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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모세의 자리 (마태23,1-1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1 조회수2,95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모세의 자리 (마태23,1-12)

   위선자의 무리, 바리사이파 사람들

 

1독서<주님께서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셨다.>(롯기2,1-3.8-11; 4,13-17)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들어라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10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11 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4,13 이렇게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화답송 시편 128(127),1-2.3.4-5(◎ 참조)

◎ 보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너는 행복하여라너는 복을 받으리라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보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이렇듯 복을 받으리라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제1독서(룻기2,1~3.8~11;4,13~17)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4ㄴ,ㄷ)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룻에게 아들을 낳게 하신 분이 바로 주 하느님이심을 알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에 해당하는 '빠루크 예흐와'(baruk yehwa; praise be to the LORD)에서 '빠루크'(baruk)는 '축복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빠라크'(barak)의 수동태 분사로서 '축복을 받는', '찬양을 받는'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께서 찬미를 받으신다'는 뜻이다.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에게만 주님을 찬미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나오미와 더불어 주님을 찬송한 것이다. 룻이 아들을 낳은 사실이 그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않게'로 번역된 '히쉬비트'(hishybith; has left without)의 원형 '샤바트'(shabath) 동사가 전치사 '민'(min)을 수반하지 않고 사역 능동형 완료로 사용되어 '끝나게 하다', '그치게 하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앞의 부정어 '로'(lo)는 이 문장이 이중으로 부정된 상태임을 드러내어 강한 긍정의 표현이 된다. 

 

즉 아낙네들은 후손이 없어 영원히 그 가문의 이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을 자가 생겨 기뻐하고 있는 나오미에게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으로 축하했던 것이다. 

 

한편 대를 이을 자가 구체적으로 보아즈인지 아니면 룻이 낳은 아들인지에 관해 의견이 많지만, 룻기 4장 14절 후반절과 15절의 내용이 룻이 낳은 아들에 관한 것임을 볼 때 후자로 이해된다.

 

그리고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한 축복의 말들은 룻기 1장 21절("나 아쉬움 없이 떠나갔는데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들은 나를 나오미라 부르나요? 주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답니다.")과 상당히 대조된다. 

 

룻기 1장 21절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거의 절망적으로 표현했지만, 여기서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의 그때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이 아이의 이름'으로 번역된 '셰모'(shemo; his name)는 '그의 이름'이라는 뜻이며, '기려지기를 바랍니다'로 번역된 '웨익카레'(weiqqare; that may be famous)는 접속사 '와우'(wau)와 '부르다'는 뜻을 가진 '카라'(qara)의 단순 수동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형이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질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완료는 화자의 염원, 기원을 나타내는 권유형이므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지기를 바라노라'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 모두를 지칭한다. 

 

룻기 4장 11절의 보아즈에 대한 축복에서는 같은 지역인 '에프라타와 베틀레헴'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언급함으로써, 축복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베틀레헴 출신의 이스라엘 임금 다윗과 더 멀게는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과 '모든 계약의 백성'에게 끼칠 축복을 보여준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8/26)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세의 자리구약(모세오경)은 모두가 예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요한5,39-46) 39 너희는 성경(구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영생을 주시는 분을 깨닫고믿는 그 실행()이 아닌 사람의 규정과 교리계명으로 받아 인간의 의로움영광 그 가치를 챙기는 행위그 행실을 따라 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영생의 양식은 예수님의 길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먹는 것믿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구약의 법에서 신약의 대속으로 살리시는 그 진리의 길로 옮기는 그 일을 하지 않는 것곧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 받아 거저 의롭게 되어 하늘의 생명을 얻는 그 후하신 하느님의 계명말씀을용서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규정(계명교리로 만들어 신앙이 짐이 되게그래서 온갖 질병곧 죄의식이라는 병을 치유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인 것이다.

 

(골로1,13)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보이는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산다는 것이다.

 

(로마8,24) 24 그러나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히브11,1.3)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3 믿음으로써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율법학자바라사이파들의 육적 거만으로 거들먹거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그들은 그런 유치한 사람들이 아니였다율법을 사람의 규정과 계명교리로 열심히 지킨그 자기 의로움영광이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늘의 영생을 얻지 못하는 그 자기 의로움의 그들을 지적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것곧 차원이 다른 하늘의 의로움십자가의 대속그 예수님의 의로움이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하늘에 계신 그분 뿐이시다.

아버지는 한분흙의 그 없음의 존재인 나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의 생명을 창조하신 그 하느님 아버지 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인간의 의로움이 아닌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을 주시는그 가르침을 주시는 실체이신 그리스도 이신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게 거저주신 하늘의 의로움곧 십자가의 복음을 이웃에게 알려주는 그 섬김인 것이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고집하면 낮아지고그 자기 의로움이 구원의 가치능력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는그 자기 부인버림을 하면 높아지는 것이다그것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 길인 것이다.

 

또한 주님~! 내 뜻을 높이 세우려는 그 고집아집의 우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내 뜻을 낮추는 그 낮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천주의 성령이시여의탁하나이다아멘.

 

 

 

2015년 1월 17일 토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복음(마르2,13~17)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3,1~12)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5) 

 

마태오 복음 23장 5~7절까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적인 경건 과시(5절),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끝없는 명예욕(6절),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고자 하는 마음(7절)에 대한 대표적 예이다. 

 

'성구갑'으로 번역된 '퓔라크테리아'(phylakteria; phylacteries)의 원형 '퓔라크테리온'(phylakterion)은 모세 율법 중에서 탈출기 13장 1~10절, 11~16절,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등의 네 부분을 작고 긴 양피지 조각에 기록하여 그것을 작은 상자 속에 봉해 넣은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네 손에 감은 표징과 네 이마에 붙인 표지로 여겨라'는 말씀(탈출13,16; 신명6,8)에 근거하여, 위의 네 부분의 율법의 구절을 기록한 경문을 넣은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에 가죽끈으로 고정하여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에 힘썼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5절에서 '넓게 만들고'에 해당하는'플라튀누신'(platynusin; they make wide; they make broad)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그 성구갑의 크기를 크게 한다는 뜻이다. 

 

시행 초기인 바빌론 유배 포로기 직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성구갑을 달고 다녔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달고 다녔다. 

 

과시욕이 지나치다 못해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한편, '옷자락 술'로 번역된 '크라스페다'(kraspeda; the tassels of their garments)의  원형 '크라스페돈'(kraspedon)은 '망토 또는 외투의 가장자리에 털실을 꼬아 매달리게 장식한 작은 부속물'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5장 37~40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흰색과 청색 실로 짠, 이와 같은 부속물을 겉옷의 가장자리에 매달았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게 하는 기능을 하며, 마음과 눈이 쏠리는 데로 욕심을 따라 방종하게 살아 배신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해 주었다(민수15,39).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러한 율법의 정신을 따르려는  마음보다는, 단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게 보이려는 열망으로 '옷자락 술'을 더 크게 만들어 그것을 즐겨 입고 다녔던 것이다.

 

 

 

따뜻한 가슴과 지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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