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돋보기]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의 세 번의 미사” 전례력의 새로운 한 해와 함께 ‘전례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전례 예식에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여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일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곧 유다인들의 율법에 가리워진 하느님 뜻이 아닌 참된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천대받는 이, 죄인으로 낙인 찍힌 이들을 용서하시고 불러 일으키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셨으며, 빵을 떼어 나누어 배불리 먹이고, 직접 내어 주신 살과 피로 당신과 일치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은혜로운 일을 이제는 그만 두신 것이 아니라 전례 행위 안에서, 성사 거행을 통해 계속 이어 나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미사 참례나 고해 성사 등 각자의 성사 생활을 통해서 누립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루신 큰 사건들은 1년의 주기를 통해 매년 기념하고 현재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례 주년을 살아가는 삶이지요. 이번 달에는 이러한 전례 주년에서 예수님의 모든 구원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주님 성탄 대축일과 그날의 세 번의 미사에 대해 함께 살펴봅시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지상 활동을 하신 뒤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시간적인 순서로 보자면 주님 성탄 대축일이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섭니다. 하지만 대축일을 기념하게 된 순서를 보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제일 먼저 주일을 기념하였습니다. 주일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주간 첫날’, 곧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안식일을 매주 지내는 관습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매주 기념하는 날, 곧 주일을 지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부활의 연례 기념일인 주님 부활 대축일도 오래지 않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활동은 그냥 잊혀졌을 것이고, 예수라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실이었으며, 나아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자연스레 부활의 날을 기념하였고, 점차 시간을 거슬러 그분 지상생활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축일들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절 다음으로 가장 먼저 기념하게 된 축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성탄입니다. 부활하시지 않으셨으면 모든 일이 허사였겠지만 부활하셨으니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님의 강생 사건이 두 번째로 중요하게 된 것이지요. 부활이 우리 구원의 완성이라 한다면 성탄 사건은 우리 구원의 시작,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내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300년대 초엽입니다. 이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정한 이유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로마의 태양신의 탄생 축제인 이날,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움의 태양(말라 3,20)”이시며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있는 이들을 비추러 높은 데서 솟아오르는 태양”(루카 1,78-79 참조)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내세웠다는 가설이 대표적입니다. 이날 교회는 세 번의 미사를 거행합니다. 밤미사, 새벽미사, 그리고 낮미사인데요, 이렇게 같은 날 다른 세 미사를 거행하는 이유는 로마에서 교황님이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신 전통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래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는 12월 25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식스토 3세(재위 432-440) 교황님이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식적으로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431)의 교의를 기리기 위해, 성모 대성전의 유명한 구유 경당(ad praesepe)에서 밤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구유 경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뉘였던 구유를 찾아 로마로 모신 것으로 유명하죠. 이어서 6세기 중반 무렵에는 교황님이 성탄절 당일 새벽에 참수형을 당한 순교자 아나스타시아에게 바쳐진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탄절의 두 번째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낮미사는 그대로 봉헌되었습니다. 교황님이 밤·새벽·낮미사까지 연속으로 드리시느라 참 바쁘셨을 것 같지만 이렇게 로마에서 자리잡은 성탄절에 세 번의 미사를 거행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밤미사에서는 베들레헴에서 목자들이 천사들로부터 아기 예수님 탄생의 알림을 듣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기념하고, 새벽미사에서는 새벽 여명과 같이 구원을 주시는 분의 드러남을 차분한 분위기 속에 묵상하며, 이 모든 사건이 환히 드러난 낮미사에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의 오심과 그분의 영광이 장엄하게 선포됩니다. 이렇게 주님 성탄 대축일의 세 번의 미사는 각각의 시간에 맞게 구성되었기에 제 때에 맞는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신 성탄절, “새 구원의 날이 되어 옛적부터 마련된 영원한 행복의 날”(주님 성탄 대축일 독서기도의 두 번째 응송)에 미사 전례 안에서 아기 예수님의 축복을 가득 받으며 함께 기뻐하도록 합시다. [월간 빛, 2024년 12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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