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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의 비유 (마태25,14-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8 조회수3,39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8월 28일 토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기념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탈렌트의 비유 (마태25,14-30)

1독서<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1테살4,9-11)

형제애에 관해서는 누가 여러분에게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 사실 여러분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형제 여러분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더욱더 그렇게 하고,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98(97),1.7-8.9(◎ 참조)

◎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그분의 오른손이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소리쳐라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강들은 손뼉 치고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

○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그분은 누리를 의롭게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

 

복음<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마태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보십시오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착하고 성실한 종아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보십시오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착하고 성실한 종아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보십시오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또는기념일 독서(1요한 4,7-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제1독서 (1테살4,9-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11)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라고 권고한다.

사도 바오로는 부지런하게 일할 것을 전에도 권고한 적이 있었는데, 본문과 테살로니카 후서 3장 11절과 12절에서 거듭하여 권고한다.

 

이러한 거듭되는 권고는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에 주님의 재림이 그들 세대에 바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하여 신자들 사이에 생업의 포기와 같은 현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일상 생활에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과 신앙을 지키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집단에서 직장과 학교를 버리고 오직 그날만을 기다리며 집단 종교 생활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테살로니카 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사교 집단은 아니었지만, 당시 팽배해 있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의식으로 말미암아 일부 신자들이 생업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 자들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에게 바오로는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할 것을 권고한다.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1절은 등위 접속사 '카이'(kai)로 시작되고, 네 개의 현재 시제 부정사로 구성되어 있어,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0절의 '더욱더 그렇게 하고'라는 부정사와 더불어서 '권고합니다'라는 직설법 동사에 걸리는 문장이다.

따라서 4장 11절은 4장 10절에 논리적으로 연속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조용히 살도록'에 해당하는 부정사 '헤쉬카제인'(hesychazein; to be quiet)의 원형 '헤쉬카조'(hesychazo)는 '고요하다', '잠잠하다'라는 의미이다(사도11,18).

 

여기에서는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즉 이리저리 동요되지 않고 차분히 자기 중심을 지키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흥분되고 들떠 일상적인 일을 내팽개치는 자들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일에 전념하고'라는 표현에서 '이디아'(idia)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또는 '다른 사람과 조금도 상관없는 자기 자신만의' 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프랏세인 타 이디아'(prassein ta idia; to mind your own business)는 다른 사람의 일에 무례하게 간섭하지 말고 자기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일상적인 일을 저버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당시 교회 직원이 아닌 몇몇 형제들이 교회 운영권에 간섭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암시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사도 바오로는 그릇된 종말 사상을 퍼뜨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들에 대해 '자기 일에 전념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이 표현은 당시 그리스 세계의 노동관을 반영한다.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손으로 일한다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서 자유민들은 그것을 천박하게 여겼다.

따라서 이교도에서 회심한 자들은 이전의 이런 사상을 버리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문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권고이다.

더구나 '(제)일을 하십시오'로 번역된 '에르카제스타이'(erqazesthai)가 '힘써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힘쓰며'로 번역된 '필로티메이스타이'(pillotimeisthai)의 원형 '필로티메오마이'(pillotimeomai)는 '좋아하다','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필로스'(pillos)와  '명예'를 의미하는 '티메'(time)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본래 '명예를 좋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점차 '명예심의 동기로부터 어떤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하기를 열망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본절은 부정사 목적격을 동반한 명령적 부정사로 쓰였으므로,  '~하기를 열망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5,14-30)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5~29)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주인을 두려워했다.

그는 받은 탈렌트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과 투자로 인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채, 주인에게서 받은 자본금을 투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금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기라도 했더라면, 거기에서 이자라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이자 한 푼 얻을 수 없는 땅에 그 돈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원금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나중에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는 25절에서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로 받으십시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here you have)는 '가지다', '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2인칭 단수 동사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는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이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과 잘못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뱉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면책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로 번역된 '포네레'(ponere; wicked)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도덕적으로 사악한'이라는 의미외에도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는'이라는  의미(묵시16,2)를 지닌 형용사인데, 종이 나쁜 관리인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로 인해 주인에게 괴로움을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더군다나 그는 '게으른' 종이었다.

 

여기서 '게으른'으로 번역된 '오크네레'(oknere; slothful; lazy)의 원형 '오크네로스'(okneros)는 진보가 늦고 지체되며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이 게으른 종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주인이 기대한 진보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아르귀리아'(argyria; money)의 원형 '아르귀리온' (argyrion)은 '은'(silver)을 의미하는 명사 '아르귀로스'(argyr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은전', '은조각'을 의미한다(사도3,6; 루카19,23).

 

그 당시 화폐는 주로 은전이었는데, 주인은 그 은전으로 된 탈렌트를  '대금업자들에게' 맡겨두었다가 이자를 받게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트라페지타이스'(trapezitais)의 원형 '트라페지테스'(trapezites)는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거나 고객의 예탁금을 보관한 후 이자를 지불하는 사람, 즉 '환전상'이나 '은행가'를 뜻한다.

 

또한,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단어와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단어 둘 다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주인인 한 탈렌트나 되는 많은 돈을 여러 대금업자들에게 분산 투자했기를 내심 바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탈렌트'에 해당하는 '탈란타'(talanta; talents)의 원형 '탈란톤'(talanton)은 원래 중량을 다는 '천칭', '저울'이라는 뜻의 단어였지만, 중량의 측정 단위와 화폐 단위로 발전했다.

 

탈렌트는 무게로는 약 34kg에 해당하며(탈출38,25), 돈으로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된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탈렌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라는 단어가 희랍어 '탈란타'에서 유래한 것이며, 여기서의 '탈란타'는 '재능'보다는 '사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자'로 번역된 '토코'(toko; interest; usury)의 원형 '토코스'(tokos)는  '산출하다', '낳다'를 의미하는 동사 '티토'(tit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원래 '출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돈의 이자 '토코스'(tokos)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원금에서 증식되어 나온 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자율은 연리 8%에서 48%의 고리(高利)까지 다양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하게 규정했지만(신명23,19), 타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 하였다(신명23,20).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동족간의 거래에서도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어 '이자' 이야기를 한 것이며, 동족간 돈 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돌려받았을 것이다'로 번역된 '에코미사멘 안'(ekomisamen an)은 현재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미로 '받았어야 했다'(should have received)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서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겠다'

 

이 구절의 선언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이 악하고 게을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당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종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주인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 목적을 다른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완수한 자에게는 당연한 보상 외에 또 다른 기대치 않았던 보상을 더해 준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28절 징계적 선언이 주인의 자의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마르4,25).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각 종들에게 맡겨진 탈렌트는 그들에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알맞은 탈렌트를 맡기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사명과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든 많든, 자기비하나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1코린15,41).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어떤 열매를 원하신다고 잘못 판단해 버리고,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한번 해보지 못하고 묵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부여된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그의 은혜가 넘쳐나며 그의 심령도 성령충만으로 부요해질 것이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며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은사를 상실해 가며, 더 이상 영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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