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위선은 멍청한 자가 가는 말로의 길.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4 조회수3,588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는 살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의 의도와 상관없이 할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거짓은 좋지 않습니다. 만약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라면 지혜롭게 완곡하게 표현을 에둘러서 하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몇 개월 전에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그때 고해의 내용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고해였습니다. 이걸 고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을 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고해를 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해를 할 정도의 죄도 아니였습니다. 설령 죄가 된다고 하더라도 보통 미사 때 자비송을 할 때 이런 정도의 경미한 죄는 충분히 사해진다고 했습니다.

 

책에서도 봤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사실 직접 신부님으로부터 들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였습니다. 고민을 했지만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것도 중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다 보면 습관성이 될 우려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처음엔 저도 잘 몰랐습니다. 의도가 좋으면 그렇게 나쁠 리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근데 어느 날 일반 책을 읽다가 이와 관련된 사람의 심리에 관한 내용을 봤습니다.

 

종교에 관한 심리 서적은 아니였지만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자체의 거짓말이 문제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작은 소죄도 그런 게 습관성이 되면 죄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성향이 발현될 확률이 높을 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마 무신론자인 것 같았습니다. 만약 우리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분명 이런 내용을 언급했을 겁니다. 다만 이 저자는 일반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을 했지만 제가 봤을 땐 그게 신앙을 도외시하고 언급만 했을 뿐이지 사실 신앙적인 이야기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을 향해서 비판을 하십니다. 위선자라고 말입니다. 겉으로는 의인과 같은 행동을 하지만 그 속에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고 하십니다. 저는 가끔 한 번씩 제가 하느님 앞에 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칭찬 받는 것보다 세상을 살면서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산 것에 대한 책망을 듣게 되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누군가는 왜 그런 상상을 하느냐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적인 표현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달리 생각을 합니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천하만민 앞에서 최종 공심판 때 부끄러움과 수치를 덜 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 사람은 평소에 아니 매일의 삶에서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사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우리의 마음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말입니다. 물론 드러나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 보통은 그걸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 이게 다행일까요? 다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것이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 의인들이나 하느님과 같은 무결점의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부끄러워서도 얼굴을 들고 살기 힘들 것입니다. 나약한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언제까지나 나약한 인간이라는 변명으로 면책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의미 없는 신앙생활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몇 분 신부님들의 유튜브 강론에서 몇 번 언급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일을 다 하고 난 후에 세례를 받았더라면 하고 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근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달리 생각을 해보면 일찍 신앙생활을 하는 게 어찌 보면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한편 다르게 생각해보면 자기만 자신을 잘 관리한다면 이 세상에서 더 빨리 자신을 하느님이 원하는 몸인 거룩한 몸으로 바꿀 시간을 담보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손해보는 느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연옥 교리를 믿는 종교입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 같은 분도 잠시 연옥을 거쳤다는 강론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상을 받으신 분도 아무리 잠시라고는 하지만 잠시 연옥을 거치셨다고 한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당연할 것입니다. 연옥을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혹자는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옥보다는 안심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닐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한다면 지옥으로는 가지 않지만 그 고통은 지옥과도 같은 고통과 같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영원한 지옥이라는 곳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게 보장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얼마나 보속을 많이 해야만 연옥의 고통을 그만큼 덜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오상을 받으신 신부님도 그러할진대 우리와 같은 사람은 정말 처절하게 자신과 싸우는 보속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곳에서 지내게 될 운명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큼 우리의 영혼은 천국 문 앞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을 미리 자각하는 사람은 현명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살지 않고 진실된 삶을 살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르톨로메오에게 한 말씀처럼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고 할 정도의 삶을 살기만 한다면 천국의 문은 우리의 영혼에 아주 가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