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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 축일에 성모님을 기리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4 조회수3,54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은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하셔야 할 이 지상에서의 과업을 다 이루시고 하늘로 승천하심을 기리며 축일을 지내는 날입니다. 세상에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대중가요도 있습니다. 성모님의 일생은 예수님만큼이나 참으로 가슴 아픈 한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이전에 한 여인으로서 한번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여리고 여린 열 몇 살 남짓 된 나이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후에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하느님의 비천한 여종으로 생각하시고 예수님을 당신 태중에 모셨습니다. 보통의 믿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이 작용했을 겁니다. 두려운 나머지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신 것도 겸손하셨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이 세상 누구든지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 생명은 귀중하고 다 축복을 받아야 할 아름다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어머니의 태중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미 모태에서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은혜로 자랍니다. 그 매개체가 바로 탯줄입니다. 탯줄을 통해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제공되는 영양분으로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태중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태중에서는 어머니와 탯줄로 이어져 있어서 마치 하나의 몸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어머니는 극심한 해산의 수고를 하십니다. 이때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고통을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겪게 하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 이어령 교수님의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한 내용을 봤습니다. 동물도 새끼를 출산할 때 고통 없이 인위적으로 무통 분만을 했을 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새끼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물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래서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바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에게 고통을 안겨드리는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은혜도 은혜지만 어머니의 은혜는 하해 같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몸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영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도 우리를 이렇게 세상에 내놓으셨을 겁니다. 육신의 어머니 못지않게 우리는 성모님의 은혜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육신의 어머니, 아버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아니지만 원죄를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죽음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혼의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 죽음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실 하느님의 아들을 당신의 태중에서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성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을 겁니다. 영원한 죽음만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인생을 살리기 위해서 성모님의 몸을 하느님께서는 빌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실 메시야를 모신 몸이십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 고통스러운 산고만 산고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산고가 또 성모님의 길 앞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영세를 받고 이것에 대해 한번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당신의 사명을 다 완수하신 날에 찾아온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아들을 바라보시는 단장의 고통입니다. 이 고통도 모자라서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이 박히셔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통도 육신의 산고만큼이나 산고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고통을 또 하나의 새로운 산고라고 묵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흘 후에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부활하신 몸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도 영적으로 새로운 산고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성모님께서 이 세상에서 겪으신 고통인 것입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성모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받으실 하등의 이유도 없지만 그 원인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희를 죽음의 사슬에서 끊어버리기 위해 당신께서 감당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 축일에 우리는 성모님의 무엇을 기려야 할까요? 무엇을 기리면 성모님께서 기뻐하실까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오늘만큼은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게 성모님께서 아마 가장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고통도 같이 생각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고통을 당신 친히 몸소 안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고통을 저희가 생각하고 묵상하는 걸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게 어머니의 마음일 것입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고통보다도 자식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러할진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그보다 더 하실 겁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한 번 더 지을 죄도 다시 한 번 더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게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될 것이고 성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말은 언제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려고 애는 써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모님은 우리의 영혼을 낳아주신 어머니이십니다. 육신의 어머니만큼이나 우리는 성모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성모님을 사랑하는 길인지는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당신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을 거울삼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길이 가장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늘 성모님을 사랑해야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성모님의 축일을 지낼 때 단순히 축일로써만 그칠 게 아니라 성모님께서 이 세상에서 저희를 위해서 감내하신 그 고통의 은혜를 묵상하며 그 은혜를 가슴에 온전히 품어보면 어떨까요? 아마 성모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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