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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글방/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마르 7;14-2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9 조회수3,738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8. 29 [연중 제22주일] 도란도란글방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마르 7;14-23)

1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은 겐네사렛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비유의 말씀이에요.

인간에 행위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조금도 도움이 안된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에 이르렀는데 제자들 중 몇명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었나 봐요.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율사들이 쫓아왔다가 그걸 보았어요. 예루살렘에서 겐네사렛 까지는 저 아래에서 끝이거든요. 그런데 일부러 예수님의 책 잡기 위해서 이 사람들이 쫓아온거에요. 겐네사렛까지요.

그리고는 올타구나하고 이제 흠을 잡아서 예수님을 막 공격한 거예요. '? 조상들의 전통(傳統)을 무시하냐' 그때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으로 응대를 하세요. 보세요.

 

마르코 7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조상들의 전통까지 지켜가면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하는 자들의 실체가 '나는 깨끗해요' 그렇게 나의 깨끗함을 자랑하려고 하는 자들의 실체가 사실은 뭐였냐면 입술로만 하느님을 존경(尊敬)하되 마음은 그렇지 않은 헛된 경배(敬拜)라는 거예요. 근사해 보이는 인간들의 행위 전체를 다 부정해 버리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코르반의 예를 드시죠. 코르반이라는건 하느님께 드린 물건이란 뜻의 맹세물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거 하느님께 드린 거예요 라는 맹세. 나중에 지키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맹세물 안에 들어가 있는 물건은 누구도 손을 못대요. 그런데 율법에는 너희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죽을 지어다라는 율법이 있거든요. 그건 율법이에요.

그런데 조상들의 전통이 '코르반'인데 '요거는 하느님께 드린 거예요'라고 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봉양해야 할 자들이 봉양을 안한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이 약속을 어겨요.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조상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코르반으로 드려진 건 부모님에게 주면 안되니까 조상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율법을 정작 어기더라는 것이죠. 말씀을 어기더라는 거예요. 조상들의 전통을지킨다고 하는 너희들의 행위가 바로 고렇다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너희들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 너희들이 진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그러는거니' 라고 확 폭로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들의 실체를... 예수님이 화가 안나겠어요?

 

여러분 인간의 율법에 대한 열심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에 대한 열심은 고작 그 정도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라는걸 지적하는 거예요.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율법을 잘 지켜서 보다 낳은 사람으로 성숙되어지고 변화되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그 율법적 열심은 결국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한 쑈에 지나지 않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걸 증명하고 우리의 다른 신앙을 자랑하기 위해 공짜로 주는 건물을 안받았다라는 바로 그 행위처럼 결국 그게 무서운 죄였던 거예요.

자랑 할만한 착한 삶이 아니라 그게 결국 가장 무서운 죄였던 거예요. 그러면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 안에 들어있는 것이 인간을 더러운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세요.

 

마르코 718-23,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주님은 지금 인간들의 율법 지킴을 음식의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음식이 뱃속에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더럽게 하거나 깨끗하게 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라는 거예요. 왜냐면 음식이 배속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가는 동안 마음에 영향을 못미치는 것처럼 육체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성경이 얘기하는 깨끗함은 마음에 깨끗함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육신의 깨끗함이 아닙니다. 그런 것처럼 율법 지킴이라는 인간의 행위도 인간의 더러움과 깨끗함의 판결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거예요. 죽을때 까지 착한 일만 하다간 더러운 자가 있고 죽을 때 까지 살인만 하다간 깨끗한 자가 있단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더럽다고 규정하는데 무엇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보세요.

 

예레미야 179-10.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너희들이 겉으로 내어 놓는 행위뿐만이 아니라 심장에서 나오는 마음에서 나오는 그 행위를 살핀다는 뜻이에요. ‘그거 자신있냐?’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은 날 때부터 더럽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깨끗하게 청소가 안 된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돼요?

 

필리비 25.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아니면 다 죽는다는 뜻이에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그러면 어떻게 열심히 노력을 해야 우리의 이 더러운 마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다라는 이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될까요? 불가능이죠. 안됩니다. 무엇으로도 안돼요. 여러분이 깨끗한 행위 몇개해도 그 마음에 전혀 영향을 못미쳐요.

더러운 행위 몇개 했다고 그걸로 더러워지는게 아니라 마음이 더러워서 더러운 거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그러면 그 마음은 어떻게 해야 돼요? 고칠수가 없으니까 바꿔야 돼요. 새 걸로 바꿔줘야 돼요. 그게 새 언약입니다.

 

에제키엘 3626절을 보세요.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우리의 옛 마음은 성령이 오실 때 하느님이 빼가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성령을 받았어요? 성령이 아니계시고는 예수를 주님이라 시인할 수 없다 그랬으니까 성령 받았죠. 성령 안 받고 여기와서 한시간씩 어떻게 듣고 있어요? 돌지 그럼... 성경은요 여러분의 행위가 어떻든 그 새 마음을 가진 자들의 행하는 모든 행위를 옳은 행실이라 그래요. 볼까요. 요한묵시록으로 가보세요.

 

요한묵시록 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아마포는 뭐라고 배웠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흰 옷이라고 배웠잖아요. 우리가 그게 아마포잖아요.

그런데 성도들이 아마포를 입었는데 그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래요. 그러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여러분이 행한 옳은 행실들을 많이 쌓아놓은 거예요? 아니면 예수님에 의를 전가받은 그 아마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은혜를 꼭 붙든 그 상태. 이게 옳은 행실이란 말입니다.

그게 야고보서에서 이야기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서의 그 행함인 거예요. 예수의 행함을 내가 붙들고 있느냐. 거기에서 나오는 행함이 옳은 행실. 그거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착한일 많이 안하면 죽은 믿음이다가 아니라... 그래서 하느님 앞에 단 한가지도 가져갈 수 있는게 없어요.

오늘날 전부 성화를 하자는 거예요. 그 성화의 과정 속에서 예수님은 늘 소외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우리가 이루는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가 튀어 나오는걸 성화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변했다구요? 내가 변한게 아니라 내가 그만큼 부인되니까 내 안에 있는 예수가 나오는 것일 뿐이에요. 내가 변하는거 아니에요.

내 껍데기가 한꺼풀 한꺼풀 고난 속에서 벗겨지다 보니까 내 안에 있는 예수가 나오는 거지 내가 변한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나를 자랑하냐 말이에요. 내가 변했다고 이게 인간들의 악마성이에요. 자기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악마성.

 

고린도전서 215절 보세요.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착하게 살아라 그런 말 없어요. 그리스도에 마음을 가졌느니라 끝. 그걸 아는 자의 행위가 예수의 행위로 바뀌어가는 거예요. 이거 알아서 착하게 사는게 아니에요. 새 마음은 우리가 누구한테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착한 행위를 열심히 해서 갖게 되는 것도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옛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새 마음을 심어 버리는 은혜의 선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한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자들이 이미 새 마음을 받은 자인 거예요. 그들에게는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약속이 되어 있고 그 속에서 누릴 영생이 이미 주어져 있어요. 그들에게 있어서 눈에 보이는 세상적 조건이나 환경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요? 함부로 고개 흔들지 마세요.

새 마음을 가졌는데 내 조건과 환경이 나에게 문제가 됩니다. 안된다고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된다 말입니다. 미치겠어요. 죽을거 같아요. 내 환경과 조건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육적 생존의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침묵이 그렇게 원망스러운 것이 될까요? 원망스럽습니다. 저도 때때로 원망스럽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육적 생존의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침묵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자기의 체면과 존재성 챙기기를 위해서 예수님마저도 살해해 버리는 삶을 살게 되겠습니까.

 

지금 새 마음을 받고 우리는 그 새 마음이 밖에서 들어오는 것으로부터는 전혀 이제 흠을 타지 못하게 하느님이 조치를 취해 놓으신게 바로 구원의 완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아는 만큼 그 은혜의 깊이를 아는 만큼 우리는 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구나 안되는 거구나' 예수님만 꼭 붙들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이야기 하시는 거예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뭘까요? 인생의 질고를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아니에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느님의 백성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 뭘까요? 율법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절 보세요.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 그랬어요. 그 짐 다 없애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데 그 지고 있는 짐이 쉽게 바꿔준다는데 어떻게 바꿔주냐 말이에요. 여기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 누구인지는 바로 고 윗절에 설명되어 있는데 한번 볼까요.

 

마태복음 1125.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 누굽니까? 유대주의자들이에요.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 율법 지켜야지 착한일 많이 해야지, 제사 잘 지내야지 구원받는 거야라고 자기들의 지혜로 구원을 정의하고 있는 자들. 그들이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에요.

어린아이는 뭡니까?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어져 있는 자들. 아버지가 해야 쫓아가는 거예요. 애기는 자기가 그 아버지 일에 뭐하나 도움이 될 수 없는 어린아이. 자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져 있어요. 뭐가? 이 자유가.

그런데 어린아이 같은 백성들에게는 열려 있다고 하는데 그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인정을 받고 자랑이 되야 돼요. 그리고 하느님 앞에도 그 율법과 행위를 가지고 가야 되기 때문에 헌금도 많이 해야 되고 선교도 많이 가야되고 착한일도 너무 많이 해야 돼. 교회 오기 싫어도 그거 때문에 와야 돼. 하느님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건 뭐예요? 짐이에요. 무거운 짐.

 

여러분 성당에 와서 예배 드리는거 이거 율법이에요. 조상들의 전통(傳統)이에요. 예배 순서 조상들의 전통이에요. 율법이에요. 전통이에요. ... 주일날 11시 미사예배 드리는거 누가 정했습니까? 교회의 전통이 정한 거예요. 유아세례 교회의 전통이에요. 다 그 교회의 전통. 이걸 지금 짐으로 갖고 오기 싫은 거 억지로 오고 있는 분들, 여러분 죄짓고 계신 거예요. 그렇다고 주일에 다 여행가라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죄를 짓고 있다니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잖아요. 여기에서 솔직히 듣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듣고 있는 분들 계시죠? 내가 여태까지 배운거랑은 너무 달라 그런데 안가면 죽인다니까 와서 앉아 있는 거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에요. 왜 짐을 지세요? 오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쉬게 하신다 그랬잖아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죠. 말씀을 배우란 뜻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라고 하는데 온유와 겸손을 배워서 너희도 온유와 겸손을 내놓아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겸손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만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어요. '죽어' 하니까 죽었단 말입니다. 그 십자가를 이해하고 그 십자가 붙드는게 바로 예수님의 멍애지는 거예요. 그거 붙들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예수의 은혜가 너무 알고 싶어서 와서 앉아 있게 되는 거예요. 이건 전통지키는게 아니라 그때는 진짜 예수가 알고 싶어 오는 거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먼저 아는 거예요. 예수의 겸손과 온유가 그 십자가가 뭔지를 먼저 배우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내가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고 이거 안하면 사람들이 나를 뭐 우습게 볼거니까, '내가 원로인데 사목위원인데 아이고 내가 그래도 이때 안가면은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우습게 볼까, 나 얼마나 폄하할까, 얼마나 뒷담화를 깔까' 이거 때문에 온다면 오지 마세요. 죄짓는거라 말입니다. 그게 그게 행위에요. 악한 행실.

옳은 행실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님에 의의 흰옷 아마포 입는 거예요. 그냥 가만히 서있었는데 입혀 주는 거예요. 그거 입고 '이거 감사해서 어떡하지 이거 감사해서 어떡하지 내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나는 그렇게 거져 입혀줘야 되는 존재일까' 이거 배워가는 거예요. 성도는요 그렇지 않고 그냥 자기의 행실을 쌓아서 자기의 자랑을 챙길려고 하는 이들 그들을 어떻게 한다고 그래요?

 

요한묵시록 2012-13. 12 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앞에서 우리에 행위에 정의를 배웠어요. 우리의 행위는 뭐예요? 예수님의 .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면 어떻게 돼요? 예수님으로 여겨주시는 거예요. 꼭 끌어안아 주시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러나 내 행위를 거기에 요만큼이라도 보태겠다고 한 사람은 그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는 거예요. 가서들 자랑하겠죠. 하느님이 계속 쳐가신다구요 너희들 심장에서 나오는 옳은 행위를 갖고 와 그때 우리가 뭘 내놓겠냐구요. 예수만 내 놓으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 예수와 십자가만 하느님 앞에 내 놓으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죽은 흙입니다. 우리가 무얼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만들어서 하느님 앞에 내 놓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여 자유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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