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22,34-4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19 조회수3,92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22,34-40)

 

 

1독서<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롯기1,1.3-6.14-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화답송 시편 146(145),5-6ㄱㄴ.6-7.8-9.9ㄴㄷ-10ㄱㄴ(◎ 1)

◎ 내 영혼아주님을 찬양하여라.

○ 행복하여라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시온아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복음<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룻기1,1-3.6.14ㄴ-16.22)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니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니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니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6.16)

 

과부 나오미가 두 아들과 함께 이방인의 지역인 모압 땅에서 십년 쯤 살았고, 그곳에서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는데, 두 아들이 죽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본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첫째 며느리인 오르파는 자기 겨레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오로지 다른 며느리 룻만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할 의지와 효도를 드러낸다.

 

'다그치지'로 번역된 '티프께이'(thipqei; intreat)의 원형은 '파가'(paga)로서 '~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심하게 재촉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매우 심한 압박을 느꼈음을 '파가'(paga)라는 동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를 두고'로 번역된 '레오즈베크'(leozbek; to leave you)의 원형은 '아자브'(azab)로서 '~을 버리고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아자브'(azab)동사는 새 성경의 '두고' 보다는 훨씬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며느리 룻이 모압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시어머니 며느리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며느리 룻은 결코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며느리 룻이 부정어 '알'(al; not)과 미완료 2인칭형 동사 '티프께이'(thipgei; urge)를 사용하여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금지 명령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는 며느리 룻의 단호한 결의와 의지를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어머니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본문은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되는 문장으로서, 앞 문장 즉 '알 티프께이'(al thipgei; don't urge)로 시작되는 금지 명령문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라서 본문은 앞 문장에 이어 단순한 병렬식으로 배열한 새 성경의 번역과 다르게 '왜냐하면 (당신이 가는 곳에) 제가 갈 것이고 (당신이 유숙하시는 곳에) 저도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가시는'(thelleki; 텔레키; you go)과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thallini; 탈리니; you stay)에 해당하는 원어의 첫 문자는 둘다 '타우'(thau)이며, '저도 가고'(ellek; 엘레크; I will go)와 '저도 머물렵니다'(allin; 알린; I will lodge)에 해당하는 원어의 첫 문자는 둘 다 '알렙'(allep)이다.

 

며느리 룻은 '타우'(thau)와 '알렙'(allep)의 반복을 통해 시어머니 나오미를 철저히 따르겠다는 자신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돌아가려무나 ~ 가거라'(룻기1,12)는 시어머니의 충고에 대해 며느리 룻은 '어머니가 가시면 저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면 저도 머물겠다'고 하는 표현을 통해 '죽어고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며느리 룻은 '평생'을 그녀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니라 시어머니 나오미의 길을 따라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는 결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머물다'는 '룬'(lun)동사는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샌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이것 역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겠다는 뜻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며느리 룻의 이런 감동적인 표현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문을 막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겨례가 저의 겨례요, 어머니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암메크 암미 웨로하이크 엘로하이'(amek ammi welohaik ellohai; you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가 원문인데, 직역하면 '당신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며) 당신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입니다)'이다.

 

'당신'을 나타내는 2인칭 여성 소유격 접미어 '에크'(ek)와 '저'를 가리키는 1인칭 소유격 접미어 '이'(i)가 '백성'(am; '암')과 '하느님'(ellohim; '엘로힘') 뒤에 번갈아 반복되고 있다.

앞에서는 두운(頭韻)을 사용하여 '당신'과 '나' 사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룻기1,15)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면에 대한 며느리 룻의 이러한 반응은 자신의 민족(겨레)이나 신(神)조차도 자신으로 하여금 시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이 될 것이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느님이 역시 자신의 하느님이 될 것이라는 며느리 룻의 이같은 발언은 사실 엄청난 희생과 모험을 각오한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족, 친척, 믿는 신(神)까지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해 왔던 울타리와 같은 모든 보호벽과 영역을 뛰쳐 나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겨례(백성)와 그 하느님께로 간다는 것은 언어, 풍습, 사고 방식, 가치관이 전혀 다른 환경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그로 말미암아 초래할 수도 있는 모든 위험과 부담을 떠안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성경에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이 54,000번 있다.

구약,신약 그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실행)것이 신앙이다.

(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부활영생이 없다고 하는 사두가이의 말을 막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 한다는 것그분의 뜻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사람,세상)의 생각 곧 사람의 목숨()을 위한 길이 아닌 하느님의 뜻하늘의 생명을 위한 그분의 길을 바라는 것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은 예수님이시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 값으로 당신 외 아드님을 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요한3,16), 그래서 죄인들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영원하게 살게 하신 것이다.

그 참 사랑참 진리의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도 첫째와 똑같다는 말씀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님그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그분들의 말씀복음을 이웃에게 전해주어그 말씀으로 이웃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그것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없다혹 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의 사랑으로 감동을 시켜도 그 사랑으로는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율법(십계명)은 하늘의 대속 그사랑 그 하나의 계명인 것이다그 사랑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열 개의 계명을 인간의 법인간의 사랑으로 지켰다면 하늘의 생명인 말씀곧 생명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이 오늘 독서에 마른 뼈들인데구원의 물(생명수-말씀)이 없는 마른 뼈들인 것이다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인 말씀이 없는 죽은 뼈들인 것이다.

그 마른 뼈죽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살릴 수 있다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늘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에제37,14)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그제야 너희는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주님의 말이다.’

 

여기서 영()은 앞36장의 새 영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제36,25-26)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부정한 것죄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한 물은 새 계약의 말씀인 피와 영성령을 뜻한다(1요한5,6-8) 곧 성령의 증언으로 더러운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로마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갈라2,16)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속의 죽음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음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미사(감사의 축제잔치)를 제사로 드리는 그 열심인 행위그리고 십계명을 열 개의 법인간의 계명으로 받아 지킨 그 인간의 가치를 세우는 것그것이 구원의 말씀과 상관없는 행위의 신앙인 것이다.

 

(아모8,11) 11 보라그날이 온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이시여 의탁하나이다아멘.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2,34-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37-40)

 

 

원문과 한글 새 성경의 단어 배열 순서가 다르다.

원문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이다.

 

원문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이 먼저 선언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 you shall lov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한없는 순종과 내면적 경외심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신명5,10), 그를 섬기며(신명10,12), 그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신명11,22).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4,15; 14,21; 1요한5,3).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장 5절의 인용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일명 '셰마'(shema)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외모'를 나타내는 '프로소폰' (prosopon)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가식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2코린5,12; 1테살2,17).

 

그리고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yche; soul)는 '호흡', '생명'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생각', '뜻', '지각'이란 뜻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가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여기서 '첫째'로 번역된 '프로테'(prote; the first)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요성의 경중에 있어서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그분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분과 친교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적, 정서적, 인격적으로 균형있고 충족한 상태로 살아가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교훈을 성심껏 순종해야 한다.

 

코헬렛 12장 13절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라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지 않고, 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과 삶의 행복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심성의껏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신명10,13).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다'에 해당하는 '호모이아 아우테'(homoia aute; is like it)에서 '아우테'(aute; it)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서 22장 38절의 여성 명사 '엔톨레'(entole; commandment), 즉 '계명'을 가리킨다.

 

'같다'로 번역된 '호모이아'(homoia; is like)의 원형 '호모이오스'(homoios)는 '닮은 사람'(요한9,9), '같은 식'(유다1,7), '같은 곳'(묵시18,18)등과 같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마태1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두 가지 의무는 어떤 면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생활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4,20)라고 말한다.

 

한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문으로서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이웃'으로 번역된 '플레시온'(plesion; neighbor)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면서 유다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루카10,29~37), 원수까지도(마태5,44)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는 마태오 복음 22장 37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여기서 '율법'으로 번역된 '호 노모스'(ho nomos; the Law)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 (Torah)을 가리키고, '예언서'로 번역된 '호이 프로페타이'(hoi prophetai; the prophets)는 예언서(Nebim)을 가리킨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라는 표현은 단지 율법서 예언서 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더불어 구약 성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성문서(Kethubim)까지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신이~달려 있다'로 번역된 '크레마타이'(krematai; hang)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직설법 중간태로서 '매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의존하다',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이다.

 

당시 랍비들은 도덕 법규들을 세분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율법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며, 거기에서 공통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이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셨다.

 

실제적으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근본 정신이기에 사랑이 결여된 율법 준수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선일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13,10), 사랑의 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로마13,9; 갈라5,14).

 

'경천애인'(敬天愛人) 혹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계명은 전체 구약 성경의 기둥이요, 핵심인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가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성 루도비코,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