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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3(녹)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2 조회수3,588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나는 너희 조상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왔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갔다.>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1-13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의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며 나흐르의 아버지인 테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들은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런데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다가, 온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사악을 주고,

4 이사악에게는 야곱과 에사우를 주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는 세이르산을 주어 차지하게 하였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5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집트 가운데에서 그 모든 일을 하여 그곳을 친 다음,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6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렇게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 뒤에 너희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갈대 바다까지 너희 조상들의 뒤를 쫓아왔다.

7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님에게 부르짖자, 주님이 너희와 이집트인 사이에 암흑을 갖다 놓고 바닷물을 끌여들여 그들을 덮쳐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너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뒤에,

8 나는 너희를 요르단 건너편에 사는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데려갔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패망시킨 것이다.

 

9 그 뒤에 모압 임금,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 나서서 이스라엘에게 맞서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왔다.

10 그러나 나는 발라암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11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에는,예리코의 지주들, 곧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다.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12 나는 또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족의 두 임금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너희의 칼도 너희의 화살도 아니다.

13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않은 성읍들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또 직접 가꾸지도 않은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모이게 하고 온 백성에게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일을 말한다.

 

 

 

복음<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하고 명령하였습니까?”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3

3.9절은 마르 10.2-11를 따른 것인데. 마태오는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이혼과 재혼을 해도 좋다는 예외규정을 삽입하기도 했다. 마르코의 이혼 논쟁은 이혼을 금지하신 예수님의 어록 말씀을 마르코 교회에서 이혼 논쟁 양식으로 엮은 것이다.

고자론은 마태오복음만의 고유자료다. 마태오는 자기 교회 전승에서 예수님의 고자론을 물려받아 이혼 논쟁 끝에다 이어달았다.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으면남편은 아내를 소박할 수 있었다. 무엇이 수치스런 일이냐에 관해 율사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표명했다.

 

4

마르코와 마태오 교회들에선 창조주에 원초적 뜻에 따라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두 교회에서는 그 구약성서적 근거로 다음 두 구절을 내세웠다.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그러므로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되리라

 

6

혼인은 남녀의 성적 결합. 두 사람의 인간적 결합일 뿐 아니라 도무지 갈라설 수 없는 한덩어리 몸이 된다는 것이다. 윤리신학자 혜링은 이를 가리켜 혼인인격이라 했다.

 

7

이혼장을 주고 (아내를) 버리도록은 신명 24.1인용문. 2차 유다독립전쟁(132~135) 조금 전에 작성된 아람어 이혼장을 참고하라.(이스라엘 성지 80).

 

9

마태오는 마르 10.11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이는 그를 상대로 간음하는 것입니다9절에 옮겨쓰면서 음행도 하지 않았는데라는 예외규정을 첨가했다. 그리하여 9절은 마르 10.11과는 다른 뜻으로 변경되었다. 곧 이혼과 재혼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아내가 간음한 경우에만은 예외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고 재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태오는 어록에 있는 예수님의 소박금지 말씀을 옮겨쓰면서도 예외규정을 첨가한 바 있다. 예외규정은 마태오가 소속해 있던 시리아 교회의 소박법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

(10~12)

예수님과 그 제자 중 일부는 독신으로 살았다. 적수들은 예수 일행을 비꼬아 고자들이라고 헐뜯었을 법하다. 험구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12절의 고자론이다. 그 뜻인즉, 처음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궁중에서 환관으로 쓰려고 사람들이 일부러 고자로 만든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숙명적으로 고자 신세가 된 가련한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하늘나라 때문에 자신을 고자로 만든 고자들도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고신다.

 

이들은 숙명이 아니고 자유로운 결단으로 독신을 택한 놀라운 사람들이다. 독신을 택하는 실존적 결단의 동기는 하늘나라 때문이다일편단심 오직 하느님 이미 은밀히 작용하고 장차 환히 오실 하느님께 매료된 까닭이다. 그 하느님을 아끼시는 사람들. 각별히 아끼시는 밑바닥 사람들에게 온전히 봉사하려는 까닭이다.

 

결혼하는 일이 없는 부활의 신국을 암시하는 상징적 삶을 살려는 까닭이다. 이 도리를 깨친 이만이 푸른 하늘에 흰구름 가듯 청정 비구로 살아갈 수 있으리! 마지못해 독신으로 사는 자는 몽달귀신. 순말명이 되기 십상이다.

 

예수님 전에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독신으로 지냈다. 그 동기인즉 유다민족에게 닥칠 심판을 상징적으로 예고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 전후해서 사해 북변 쿰란에서 에쎄느 수도자들 가운데 많은 이도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 동기를 살펴보면 불결을 초래하는 남자의 정액과 여자의 월경을 되도록 피하려는 것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독신으로서 전도했다. 또한 그는 고린토 교회의 미혼 남녀들에게 독신을 권장했다. 그 주된 동기는 종말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세상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신심 깊은 경상도 할머니 한분은 인생 무상을 느낄 때면 잠시의 것은 얼마나 짧고 영원의 것은 얼마나 긴가라는 말씀을 담곤 하시는데, 바오로가 내세운 종말론적 동기와 똑같지는 않지만 일맥 상통하는 바도 있다.

 

2~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지중해변 가이사리아에서 활약한 교부 오리게네스는 12절의 고자론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스스로 거세하여 많은 수모를 겪었다. 그의 자의적 해석은 문제가 있지만 학덕을 다 갖춘 교부 오리게네스의 진지한 거세는 높이사 마땅하겠다.

 

바로로도 마태오도 독신을 성령의 은사로 보았다. 또한 바오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직분도 성령의 은사로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독신도 성직도 점점 제도화하였다. 오늘날 천주교회의 교계 실태를 보면, 오직 독신자 가운데서만 사제와 주교를 선발하고 있으니, 독신과 직분 두 가지 제도를 합류했다고도 할 수 있으며, 또는 독신 은사와 성직 직분을 합쳤다고도 할 수 있으며, 본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독신과 성직의 합일에 관해 논쟁이 심심찮게 일고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여자도 고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강제로 불알을 까서 고자가 된 사례가 많이있습니다. 얼마전(조선시대)에도 왕궁에서 

왕을 모시는 내시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고자 입니다.  상당히 높은 지위에 해당합니다. 대략 시장정도일까요? 궁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는 물리적으로 고자가 되는 것이지만 여자는 성기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임금이 

가까이 하여 후궁이 되지 않는 한 궁녀도 남자의 고자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생식본능을 자르는거니까요.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요? 하늘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살았나요? 현시대인 요즘은 또다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다고들 합니다. 아이를 낞지 않는 부부가 성적인 것만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도 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위해서 산다면 말입니다. 

스님이나 우리들의 수녀님이나 거룩한 사제직분을 행하는 분들께서 살아가 듯이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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