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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첫째와 꼴찌 (마태19,23-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7 조회수3,102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1년 8월 17일 화요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첫째와 꼴찌 (마태19,23-30)

   

 

1독서<기드온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판관6,11-24)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외람된 말씀입니다만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외람된 말씀입니다만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보십시오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19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20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22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주 하느님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두려워하지 마라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야훼 살롬)

 

화답송 시편 85(84),9.11-12.13-14(◎ 9ㄴㄷ 참조)

◎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말씀하신다.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당신 백성당신께 충실한 이에게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그들은 다시는 어리석게 살지 않으리라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복음 <부자와 낙타.> (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제1독서(판관 6,11~24ㄱ)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없는 빵에 대었다.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 라고 하였다. (21-24)


판관기 6장 20절에서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의 지시를 들은 후, 그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되었을텐데도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고 그대로 신속하게 순종했다.

여기서 보면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를 대접하기 위해 예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기적(표징)을 보기 위한 예물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먹을 음식을 그렇게 많이 가져올 리가 없고(판관6,19), 사람이 먹을 음식을 그릇이나 쟁반에 놓지 않고 천사가 시키는 데로 바위 위에 그대로 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 삼켜 버렸다' (21)

 

'나와'로 번역된 '왓타알'(wathaal; and there rose up; flared)의 원형 '알라'(alla)는 연기, 식물, 사람 등이 땅이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삼켜 버리다'로 번역된 '왓토칼'(wathokal; and consumed)의 원형 '아칼'(akal)은 밥이나 음식을 먹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러자 그 바위(반석)로부터 그 불이 올라와서 먹어버렸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 본문은 인간의 힘으로나 자연 현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음을 보여 준다.

바위 즉 돌덩어리에서 불이 나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기이한 현상이며, 주 하느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둘째, '불이 삼켜 버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르다'는 뜻을 가진 '사라프'(sarap)로 쓰이지 않고, '음식을 먹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칼'(akal)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위에서 올라온 그 불이 그 위에 있는 예물을 사람이 음식을 모조리 먹어버리듯이 흔적도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렸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째,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이러한 기적을 베푸심으로써 주님의 천사는 기드온이 요청한 표징(판관6,17)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와같은 놀라운 기적(표징)을 통해 기드온에게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6,12)는 확신을 갖게 하셨던 것이다.

 

한편 판관기 6장 22절에서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에서 '알고'에 해당하는 '와야레'(wayare; and when perceived; realized)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레'(yare)의 원형인 '라아'(raah)의 기본적인 의미는 '보다'(see)이다.

 

하지만 이 동사는 눈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알게 되다'(신명33,9)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동사가 '알다'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단순한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까지 함축한다(이사6,10).

 

그러므로 기드온이 여기서 그에게 나타난 분이 주님의 천사인 줄 알았다는 것은 이제 그의 마음속에  분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모두 확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로 번역된 '아하흐'(ahah) 큰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조상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고 교육을 받은 기드온은 하느님을 뵌 자는 죽게될 것이라는 사실 (탈출33,20)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주님의 천사'로 뵈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판관6,23).

 

이것은 기드온을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의 천사를 하느님과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 혹은 하느님의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판관13,21.22).

기드온은 그가 요청한 표징(판관6,17)을 보게 되자, 기쁘기 보다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슬퍼하면서 그 슬픔을 '아하흐'(ahah)라는 감탄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판관기 6장 23절의 '안심하여라'로 번역된 '샬롬 레카'(shallom leka)는 한글 성경에서 명령형으로 번역했지만, 원문 성경은 '너에게 평화'로 번역될 수 있는 단순 선언문 내지는 감탄문이다.

즉 '레카'(leka)는 주어가 아니라 '너에게'라는 의미의 전치사구이며, '안심하여라'는 동사 명령형태로 번역된 '샬롬'(shallom)은 '평화'를 의미하는 명사이다.


하느님께서는 두려워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너에게 평화!'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안심을 시켜 주시는 것이다.

평화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께서(이사9,6; 하깨2,9) 직접 기드온의 마음에 평화를 선언하시는 것이기에, 이것은 반드시 평화의 열매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판관기 6장 22절의 '슬픔'을 가리키는 '아하흐'(ahah)와 여기서의 '평화'를 가리키는 '샬롬'의 대조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평화와 안위를 가져다 주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심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슬퍼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또한 주님의 천사는 이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음성으로 들려진 그를 향한 '샬롬', 곧 '평화'의 선언은 기드온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판관기 6장 24절의 '주님은 평화'로 번역된 '예흐와 샬롬'(yehwah shallom; The LORD is Peace)은 직역하면 '주님은 평화이시다' 또는 '평화의 주님'이다.

지금 기드온이 자신이 쌓은 재단의 이름을 '예흐와 샬롬'으로 지칭한 것은 판관기 6장 23절에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건내주신 말씀이 '샬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와 핍박을 두려워했던 그에게 이제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드온이 주님의 천사를 뵙고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앞으로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내 이름 때문에 모든 걸 버린 사람은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란하느님의 계명곧 십자가의 대속그 진리를 인간의 계명으로 받은 그 행위그 자기 의로움명예가 큰 부자인 것그 인간의 의로움을 하느님의 의로움 그 신의 마음에 비긴 것이다그 부자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

 

(에제28,4-6) 4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5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하느님의 말씀(지혜)을 인간의 행위로 비겨 지킨 그 의로움을 구원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십계명안에 들어있는 사랑곧 십자가의 대속그 하늘의 의로움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십계명을 법으로 받아 행위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구원의 가치로 여기는 그것이 신의 의로움에 비긴 교만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인간의 의로움으로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 간다는 말씀이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인간의 계명으로 스스로가 지킨 그 크게 보이는 인간의 의로움을하느님께서는 부수셔서 바늘구멍을 통과 하도록 작게 만들어 들여 보내신다그 부수심이 우리에겐 시련인 것이다.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심판은 열두지파곧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먼저 받는 다는 것이다.


(에제9,6) 6 늙은이도 젊은이도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을 위한 신앙을 하는 그들부터 심판을 받는다그리고 이마에 표란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다(묵시14,1 참조곧 자기 의로움명예의 자기 이름이 아닌 구원의 진리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일을 완성하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말씀)을 내 이마(머리), 생각으로 믿는 이들은 구원의 심판을 받는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곧 그분의 뜻말씀 때문에육의 아버지어머니자녀의 그 세상적 생각뜻을 버린 사람은 백배(완전), 곧 완전하고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받는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보이는 인간의 의로움그 부자는 첫째 같지만나중엔 꼴찌로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많다 하시는데 그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이 아닌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의 생명과 상관없는 그 헛된 신앙의 삶에서 돌아서라’ 하시는 것이다아멘.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9,2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3-24)

 

마태오 복음 19장 23절에서 30절까지는 앞의 마태오 복음 19장 16~22절에 기록된 부자 청년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물질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삼는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경계가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려울 것이다'로 번역된 '뒤스콜로스'(dyskolos; hardly)는 영어의 'mis'나 'un'과 같이 '어려움', '반대', '방해' 등을 뜻하는 접두사 '뒤스'(dys)와 '음식'이란 뜻을 지닌 '콜론'(kolon)의 합성어로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부자가 보통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재물이라는 장애가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하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ten basilleian ton uranon; the kingdom of heaven)이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10장 23절과 루카 복음 18장 24절에서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투 테우'(ten basilleian tu theu; the kingdom of God)로 나온다.

 

양자는 모두 같은 의미이지만, '하늘 나라'는 내세적 의미가 좀 더 강하며, '하느님의 나라'는 내세적 의미와 더불어 현세적 의미가 있다.

'바실레이아'(basilleia)는 공간적, 장소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통치', '다스림' (reign; govern), '왕다운 지배권'이라는 뜻이 있는 용어이다. 

즉 부자는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통치하심에 순응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본문인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들어가다'가 미래형으로 되어 있으나, 루카 복음에서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질적인 부자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 명예나 권력을 가진 자와 같이 세속적인 측면에서 누리는 것이 많은 자는 자연히 이러한 것들에 쉽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통치를 받기도 힘들며, 또한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도 쉽기 않은 것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더 쉽다'에 해당하는 '유코포테론'(uekopoteron; easier)은 비교급이다.

즉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전자가 더 쉽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먼저 '바늘 구멍'(바늘 귀)에 해당하는 '트뤼페마토스 라피도스'(trypematos raphidos; the eye of a needle) 예루살렘 성에서 주로 밤에 이용되던 속칭 '바늘귀 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문은 입구가 너무 좁고 낮아서 낙타가 걸어서는 통과할 수 없었고, 지방이 들어 있는 물혹과 더불어 짐을 지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낙타는 모든 짐을 내려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이 문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낙타'에 해당하는 '카멜로스'(kamelos; a camel)를 '밧줄'을 의미하는 '카밀론' (kamil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소수의 몇몇 사본이 이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밧줄이 바늘 구멍(바늘 귀)을 통과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2019년 8월 20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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