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신랑과 단식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3 조회수3,545 추천수1 반대(0) 신고

 

걱정과 준비는 성질을 달리 합니다. 준비와 대비도 약간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준비라는 말을 성경에서 간혹 보게 됩니다. 준비라는 단어는 깨어 있어야 하는 내용의 복음에 나옵니다. 제가 원어에 나오는 단어는 모르지만 영어 성경만 놓고 보더라도 한글로는 준비라고 번역을 했지만 영어는 다른 의미로 준비에 해당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봤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는 사실 원어민도 구분하여 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어를 잘 아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단식의 의미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예전에 외국인과 함께한 선생은 캐나다에서 부전공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는데 한국어 구사 능력이 아주 탁월했습니다. 정말 언어 실력은 웬만한 한국인의 실력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언어로써 합니다. 유명한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입니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어로써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생각을 하기 위한 도구와 재료입니다. 음식도 재료가 풍부해야 맛나는 음식을 요리할 수가 있듯이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신랑과 함께 있을 땐 단식을 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원래는 단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따져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 것입니다.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거나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은 하는 데 있어서 그 일을 하는 분위기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상가 집에 가서는 슬퍼하고 위로를 해 주는 게 예의입니다. 결혼식장에 가서는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는 게 예의입니다. 정반대로 한다면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추측만 한번 해 볼 따름입니다.

 

사람도 언젠가는 만나면 헤어지게 되는 날이 옵니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님이 세상을 먼저 뜨시게 돼 있습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렇다고 아직 살아계시는데 그걸 미리부터 걱정을 하거나 준비를 한다면 그것도 적절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준비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하면 됩니다. 살아계실 동안엔 최대한 잘 모시려고 하는 것에만 집중을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식은 단지 음식만을 의미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단식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영적인 의미로서의 단식일 겁니다. 욕심을 절제하는 것도 단식이 해당될 것입니다. 자선을 하는 것도 단식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뻐해야 할 때가 있고 슬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2000년 전 그 당시는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복음이 기록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한번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 의미도 액면 그대로 해석할 게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역으로 우리가 떠나는 현실을 생각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떠난다는 게 사실은 헤어짐과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렇습니다. 이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 됩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다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비 신랑을 만나게 될 때 신부는 화장을 하곤 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도 화장을 합니다. 그때 그전에 화장한 얼굴로 만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번 만날 때마다 화장을 하게 됩니다. 귀찮아도 합니다. 이쁘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화장이 바로 영의 단식에 해당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가 새 부대가 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새 술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새 부대가 되지 않으면 새 술이 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새 부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새 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화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진정한 단식이고 그런 단식이 예수님과 늘 함께 있는 단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과 늘 함께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