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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 금요일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 사랑의 이중계명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9 조회수4,081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성인은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여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서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1독서<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

룻기의 시작입니다. 1,1,3-6.14-16.22

1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었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윈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들자,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복음<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22,34-40은 분명히 마르 12,28-34를 옮겨쓴 것이다. 그런데 마태오가 사용한 마르코 복음서는 현행 마르코 복음서와는 조금 다른 표현들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한가지 가능성을 말하면, 마태오가 주로 마르 12,28-34를 베꼈지만 부차적으로는 어록에 수록된 사랑의 이중계명 형태도 이용했을 수도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점치는 까닭은 단순하다. 세 공관 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마태오와 루카는 일치하나 마르코와는 일치하지 않는 요소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35-36(루카10.25)에는 율법학자”,“그분을 시험하여”,“선생님이 다 같이 나온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그리고 율사와 예수께서 서로 칭찬하는 말씀은 마태오와 루카에 다같이 나오지 않는다.

 

마태오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다고 함으로써 이중사랑의 불가분 관계를 명시했다. 사랑의 이중계명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자들”,곧 구약 계율들의 집약이요 기준이다. 사랑의 이중계명만큼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곧 다음과 같다.

7.12: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

9.13: 12.7(=호세6.5): “내가 원하는 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다.”

23.28: “너희는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저버리니 ...”

 

사랑의 이중계명은 예수님의 발설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로 루카복음을 드는데, 실제로는 율사가 사랑의 이중계명을 발설했다는 것이다(루카 10.27). 둘째 근거로는 해외 유다인들이 사랑의 이중계명과 닮은 율법들의 집약문을 곧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해를 어떻게 대할까? 복음서에 있는 사랑의 이중계명에는 유다교의 윤리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두 요소가 들어 있다: 율법 비판 기능이 있다. , 사랑의 이중계명과 상통하는 율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에 저촉되는 율법은 성대화하거나 폐기된다. 구약과 유다교의 그 잡다한 계율을 그리스도인들이 지키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다.

 

유다교에선 동족을 이웃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다교는 민족주의 종교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사마리아인도 이웃이요 이방인도 이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범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사랑의 이중계명에 내포된 이 두 요소는 예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율법의 집약문으로서 사랑의 이중계명은 그리스도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37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는 신명 6.5 인용문이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 19.18인용문이다. 유다교에선 신명 6.5이 레위 19.18을 함께 인용한 사례가 없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 두 구절을 함께 인용하셨을 뿐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같습니다하셨으니 그 두 가지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겠다.

 

이스라엘에서 살던 율사들도 잡다한 율법을 포괄하는 기본법을 논했다. 율사 힐렐은 황금률을, 율사 아키바는 이웃 사랑을 꼽았다.

 

40

여기서 율법과 예언자들은"은 구약 계율 전부라는 뜻이다. 같은 표현이 5.17:7.12:11.13에도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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