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福者 조숙 베드로님의 순교 (순교일; 8월10일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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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태욱 | 작성일2021-08-10 | 조회수3,07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던 조숙(趙淑) 베드로(Petrus)는 1786년 경기도 양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숙’은 그의 관명(冠名)이다. 이후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양친과 함께 강원도의 외가로 피신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성품 또한 착하고 친절하였으며, 나이에 비해 아주 점잖았다. 그러나 주변의 환경 때문에 신앙생활을 점차 등한시하게 되었다. 그가 다시 신앙에 눈을 뜨게 된 것은, 17세 때 권천례 데레사를 아내로 맞이하면서이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는 마음이 변하여 아내의 뜻을 들어주었고, 잠깐 사이에 신앙심이 되살아나서 딴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신심은 날로 깊어져 기도와 복음 전파, 고신 극기 행위가 일상이 되었으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남을 위한 애긍에 열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15년을 생활하는 동안, 조 베드로는 처음의 약속을 어기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아내의 권유로 다시 마음을 돌리곤 하였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성직자를 영입하려고 북경을 오갈 때마다 필요한 뒷바라지는 모두 그들 부부의 몫이었다. 정 바오로 성인은 교회 일을 위해 떠나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양에 있는 조 베드로 부부의 집에 머무르면서 모든 준비를 하였다. 당시 고 바르바라(또는 막달레나)라는 과부가 그 집에 살면서 그들 부부를 도와주었다. 우연히 조 베드로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내 포졸들은 그의 집으로 몰려들어 그를 체포하였다. 이때 아내 권 데레사는 자원하여 남편을 따라나섰고, 고 바르바라도 그들 부부와 함께 투옥되었다. 그때가 1817년 3월 말경이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누구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혹독한 형벌을 꿋꿋하게 참아 내었다. 관장은 몇 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가하였지만, 그들 부부의 신앙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였다. 특히, 아내 권 데레사는 남편 조 베드로의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순교를 권면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의 신앙은 여전히 굳건하였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격을 얻게 되었으니, 그들 셋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은 1819년 8월 10일(음력 6월 20일) 이후로, 당시 조 베드로의 나이는 33세였다. 교우들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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