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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8.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0 조회수3,731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2021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요한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형제님도 그렇지 않을까 싶더군요.

이분은 전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옷도

낡은 체육복 차림이었고 머리는 산발이었습니다.

딱 봐도 예술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분은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지금까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진 책을 쓰지 못했지만,

매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분과 대화를 하면서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비록 돈은 없지만 즐겁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인 싸움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또 대단한 명예나 부를 쫓지도 않습니다.

단지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매일 기쁘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걱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글만 써서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말한답니다.

혀를 차며 사람 구실을 못 하는 것처럼 말한답니다.

남에게 해도 끼치지 않는데그러면서도

자기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남들은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세상의 기준이 곧 행복의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의 기준이 행복의 기준이 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가 당신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성인성녀들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밀알과 같은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기희생을 통해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이를 위해 세상의 기준처럼

자기 사랑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이 부분은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배경을 이루는 셈족의 언어 관습에 따르면,

미워하다가 사랑하다와 관련해서 쓰일 때에는

흔히 덜 사랑하다’, ‘지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다

뜻하는 것입니다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보다 주님의 기준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주님의 기준이

곧 행복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최고의 행복이란 나의 결함을

살펴 바르게 잡는 일이다(괴테)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주님.

현재는 신학교 입학 후 군대 기간까지

포함해서 거의 10년이 되어야

사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아주 빨리

사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세례를 받고 주교품까지 받는데

최단 시간을 기록한 인물이 있더군요.

그 시간이 딱 일주일이었습니다.

바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멘토였던

성 암브로시오 성인이십니다.

밀라노 지역의 집정관으로 왔다가

아리우스 이단과 가톨릭교회의 대립을

해결했고 이를 통해 비산자였던 그가

주교품까지 일사천리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왜냐하면 기원후

374년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회의 틀이 완성되기 전이어서,

당시의 필요 때문에 암브로시오 성인께서

나타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활동은 늘 그때 가장 적합하게

이루어졌습니다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이 역시 주님의 커다란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도 주님께서는 활동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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