왕좌는 영원무궁하며 당신의 왕홀은 공정의 홀()입니다.

가족에게 짜증을 낸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이 없는 것이다이웃에게 화()를 낸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새 계약)이 없는 것이다가족(家族), 이웃에게 말씀을 주지 못한다면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필립3,12)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 영원한 보호자보증이신 성령님저희 모두를 의탁(依託)합니다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는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다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 원형 '오이코스' (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는 '~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와 '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은 '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의 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나 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다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에 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과 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는 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다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이 '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는 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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