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 (聖殿 稅) (마태17,22-2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9 조회수3,57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9일 월요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성전 세 (聖殿 稅) (마태17,22-27)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1독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라.>(신명10,12-22)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2 “이제 이스라엘아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

13 그리고 너희가 잘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다.

14 보라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그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것이다.

15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에게만 마음을 주시어 그들을 사랑하셨으며오늘 이처럼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인 너희만을 선택하셨다.

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17 주 너희 하느님은 신들의 신이시고 주님들의 주님이시며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뇌물도 받지 않으시는위대하고 힘세며 경외로우신 하느님이시다.

18 또한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19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20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그분께만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21 그분은 너희가 찬양을 드려야 할 분이시고너희가 두 눈으로 본 대로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하신 너희 하느님이시다.

22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갈 때에는 일흔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이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셨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

◎ 예루살렘아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주님을 찬미하여라시온아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마태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자기 자녀들에게서냐아니면 남들에게 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 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제1독서(신명10,12~22)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   그리고 너희가 잘 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다."(12)

 

신명기 10장 12절에 나오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에 해당하는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는 저 유명한 셰마 본문이 기록된 신명기 6장 5절과 자구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신명기 6장 5절에는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결론으로 유도했고, 신명기 10장 12절은'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라'는 결론을 유도한 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 의미에 있어서는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라는 뜻이므로 그 의미가 동일하기 때문에, 이미 <오늘의 독서말씀>에서 신명기 6장 4절 이하를 해설한 부분을 찾아볼 것 같지도 않아 해당되는 부분만 다시 옮겨 놓는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새 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후반부에 있지만 원문에는 본절의 맨 처음에 나온다. '웨아하브타'(weahabtha; therefore(and) you shall love; 너희들은 사랑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와우'(wau; therefore; and) 접속사 시작한다는 사실은  우리 하느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내용의 앞 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하느님은 세상의 수많은 다른 헛된 우상이 아니고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한편 '웨아하브타'에서 '아하브'(ahab; love)동사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신명4,37; 11,1)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호세아서의 경우 남편과 아내의 사랑(호세3,1),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호세11,1)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바로 '아하브'동사가 매우 실제적인 차원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특별히 구별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평이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단지 종교적인 관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친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출애굽 이후 시나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 관계를 맺은(탈출19,5.6; 24,1.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현존하고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당신을 드러내어 주셨으며,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제를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또는 자신의 연인처럼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신명기 6장 4절에서는 주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반하여 6장 5절에서는 '너희 하느님'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4절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 대한 계시라면, 본문은 그 계시된 하느님께 대한 각 개인의 인격적 반응에 대한 촉구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명6,5)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 우베콜 메오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 wubekol meodeka)에서 3번이나 나오는 전치사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 가지고' 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 이란 뜻의 '콜'(kol)은 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을 가지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목숨을 다하고 너희 최선의 힘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는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 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목숨'으로 번역된 '나프셰카'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 '너의 온 영혼을 다해'(with all your soul)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요한4,24).

 

 

끝으로 '힘'으로 번역된 '메오데카'(meodeka)의 원형 '메오드'(meod)는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with all your strength(might)>,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은 각각으로도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을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하느님 대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全心), 전영(全靈),전 력(全力)'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6,6)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것이 네 마음 (위)에 있게 하라'(take to heart;  be upon your hearts)이다. 여기서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또한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는 신명기 6장 5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인격' 가리킨다.

 

따라서 말씀이 마음에 있게 하라는 말은 단지 말씀의 내용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과 의지와 감정에 언제나 말씀이 반영되어 있는 인격을 소유하여 실제로 자신의 삶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풍겨내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그리고 '새겨 두어라' 번역된 '웨하유'(wehayu)에 쓰인 동사는 '~이다'란 상태를 나타내는 '하야'(haya)동사로서 이것은 말씀이 마음 위에 있는 즉 말씀이 인격 위에 반영되는 삶이 일시적인 상태로 끝나는 일회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항상 지속되는 상태에 있어야 함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에'로 번역된 '알 레바베카'(al lebabeka; 너의 마음에)라는 표현은  신명기 5장 22절 나온 '알 셰네 루호트 아바님'(al shene luhoth abanim) 즉 '두 돌판위에'라는 표현과 대구를 이룬다.

 

우리는 이 두 구절의 대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두 돌판에 율법을 새겨 주신 행위가실제로는 그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 위에 있기를 원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수 있다(예례31,33참조).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에 해당하는 '우말르템 에트 오를라트 레바브켐' (umallthem eth orrlath lebabkem)에서 '말르템'(mallthem)의 원형인 '물'(mul)은 '할례하다'란 뜻이며, '오를라트'(orrlath)는 '오를라'(orrla)의 연계형 명사로서 '할례안된 것'(the foreskin of)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리고 너희는 마음의 할례안된 것을 할례하라'이다.

 

즉 본문은 마음이 할례를 받지 않은 과거 상태를 '오를라트'라는 단어로 지적한 후 여기서 반드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몸에 행하는 할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과 그들과 계약을 세우신 것에 대한 표징으로 주신 것이다(창세17, 9~12).

 

따라서 본문에서 다시 요구하는 마음의 할례는 그러한 하느님의 선택하심과 계약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몸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특히 계약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표징을 가져야 함을 상징하는 것이다(예레4,4).

 

하느님의 자녀된 이스라엘의 신분은 겉모습이라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섬기며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그분만을 신뢰하고 그 뜻을 순종하는 마음의 중심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필리3,2.3 참조).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로 타크슈 오드'(lo thaqshu od)에서 '타크슈'(thaqshu)의 원형인 '카샤'(qasha)는 '딱딱하게 만들다', '어렵게 만들다'는 뜻이다. 이것은 거만함을 상징한다.

 

즉 '(목을) 딱딱하게 만들다'는 것은 스스로 목을 숙여 겸손과 순종을 나타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강하게 내세우며 버티는 교만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하지 말라'로 번역된 '로~~오드'(lo~~od)에서 부정어 '로'(lo)는 지속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겸손하라는 명령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생동안 주어지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명령인 것이다.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17,22-27)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26ㄷ~27)

 

'그렇다면'에 해당하는 '아라 게'(ara ge)는 '그러므로', '따라서'라는 뜻을 가진 '아라'(ara; then)의 강조형이다. 왜냐하면 '게'(ge)는 어떤 낱말에 뒤따라와 그 낱말을 강조하는 접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뒤에 오는 '엘류테로이'(eleutheroi)의 원형 '엘류테로스'(eleutheros)는 '자유가 있다'(1코린7,39)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렇다면! 아들들은 자유이다'(Therefore the sons are free; Then the sons are exempt)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당연히 성전 세가 면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전이 아버지의 집이고(요한2,16),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아들들' 혹은 '자녀들'에 해당하는 '호이 휘오이'(hoi hyoi; the children)가 복수형으로 나오는 것은 앞의 25절에서 복수형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전 세가 면제되는 대상은 성전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뿐이시다.

 

따라서 '자녀들'이란 표현은 일차적으로 면세의 대상자가 다수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임금의 자녀들의 실례가 예수님께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부분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자유와도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므로, 그들도 스승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서 그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우리가 ~비위를 건드릴 것'에 해당하는 '스칸달리소멘'(skandalisomen; we should offend)의 원형 '스칸달리조'(skandalizo)는 원래 길 가운데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또는 방해물을 놓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죄짓게 하다'(루카17,2; 마르9,43)로도 번역되고 있다. 이것은 상대로 하여금 죄짓도록 유혹하는 악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단어의 용례를 적용하면,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아드님되시는 예수님의 신분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예수님의 행동을 사람들이 이용하여 그들 또한 성전 세를 내지 않는 행동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버리다', '떨어져 나가다'(마태26,31), '배척하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마르6,31)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믿고 순종해야 할 대상을 불신하기 시작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내용을 고려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에 대한 태도를 사람들이 오해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하게 되는 것을 미리 막고자 하시는 의도도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칸달리조'(skandalizo)는 '귀에 거슬리다', '투덜거리다'(요한6,61)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계셨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성전에 대한 모독으로 불쾌하게 여기고 분개할 수 있는 사건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앞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중요한 사명이 남아 있었기에, 더 큰 목표를 위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하셨던 것이다.

 

'낚시를 던져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주어라.'

 이 구절은 성전 세를 지불하기 위한 예수님의 기적으로 오직 마태오만이 기록하고 있다.

 

'낚시를'에 해당하는 '앙귀스트론'(angistron; an hook)은 '구부러진 것'을 뜻하는 '앙코스'(angkos)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서 한 번 사용되었다.

 

'스타테르 한 닢'에 해당하는 '스타테라'(statera; a piece of money; a four-drachma coin)은 '돈 한 세겔'로서 신약 시대에 통용되었던 '은전'(銀錢)의 명칭이다.

1스타테르는 4드라크마이며, 성전 세겔로는 한 세겔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당연히 율법의 요구에서 면제되신다.

그렇지만, 당신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시어 겸손하게 율법에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성전 세를 마련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의 참 아드님되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