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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님의 순교 (순교일; 8월27일)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5 조회수3,302 추천수2 반대(0) 신고



♥노비의 신분에서...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님 (순교일; 8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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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욱 [uiuihhh8] 쪽지캡슐

2020-08-24 ㅣ No.140307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노비의 신분에서...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순교일; 8월27일

          

 

                           

 

 

 

 

 

                              

 

 

       

      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순교일: 8월 27일)

 

성인명김천애 안드레아 (金千愛 Andrew)
축일5월 29일
성인구분복자
신분천민, 하인, 순교자
활동지역전주, 한양
활동연도1760-1801년
같은이름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류, 앤드류

 

 

 

 

  

 

 

 

 

 

 

고향을 알 수 없는 김천애(金千愛) 안드레아(Andreas)는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그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당시 유 아우구스티노의 집은 전주의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 김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 나갔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으며, 교리의 가르침을 굳게 지킬 줄도 알았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전라도에서는 유 아우구스티노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뒤를 이어 김 안드레아도 그의 맏아들인 유중철 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내 감영에서는 김 안드레아에게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경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김천애 안드레아의 신앙은 형조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십계명을 버릴 수는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인 만큼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전주로 압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 또는 8월 28일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 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124위 복자 자료집에서 발췌

 

 

♬♬

 

 

 

 

 

 

전라도의 사도 유항검 오스틴 댁의 노비로서 주인에게서 신앙을 배웠고

주인이 체포된 후 그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고 다시 전주로 와서 순교할 때까지 굳게 신앙을 지켜

41세로 참수 순교의 영광을 입으신

복자 김천애 안드레아 님이시여

  

저희도 현세에서의 모든 유혹을 완전히 이겨낼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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