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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1 조회수3,31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11일 수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8-14)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9주간 수요일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

 

 

1독서<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신명34,1-12)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예리코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에 올라가자주님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단까지 이르는 길앗온 납탈리에프라임과 므나쎄의 땅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유다의 온 땅,

네겝그리고 초아르까지 이르는 평야 지역곧 야자나무 성읍 예리코 골짜기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

그분께서 그를 모압 땅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히게 하셨는데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평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를 생각하며 애곡하였다그런 뒤에 모세를 애도하는 애곡 기간이 끝났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찼다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실천하였다.

10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11 주님께서 그를 보내시어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온 나라에 일으키게 하신 그 모든 표징과 기적을 보아서도 그러하고,

1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그 모든 위업과 그 모든 놀라운 대업을 보아서도 그러하다.

 

화답송 시편 66(65),1-3ㄱㄴ.5와 8.16-17(◎ 9과 20ㄷ 참조)

◎ 제 영혼에 생명을 주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온 세상아하느님께 환호하여라그 이름그 영광을 노래하여라영광과 찬양을 드려라하느님께 아뢰어라. “당신이 하신 일들 놀랍기도 하옵니다!” 

○ 너희는 와서 보아라하느님의 업적을사람들에게 이루신 놀라운 그 위업을백성들아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찬양 노래 울려 퍼지게 하여라

○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아모두 와서 들어라그분이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주리라내 입으로 그분께 부르짖었으나내 혀 밑에는 찬미 노래 있었네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마태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제1독서(신명34,1~12)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7) 

 

'기력도'로 번역된 '레호'(leho)의 기본형 '레아흐'(leah)는 '신선함'이라는 뜻으로서 여기만 나오는 단어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다른 형용사로 '라흐'(lah)가 나오는데, 이것은 과일의 신선함이나 즙이 많은 상태(민수6,3)를 묘사하며, 자라나는 나무 혹은 금방 베어 아직 싱싱함을 유지하는 나무에 대해서는 '푸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창세30,17; 에제17,24).

그리고 '없지', '쇠하지'로 번역된 '나쓰'(nas)는 '없어지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의 기력도 없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육체가 나이에 비해 여전히 건강을 유지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전쟁의 출전을 가리키는 '더 이상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신명31,2)라는 모세의 말과 신명기 34장 7절의 표현은 상충되지 않는다.

 

신명기 34장 7절의 의미는 그가 죽기 전까지 젊은이 같은 건강을 유지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까지 모든 신체의 기능이 성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죽음을 담대하게 맞이했다는 뜻이다.

 

한편 모세가 죽은 나이인 120세는 하느님께서 노아의 홍수 후에 인간의 수명으로 말씀하신 120년의 기간을 다 산 나이였다(창세6,3).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찼다.'(9)

 

성경 원문은 한글 성경의 번역 순서와 다르게 본절이 '여호수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도자의 권위가 이제 여호수아에게 옮겨졌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강조하는 문장 구조이다.

 

그리고 여기서 '지혜의 영'으로 번역된 '루아흐 호크마'(ruah hokma; the spirit of wisdom)는 하느님께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은사를 일컫는 말이다(탈출28,3).

 

즉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안수'에 해당하는 '싸마크'(samak; '안수하였다'; had laid his hands on)라는 공식적인 의식을 통해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외적으로 선포했을 뿐 아니라 내적으로 여호수아에게 민족을 이끌어 갈 지도력과 지혜의 은사를 부어 주신 것이다.

 

더군다나 '가득찼다'로 번역된 '말레'(malle; was filled with; was full of)는 '충만했다'는 뜻인데, 이 '말레'(malle)는 완료형이므로 이미 지도자의 권위가 그에게 옮겨졌음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

 

이렇게 하여 모세를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했던 출애굽 시대는 일단락되고, 후계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가나안 정복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10)

 

신명기 18장 15절에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모세의 말이 나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장차 모세와 견줄 수 없는 완전한 예언자이신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그런 반면에 신명기 34장 10절의 말씀은 예언자 자체가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언자들이 나오지만 모세에 견줄만한 탁월한 예언자는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예언자로서 모세의 탁월함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마태18,15-20)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도덕과 윤리로 잘못 산 그 죄를 타이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하마트리아, 과녁을 벗어나다). 곧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길을 벗어나 인간들의 뜻을 구원의 길로 걷는 그 잘못을 타이르라는 말씀이신 것.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인간들의 계명, 규정과 교리 그 인간의 의로움의 길을 구원의 길로 잘못 알고 걷고 있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라고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타일러라(아쿠오- 들려주다)

그러면 그를 살리는 곧 예수님의 지체로 한 형제를 얻는 것이다.

 

(에페3,6)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 둘은 선악의 두 법을(셋은 하늘의 숫자) 그리고 그 선악의 법을 구원으로 완성하시는 십자가 곧 선의 대속으로 악이 용서 받아 구원 받는 그 진리(성령)의 확정을 받는 것.

다시~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을 뜻하며 성령께서 확정하신다. 그것이 또한 교회의 가르침인 것.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 세리 처럼~ 죄인으로 간주하여 죄인을 살피시는 하느님께 맏기는 것.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이 땅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이타의 사랑, 곧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로마1,20참조) 그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깨달아 믿으면 하늘이 열릴 것이고 그것이 아닌 땅의 순리, 법을 중시하여 살기만 한다면 땅에서 잘 살다~ 영원히 땅에 갇히게 되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두 사람, 그 두 마음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 곧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한 마음으로 구하면 하느님의 뜻인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 둘이나 셋,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의 진리나 모두 예수님의 이름(말씀)으로 그분의 뜻으로 알아들으면, 깨달으면 하느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늘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21절이하 용서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참조~(요한5,39-40)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희생, 열심히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희생으로 얻는 것을 성경 전체를 통해 배우는 것, 깨닫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을 위해 간구하여 주소서. 아멘.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8,15~2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8)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으로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19)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

 

마태오 복음 18장 15~17절에서 형제의 죄에 대한 3단계 처리책에 대해 논했는데, 그 마지막 단계가 교회의 권면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공식적인 권면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교회에서 추방하는 징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이 일은 교회 차원에서만 행해지고, 실로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18장 18~20절에서 교회의 징계 권한에 대한 합법성을 부여하심과 동시에 기도가 선행되어야 하고 사려깊게 시행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마태오 복음 18장 18절은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쓰였다는 점만 빼고는,마태오 복음 16장 19절과 동일하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에 주어진 권위를 나타낸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의 '매고 푸는 것'은 교회 구성원의 죄에 대한 징계 권한의 시행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다.

 

한편, 마태오 복음 18장 19절에 대해서 한글 새 성경은 번역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만일'로 번역될 수 있는 '에안'(ean; if)이 문장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서, 합심하여 청하는 상황이 충족되기만 하면, 청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무엇이든'에 해당하는 '페리 판토스 프라그마토스'(peri pantos pragmatos; about anything)에서 '프라그마토스'(pragmatos)의 원형 '프라그마'(pragma)는 '일', '사건', '과업'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소송', '논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음을 모아'에 해당하는 '쉼포네소신'(symphonesosin; agree)의 원형 '쉼포네오'(symphoneo)는 영어에서 '교향곡'이라는 뜻을 지니는 '심포니'(symphony)의 어원을 이루는 말로서, 서로 뜻을 같이 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19절의 '프라그마토스'(pragmatos)는 본 단락이 교회의 징계 권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징계 권한'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쉼포네오'(symphoneo)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징계 권한이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두 사람 이상의 합치된 의견과 한 마음으로 청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전제될 때, 비로소 교회의 징계 권한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권위있게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

 

본절은 교회의 구심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야 함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여기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해당하는 '뒤오 에 트레이스'(dyo e treis; two or three)는 소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모이다'는 의미로 번역된 '쉬네그메노이'(synegmenoi; come together; gather together)의 원형 '쉬나고'(synago)는 '~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쉰'(syn)과 '오다', '가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아고'(ago)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함께 모이다'는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하느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소인 '회당'을 가리키는 '쉬나고게'(synagoge)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니까 '쉬나고'(synago)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모이는 지향점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내 이름으로'로 번역된 '에이스 토 에몬 오노마'(eis to emon onoma; in my name)에서 '~안으로'(into)라는 뜻의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eis)가 쓰였는데, 이 '에이스'(eis)가 때로는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en; in)의 대용어로도 쓰이는데, 여기서는 방향과 위치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18장 20절은 교회의 지향점과 구심점이 예수님의 이름임을 잘 보여준다.

 

한편,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에서 '나도 ~있다'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 I am)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의 현재형이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예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일반적인 진리나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겠다는 뜻이다.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마태28,20).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에 따라 오늘날에도 믿는 이들 가운데 영으로 현존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인격적으로 친교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구절이 교회가 시행하는 '징계 권한'의 문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믿는 이들의 일치된 뜻에 의한 교회의 '징계 권한'이 하느님의 인준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클라라 자매님!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하느님께서 이뻐 하시는 자녀 되세요.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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