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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겨자씨 한 알 믿음 (마태17,14ㄴ-2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7 조회수3,627 추천수0 반대(1) 신고

 

 

2021년 8월 7일 토요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겨자씨 한 알 믿음 (마태17,14-20)

2017년 8월 12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1독서<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6,4-13)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아들어라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10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너희에게 주시려고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이 있고,

11 너희가 채우지 않았는데도 이미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과너희가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파인 저수 동굴들과너희가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밭이 있다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12 너희를 이집트 땅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화답송 시편 18(17),2-3.3ㄴㄷ-4.47과 51(◎ 2)

◎ 저의 힘이신 주님당신을 사랑하나이다.

○ 저의 힘이신 주님당신을 사랑하나이다주님은 저의 반석저의 산성저의 구원자시옵니다

○ 주님은 저의 하느님이 몸 숨는 저의 바위저의 방패제 구원의 뿔저의 성채시옵니다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

○ 주님은 살아 계시다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당신의 메시아에게 자애를 베푸신다

 

복음<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17,14-20)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15 “주님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간질병(癎疾病)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제1독서(신명6,4~13)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4~6) 

"Hear, O Israel !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 !  Therefore,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Take to heart these words which I enjoin on you today."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 신조로서 신명기 6장 4~9절과 11장 13~21절, 민수기 15장 37~41절을 포함하며, 유다인들은 이것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였고, 이것을 양피지에 써서 작은 통(성구갑)속에 넣어 앞 이마나 팔에 매어달아 언제든지 꺼내어 읽을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계명이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본문으로부터 그 유명한 '셰마'(shema; hear)가 시작된다. 본절은 6개의 단어 구성되어 있으며(세마 이스라엘 예흐와 엘로헤누 예흐와 에하드; shema israel yehwa ellohenu yehwa ehad; hear, o Israel the Lord is god, the Lord alone), 그 첫 단어가 '들어라' 뜻이 있는 '셰마'이다. 따라서 본 단락은 이 첫 단어를 따라 '셰마'(shema)로 불리워진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셰마'는 원래 6단어로 구성된 신명기 6장 4절만을 일컬었지만, 후에 5절 포함되었고, 더 나아가 본문부터 시작해서 한 단락을 이루는 4~9절까지를 일컬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6장 4~9절(제1부분)에 이어 신명기 11장 13~21절(제2부분), 수기 15장 37~41절(제3부분)도 '셰마'에 포함하게 되었다.


제1셰마에 해당하는 신명기 6장 4~9절 유일신 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부터 시작하여 항상 계명을 기억함으로써 주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명령과 자녀에게 그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명령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추가된 신명기 11장 13~21절 이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축복과 불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저주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민수기 15장 37~41절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라는 규정이 기록되어 있다.

유다 랍비들은 신명기 6장 7절에 근거하여 이 '셰마' 본문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는 의식을 제정했으며, 이 '셰마' 규정의 준수 여부는 진실된 유다인임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이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이스라엘의 매일의 고백과 모든 이단 종교와 우상 숭배에서 스스로 구별되는 유다 종교 교리의 근간이 된다.

'유일한'으로 번역된 '헤이스'(heis; one)는 단순하게 수사(數詞)로서 '하나'라는 뜻을 갖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유일신(唯一神)사상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사랑과 순종의 대상이 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시는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즈카리아서 14장 9절 '그리고 주님께서 온 세상의 임금이 되실 것이다. 그날에는 주님이 한 분뿐이시고 그 이름도 하나뿐일 것이다.'라는 말씀에 나오는 '그 이름도 하나뿐일 것이다'(우셰모 에하드; ushemo ehad)란 표현에 근거하여 '에하드'(하나 뿐; one)를 주님의 이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라 본문을 번역하면,'주님은 우리 하느님이시며 '하나 뿐'인 주님이시다'가 된다. 즉 '하나 뿐'이라는 고유 명사를 이름으로 가진 주님이시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에하드'(ehad) 주님의 이름으로 보지 않고, 새 성경을 포함해서 대다수 성경과 같이 이것을 주님을 서술하는 '하나'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문대로 직역하면, '주님 우리 하느님 주님 하나'이며,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전반부는 '주님은 우리 하느님이시다' 내용이고, 후반부는 '주님은 한 분이시다'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을 종합하면, 본문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알리는 구절이 된다.


이런 의미를 갖는 본문에 근거해 볼 때, 성경은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다신주의(多神主義; polytheism) 뿐만 아니라 혼합주의(syncretism)을 일체 배제하며, 실제로 모든 종류의 자연신론(自然神論)을 배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철학적인 사상에 의해 추상적으로 만들어내는 신, 예를 들어 '절대 존재', '절대 이데아'와 같은 개념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은 오직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크신 능력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절대적인 살아계신 하느님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새 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후반부에 있지만, 원문에는 본절의 맨 처음에 나온다. '웨아하브타'너희들은 사랑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와우'(wau; therefore; and) 접속사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우리 하느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내용의 앞 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하느님은 세상의 수많은 다른 헛된 우상이 아니고,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한편,'웨아하브타'(weahabtha)에서 '아하브'(ahab; love)동사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신명4,37; 11,1)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호세아서의 경우 남편과 아내의 사랑(호세3,1),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호세11,1)을 나타내는데 있어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바로 '아하브'(ahab)동사가 매우 실제적인 차원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특별히 구별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평이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단지 종교적인 관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친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출애굽 이후 시나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 관계를 맺은(탈출 19,5.6; 24,1.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현존하고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당신을 드러내어 주셨으며,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제를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또는 자신의 연인처럼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신명기 6장 4절에서는 주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반하여 신명기 6장 5절에서는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 대한 계시라면, 본문은 그 계시된 하느님께 대한 각 개인의 인격적 반응에 대한 촉구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 우베콜 메오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 wubekol meodeka)에서 3번이나 나오는 전치사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은 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목숨을 다하고 너희 최선의 힘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바브'는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bekol lebobka)는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 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목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프셰카' soul>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bekol naphsceka)는 '너의 온 영혼을 다해'(with all your soul)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요한4,24).


끝으로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메오데카'의 원형 '메오드'(meod)는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은 각각으로도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을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하느님 대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全心), '전영'(全靈), '전력'(全力)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6)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것이 네 마음 (위)에 있게 하라'(take to heart;  be upon your hearts)이다.

여기서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또한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는 신명기 6장 5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인격(人格)을 가리킨다.


따라서 말씀이 마음에 있게 하라는 말은 단지 말씀의 내용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과 의지와 감정에 언제나 말씀이 반영되어 있는 인격(人格)을 소유하여 실제로 자신의 삶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풍겨내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그리고 '새겨 두어라'로 번역된 '웨하유'(wehayu)에 쓰인 동사는 '~이다'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하야'(haya)동사로서, 이것은 말씀이 마음 위에 있는, 즉 말씀이 인격 위에 반영되는 삶이 일시적인 상태로 끝나는 일회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항상 지속되는 상태에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에'로 번역된 '알 레바베카'(al lebabeka; 너의 마음에)라는 표현은 신명기 5장 22절에 나온 '알 셰네 루호트 아바님'(al shene luhoth abanim) 즉 '두 돌판위에'라는 표현과 대구를 이룬다.

우리는 이 두 구절의 대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두 돌판에 율법을 새겨 주신 행위가 실제로는 그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 위에 있기를 원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예례31,33참조).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7,14ㄴ~20)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20)


마태오 복음 10장 1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오 복음 17장 15-16절에는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는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간질병'이라는 단어로 번역된 '셀레니아제타이'(seleniazetai; he is lunatic)의 원형 '셀레니아조마이'(seleniazomai)는 '달'(마태24,29)이라는 뜻을 가진 '셀레네'(selen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과 악령에 사로잡히는 것을 결부시켜 수시로 상태가 변하는 간질과 같은 병이나 미친 것처럼 발광하는 증상에 이 이름을 붙였다. 간질이라는 것은 발작적으로 경련하며 의식 상실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뇌 질환을 말한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17장 15절에서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고생하고'에 해당하는 '파스케이'(paschei; vexed)의 원형 '파스코' (pascho)는 견딜 수 없는 가혹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커다란 해를 입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르코 복음과 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은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그 아이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경련이 일어나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몹시 고통당한 탓에 이미 몸도 많이 상해 있었다(마르코9,17.18; 루카9,38.39).


이런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주님의 제자들이 고쳐 주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 오늘 복음에 실려 있다.

이 사건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믿음의 여하에 따라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믿음이 약한'에 해당하는 '올리고피스티안'(oligopistian; unbelief; so little faith)의 원형 '올리고피스토스'(oligopistos)는 '작은'(야고3,5)이라는 뜻을 가진 '올리고스'(oligos)와 '믿음'(요한20,27)이라는 뜻을 가진 '피스티스'(pistis)가 결합한 합성어로서, 믿음이 전혀 없는 불신앙을 말하지 않고, '연약한 믿음', '적은 믿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제자들이 가진 믿음은 예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고, 연약한 피상적인 믿음이었음을 나타낸다.

이 구절과 병행하는 마르코 복음 9장 29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만을 요구하셨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기도의 삶과 거기에 동반하는 믿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


본문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표현하기 위한 과장법적 표현이다. 당시 제자들은 과거 선교 여행 중에 행한 구마사건만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했던 것 같다.


믿음이 겨자씨만큼 작을지라도, 그것이 살아있고 온전한 믿음이라면 분명히 놀랄만한 큰 권능을 행할 수 있다. 제자들이 병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믿음에 생명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을 옮긴다'는 표현은 불가능한 것을 행하는 것에 대한 격언적 표현이다. 어떠한 문제라도 생명력있는 믿음만을 소유한다면, 능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조차도 해결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마르9,23).


루카 복음 17장 6절에서는 좀 더 강한 과장법이 사용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돌무화과나무에게 나무가 심길 수 없는 바다에 심겨라고 명령할 때 조차도, 돌무화과나무가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겨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시나피'(sinapi)는 '브라시카 니그라' (Brasssica nigra)로 추정되는 식물이다. 이것은 팔레스티나에 많이 자라는 식물로서, 그 씨는 겨우 눈에 보일 정도로 매우 작으나, 3m이상 높이까지 자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겨자씨'는 하느님 나라의 급속한 확장을 나타내는 비유에 사용되었다(마태13,3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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