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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신앙과 회복 탄력성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1 조회수2,746 추천수4 반대(0) 신고

회복 탄력성이란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심리학, 교육학, 정신의학에서도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실제로 응용만 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의 학문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응용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포괄적인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역경이나 어려움이 있게 되면 누구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바닥에서 얼마나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인 계수가 물리학으로 설명을 한다면 이런 게 항상 상수로 고정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자연계의 법칙에서는 그렇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회복 탄력성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신앙은 변곡점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 변곡점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또 슬럼프도 있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상승곡선을 이루고 있을 땐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현상입니다. 문제는 하향곡선을 그릴 때입니다.

 

세상에서도 성공을 하는 데 이룩하는 시간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무너지고 추락하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같이 무너지더라도 다시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이있는가 하면 그만 주저앉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될 것입니다. 바로 이 변수가 회복 탄력성과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개념을 신앙에 한번 적용해봤습니다.

 

신앙에서는 상수로 적용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상수로 된다면 고정이 되어 있고 누구나 똑같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일어서면 다 똑같이 일어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봐야 할 겁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일차함수이기 때문에 회복 탄력성인 계수가 높을수록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힘인 일종의 복원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며칠 전에 세면기 청소를 했습니다. 배수관에 문제가 있어서 세면대가 평소보다 물 내려가는 속도가 느리고 또 저번에 짧은 장마 기간이었지만 습한 환경 때문에 세면대가 자연적으로 조금 물때가 생겼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이면 제때 관리를 잘하면 항상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고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세제와 같은 것으로 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배수구가 문제가 있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생각보다 배수구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청소를 해도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트에서 저렴한 청소 세제를 구매했습니다. 세면대와 같은 것을 청결하게 하는 전용 세제였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전용 세제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구매를 한 후에 세제를 뿌리고 난 후에 솔로 문지르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말씀드리면 빤짝빤짝 윤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평소 간단하게 청소를 할 때의 청결한 상태보다도 더 윤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베이킹소다와 락스와 다른 세제와 혼합해서 해봐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도 깨끗하게 청소가 된 것입니다. 힘들여 청소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냥 솔로 간단하게 문지른 게 다였습니다. 저는 이때 순간 회복 탄력성이라는 개념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세면대를 보면서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기 전에는 약간 청결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게 우리에겐 하나의 죄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전용 세제를 이용해서 깨끗하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상태는 맨 처음 가공된 그 상태의 청결 수준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만약 예를 들어서 이 세제가 아주 강한 산성과 같은 부식도 시킬 수 있는 수준의 강한 성질의 세제였다면 원래 세면대의 표면을 부식시키게 돼 원래의 상태로 회복이 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의 신앙은 원래의 영혼으로 회복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호된 훈련을 하는 과정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이 아담과 화와가 죄를 짓기 전의 에덴동산에서와 같은 영혼으로의 회복을 희망할 것입니다. 세면대에 입혀진 하얀 염료 도색이 잘 입혀져 잘 도포가 되었기에 오물이 묻었어도 그 표면에 묻어진 더러운 물질을 잘 씻겨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처음엔 다 이렇게 되어 세상에 나왔을 겁니다.

 

물론 세제의 힘으로 원래의 상태로 복원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누구에게나 원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수치를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고 그 수치를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누구나 우리의 영혼은 그런 순수한 영혼으로 언젠가는 회복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100이라는 수치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신앙의 여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도 젊은 시절에는 피부가 탄력이 있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노화가 되면 세포수가 줄어들어 탄력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살면서 원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 탄력지수가 살면서 죄성으로 기우는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지수가 점점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도 그 지수가 커야 우리와 하느님과의 거리가 가까울 것입니다.

 

세면대를 청결하게 해 준 세제가 우리의 신앙에서는 무엇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영혼을 빗대어 생각해보면 우리의 영혼이 원래대로 회복되려고 하는 회복 탄력 지수를 높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영혼의 DNA 안에는 이미 누구나 이 지수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확신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는 상당히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세제와 같은 전용 세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전용 세제가 마치 고해성사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에게만 약한 아킬레스건과 같은 죄가 있습니다. 그 죄도 여러 번 되면 지치게 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 체념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근데 성사를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죄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저는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이것도 그냥은 되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눈물겹도록 부단한 노력을 했고 처절하게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 죄를 이겨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기에 그나마 그런 체험을 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죄에서 넘어져도 좌절을 하면 되지 않습니다. 좌절을 하면 이미 주저앉게 됩니다.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서서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려는 힘이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이 힘은 죄에서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원래의 회복 탄력 지수로 회복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하나의 신앙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면 아름다운 영혼이 되어 하늘나라로 회귀할 수 있는 영혼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희망만 있다면 하늘나라 가는 데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힘이 우리의 영혼에 분명히 내재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힘을 낼 수가 있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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