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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볼리비아 선교사 신부님 일화를 보며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게 뭔지를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0 조회수3,992 추천수2 반대(0) 신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수요일 강론 묵상글을 방금 읽었습니다. 볼리비아에 파견되신 선교사 신부님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순간 가슴 뭉클했습니다. 비포장도로의 길을 갈 때 덜컹거리는 길도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같다는 표현에서 감동을 줍니다. 말 그대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비참한 모습이 되느냐 행복한 모습이 되느냐가 결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 묵상글을 보기 전에 대전교구 김재덕 신부님의 짧은 강론 하나를 유튜브로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로마에서 성경을 근 8년 가까이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말씀을 가슴에 품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 신부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방송에서 말씀하셨지만 오늘도 그 일화를 다시 언급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죄를 짓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 그때마다 말씀이 생각나 신부님을 붙들어주셨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몇 달 전에 방송을 통해서 이 말씀을 들었을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저도 어떨 땐 그런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기억해서 그런 게 아니고 사실 하수입니다. 나중에 하느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그 죄를 이겨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신 신부님의 청룡열차 일화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죄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왜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가시면서도 청룡열차를 타시는 기분을 만끽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신부님의 마음속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열악한 환경에 이미 선교사로 자원하셔서 가신 것이라면 이미 열악한 환경에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계셨기에 아마도 그런 곳에 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선교사가 되시고 싶다고 했으니 아마 자원하셨을 가능성이 많을 겁니다. 자원이든 그렇지 않든 그런 마음이시라면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시는 사랑을 가득 품고 계셨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의 강론을 오늘은 두 개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 신자들이 하느님을 떠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언급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셔서 말씀하신 게 신앙이 하나의 짐처럼 느껴져서 그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신부님의 강론에서 보면은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냥 시계 추처럼 왔다갔다만 하는 신앙이 된다면 무미건조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체험이 모세가 떨기나무 속에 계신 하느님과 같은 그런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강론을 듣고서 하나 생각한 게 있습니다.

 

만약에 신앙 안에서 형제애를 실천해서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저는 그것도 하느님 체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엉뚱한 생각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를 예수님과 동일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장 작은이가 불쌍한 사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황은 항상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을 우리는 형제에게 실천했지만 결국 그 사랑은 하느님께 돌려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게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또 모르죠. 얼마나 큰 상급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지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작은 형제애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을 겁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냥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닐 겁니다. 잘 되지 않아도 수만 번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적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콩시루에 콩나물이 어느듯 잘 성큼 자라듯이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하느님의 사랑이 움터 자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그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는 영양제가 말씀을 사모하는 길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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