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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 금요일(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2 조회수3,512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1독서<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15-20

그리스도 예수님은

15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심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진토마스)

그리스도 찬가

이 단락은 본문의 언어와 구조가 색다르다. 저자가 전승에서 물려받아 나름대로 손을 댔을 개연성이 크다.

 

15

15절은 12-14절에서 언급된 구원과 죄의 용서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이해된다. 인간을 어둠의 권세에서구원하며 인간에게 죄의 용서를 베풀 수 있는 분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아드님 안에서 ,아드님을 통하여인류에게 죄의 용서를 베푸신다. 그렇다면 그 아드님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바로 15절이다.

 

그분은 ... 이시다는 관계대명사로서 앞에 나온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지칭한다. 여기서 그분은 곧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드님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모상은 성서전승에서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다. 종교사적으로는 이집트에서 임금을 신성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하기 위해 쓰던 말로 이해된다. 어떤 형상은 곧 그것이 뿌리를 둔 존재 자체를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코린 4.4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거기서 모상은 하느님의 모상을,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대한 관계를 뜻하지만, 여기 15절에서의 모상은 하느님께 대한 관계뿐 아니라 모든 믿는 이의 원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에 대한 관계를 강조한다.

 

모상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현존은 다름아닌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표현을 요한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눈에 보이는 분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신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계시라는 입장에서의 모상은 요한 1.18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계시하는 분으로 등장한다.

 

본디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5절은 천지창조의 본래 목적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창세 1,26-27;9.6에 비추어볼 때 하느님이 인간 창조에서 목표하신 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된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창조 본연의 목적에 참여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는 말한다. “그러니 어느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이제 하느님께 대한 지식에 대한 표현을 눈여겨 보아야겠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세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을 따라 새로워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바오로는 믿는 이들 또한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리라고 말한다.(2코린 3.18).

 

모든 피조물의 맏이시로다”: 이는 창조신학적 입장에서, 특히 지혜문학적 배경을 전재로 해서 보아야 한다. 지혜는 창조세계의 중개자로 하느님의 형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고는 필로에게서도 발견된다. “성서는 지혜를 정원의 식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원형의 모상으로, 세상의 지혜로 묘사한다. 필로는 모세가 자신이 이룩한 공로로 인해 하느님 권능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느님 권능의 모상이며...보이지 않는 자연세계의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서 하느님 모상에 대한 지혜문학적 측면의 이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으뜸,맏이는 직접적으로 하느님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여러 측면에서 우선권을 가진 첫아들을 뜻하는 표현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창조와 직결되어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의밀론상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의밀론상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경향을 띠고 있음은 모든, 온갖등을 사용하는 데서 명맥히 드러난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맏이는 단순히 시간적 의미에서 첫째 창조물을 가리키지 않고 오히려 무엇보다 신분,서열을 뜻한다. 이같은 측면에서 맏이.으뜸,첫째를 뜻하는 프로토스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15절의 맏이16ㄱ절과 17ㄱㄴ절에 나오는 만물.모든 것과 견주어 읽으면 더욱 깊이 이해된다(시편 89.28참조) 더폭넒게 풀어 말하면 15절의 맏이는 모든 피조물과 관련되어 창조된 세계 전체 가운데서 으뜸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가족관계법에 뿌리박은 신분,서열이란 의미가 새로운 문맥에 들어온 셈이다. 그 때문에 여기서의 창조를 단순히 출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문맥상 그분은 하느님 모상으로서 창조와 관련을 맺게 된다. 우주의 다른 어떤 요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세계가 주도되고 있음이 이 그리스도 찬가의 특징이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모든 피조물에 있다. 그분께서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라는 사실에 무게가 실려 있다. 15절을 뒤따르는 16절은 결국 모든 피조물의란 소유격의 깊은 의미를 문장론적으로 밝혀 주고 있을 뿐이다.

 

16

16절 전체의 주요 내용은 첫부분과 끝부분이다. 이 구절 전체를 주도하는 동사는 창조하다로서 그분만물과 직결되어 있다. 16-ㅁ절은 결국 모든 것을 더 섬세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모든 창조는 그리스도와 직결되어 있으며 특히 그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 이 구절의 골자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그분 안에서“,”그분을 통하여“,”그분을 위해. 이러한 수사적 나열을 통해 그리스도께로의 총체적 움직임이 매우 강도높게 묘사되어 있다. 바로 그 안에서 맏이. 으뜸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계시된다.

 

왜냐하면“: 16절을 이끄는 첫 단어로서 15절에서 서술된 내용의 근거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만물“: 여러 차원에서 이를 설명한다. ,먼저 당시 우주관에 바탕한 반명제들을 통해. 이어서 같은 낱말을 가지고 권능을 지닌 존재들을 나열하는 가운데 만물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이로써 창조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 창조의 원동력을 행사하는 분이 누구인지 나아가 창조의 목표는 무엇인지가 계시된다. 곧 창조의 원동력도 창조의 목표도 예수 그리스도임이 명백해진다.

 

창조하다“; 이 동사는 창조행위를 가리키는 전문용어로서 칠십인역, 특히 시편, 지혜서.집회서 등에 자주 나온다. 16절에서 수동형으로 두 번 사용되며 두 경우 모두 만물이 주어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의 존재 이유일 뿐 아니라 창조의 근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창조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16ㅂ절은 창조세계가 자신의 목적지인 그분을 위하여, 그분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 있음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그리스도론적인 표현이 극에 달한다. 이러한 우주론적 묘사는 창조세계의 중심이 그리스도임을 드러낸다. 이로써 16ㅂ절은 그리스도의 모상이 무엇인지 그 속성을 밝히는 임무를 띠고 있다.

 

17

앞서”: 이 전치사는 단순히 시간적 차원뿐 아니라 상황적 측면에서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계시다”: “존재하다를 뜻하는 동사는 그 뜻을 더 강도높게 표명하는 동사 존속하다로 발견된다. 특히 접두사 함께와 합성된 동사가 사용됨으로써 존재하다라는 앞의 병행구절과 움직임이 같은 내용인데도 더 생동감있게 서술된다.

 

창조된 만물의 존재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린다. 즉 창조된 모든 것의 존재 근거는 다른 어느 곳에도 없다. 그것은 다른 어떤 권력 안에서도 발견될 수 없으며 오로지 그분 안에서만 발견된다. 이러한 측면은 2,6-8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이러한 사상의 이면에는 플라톤의 창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먼저 이 모든 기본요소들을 정돈했다.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것들을 합쳐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었다. 그 생명체는 곧 모든 생명체들을 말한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든 불사불멸하는 것이든간에 하나로 만들었다.

 

18

18절 첫마디는 앞선 17절 첫마디와 똑같은 말로 시작된다. 이는 양자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로써 그분은 만물에 앞서 계시다17절 사상이 여기서도 일관성있게 지속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18절에는 새로운 의미를 담은 표현과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다. 이는 곧 새로운 주제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교회의“: 바로 앞에 나오는 몸의를 설명하는 부가어로 보아야 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소유격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15절에 나온 피조물교회라는 개념으로 대치된다. 여기서 교회는 곧 새로운 피조물을 지칭하는 것 같다. 18절에서 새로운 주제가 등장한다는 말은 다음 두 차원을 고려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직접적으로는 교회가 무엇인지가 전면에 드러난다. 간접적으로는 만물이 무엇인지가 규정된다. 이는 특히 인격적이며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조명된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관은 바오로 신학의 기본사상이다. 그의 교회관은 여러 유형의 공동체 모습과 공동체 삶의 다양성 묘사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바오로 후에 교회론은 더 구체화한다. 여기서의 특징은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의 머리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18절과 에페 4.15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볼 때 부가적 소유격 교회의는 저자가 이미 주어진 찬가에 덧붙인 표현으로, 본래 찬가에서는 피조물에 직결되었던 표현을 교회에 결부시켰다고 본다.

 

이로써 18ㄱ절은 18-20절로 이어지면서 구원론적 내용으로 발전된다. 이로써 그리스도 찬가에 앞서 서술된 내역과도 부드럽게 연결된다. 또한 중간 소절은 창조론에서 교회론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며, 구원론적 귀결로 발전한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맏이시니”: 이 표현은 이곳을 제외하면 신약성서 전체에서 묵시 1.5에만 나온다. 이는 부활을 전제한 표현이다. 바로 그 점에서 그리스도는 창조된 모든 것의 맏이.으뜸위치를 차지한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부활했다는 표현이다. 이는 다시금 “...위하여라는 동기와 연결된다. 죽은 이들, 곧 죽음을 능가하는 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분임을 표명하는 말이다.

 

첫째”: 하느님 모상 또는 만물 가운데 첫째와 같은 묘사는 콜로새에서 새롭지 않으며 이해하기도 쉽다. 2.10에도 그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 “그분은 하늘의 모든 권력과 권세의 머리이십니다그러나 18ㄱ절에서는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평범한 표현 만물의 ...”가 아니라 몸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새롭고도 놀랍다. 새로운 내용은 만물에 앞서또는 만물 가운데 첫째란 표현으로부터 교회의 머리=교회의 으뜸이라는 표현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교회의 머리라는 은유가 사용됨이 새롭다.

 

이로써 창조세계와 관련지어 그리스도께 대해 언급되었던 바가 교회에로 전이된다. 이러한 내용상 발전을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잇겠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에 알선 존재다. 만물은 그분안에서 존속한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해 존재한다.

 

19

이 구절은 전역상 난점이 있다. 무엇보다 주어가 무엇인지 가려내는 일이 급선무다. 본문에는 명시되지 않지만 하느님을 주어로 보완할 때 큰 문제는 해결된다. “충만함을 주어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이 경우 전체 의미가 모호해진다.

 

그분 안에서”; “머물다와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2.9도 이 관점에서 이해할 때 무리가 없겠다.

충만함은 어떤 결함도 용납될 수 없는 하느님께만 실존 가능한 절대적 충만서”,하느님의 온전한 현존을 가리킨다. 에페 1,23에서의 충만함도이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바오로는 긍정적 의미에서의 충만함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기꺼워하셨으며”: 그리스어 동사 기꺼워하다는 비인칭으로 쓰였지만 하느님을 행위의 주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동사와 직결된 부정법 문장은 20절에서 계속된다.

 

20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위해”; 이미 16절에 나온 그대로의 표현이다.

만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하며 우주론적인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화해시키셨도다”; 원인과 활동 영역의 관계를 드러내는 그분을 통하여로써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 쓰인 동사 화해시키다는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이 20절과 22;에페2.16에만 나오며 다른 고대 문헌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단순히 윤리적 의미에서의 화해만을 뜻하지 않고 더 근본적인 차원의 화해를 일컫는다. 이는 총체적 일치를 목표로 하는 표현으로서 그 본연의 의미는 20절 중반부에 가서 평화를 이룩하시는 가운데를 통하여 더 명료해진다. 또한 이 표현에는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스도는 우선적으로 창조의 중심이며 동시에 화해의 중심이다.

 

십자가의 피”: 희생제물을 일컫는 표현으로서 구약의 번제물과 상관되는 표현이다.

 

평화를 이룩하시는 가운데”: 20ㄱ절의 화해시키다를 더 선명하게 조명한다. 평화는 하느님과의 티없는 온전한 일치다. 여기서 이루다,만들다동사는 단순히 무엇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을 전제한 창조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된다. 이러한 새로운 창조, 곧 화해는 결국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를 때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다.

그분을 통하여”: 본문비평적으로 볼 때, 이 말이 본래 본문에 들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일종의 삽입구로 볼 수 있겠다. 이 말이 삽입됨으로써 오히려 문장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거나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화해 실현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더 선명히 밝히려는 의도에서 누가 이차적으로 본문에 첨가한 말로 볼 수 있겠다.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다”; 내용은 16ㄴ절을. 표현양식은 16ㄹㅁ을 연상케 한다(“...이나 ...이다”).

 

20절 후반부는 화해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20절은 화해시키다평화를 이룩하다라는 표현에서 절정에 달하며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찬가는 막을 내린다.

 

 

 

 

 

복음<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시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옷에서 조각을 찢어 헌 옷에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헤제.역주 정양모)

단식논쟁 - 새것과 헌 것

루카는 마르 2,18-22를 옮겨쓰면서 더러 손질했다.

 

20

기도하며는 루카의 가필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이란 없으니 단순히 바리사이들의 무리라고 보겠다. 그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

 

39

39절은 루카가 수집하여 덧붙인 말인데 새 포도주보다 묵은 포도주를 더 치는 주도를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혁신적이고 위력적인 가르침보다 유다교 전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까?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우리들의 신앙 고백에서 예수님은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라고 신앙을 고백하는데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라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만 보면 곧 그대로 알수 있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러한 물음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존재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처럼 모든 만물이 피조물이냐?”라는 물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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