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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8 조회수2,805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출생입니다. 부모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태어나는 것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도 자신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선택권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다가 죽을까 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은 있습니다. 그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방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디서 과연 죽을까 하는 것은 단순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장소가 중요합니다. 이 장소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장소입니다. 오늘 방송미사를 하면서 아주 작은 십자가 고상을 폰 옆에 놓고 미사를 했습니다.

 

비록 방송으로 미사를 부득불 방역 4단계 때문에 하긴 했지만 순간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의 십자가엔 예수님이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져봤습니다. 개신교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단순한 십자가입니다. 미사 후에 이 부분을 묵상해봤습니다. 단순히 십자가 고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한 수단만은 아닐 거라고 보여집니다.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라면 너무나도 그 의미에 가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런 묵상을 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라고 하신 말씀은 누구나 다 잘 아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지 않고는 절대 죽을 수 없을 겁니다. 또한 그렇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질 수도 없을 겁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께서 지신 그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십자가 위에서 우리도 늘 죽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미사를 드리면서 강론에서도 언급이 된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는 팬데믹 시대에 살면서 교회의 울타리에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따라야겠지만 이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와 함께 자신 스스로도 신앙과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때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우연인가 필연인가를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연한 만남인가 아니면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인가 말입니다. 답은 필연일 것입니다.

 

우연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필연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와 예수님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걸 구분하는 건 실익이 없습니다. 우연한 만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필연일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을 믿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때 말하는 믿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냥 무턱대고 믿는 맹신에 가까운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만약 어떤 우연한 사건이 계속 그 빈도가 많아진다고 하면 그때 그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지만 그게 빈도가 많아지면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바로 우연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필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믿음은 우연 속에서도 그냥 우연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속에서 필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볼 수 있는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믿는다면 맹신에 가까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맹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건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는 매일매일의 십자가가 바로 그 하나만을 보면 우연한 일회적인 일이 될 수 있지만 그 일은 필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필연에 이르는 과정 중 하나의 일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을 100이라고 한다면 100에 이르렀을 때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100에 점점 가까울수록 필연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기울게 될 것입니다. 각각 100개의 사건은 서로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여기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면 단순히 그 사건은 먼저 일어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만약 95번에 있는 사건이 5번에서 일어난 것과 비교를 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같은 사건인데 단순히 먼저 일어나고 나중 일어난 것밖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근데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릅니다. 5번에서는 그냥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위치가 95번에서는 똑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필연이라고 하는 생각에 근접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도 그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이 신앙 안에서는 하나의 우연과 같은 삶처럼 우리가 해석을 못했을 뿐이지 그게 먼 시점에서 본다면 바로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먼저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을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이 우리의 신앙여정에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과도 같은 일상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냥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다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매일 일상의 삶과도 같은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죽음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만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그냥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를 할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필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믿음생활과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환난, 좌절 이런 모든 게 하느님께로 가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고 이 다리가 하느님과의 만님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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