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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3 조회수3,75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으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신교선)

콜로새 신도들에 대한 호소

12-20절에서 제시한 근본적인 내용을 이제 콜로새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자 한다.

그리스도 강생 전과 후의 대조관계는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극복된다. 화해는 인간 실존의 근본자세가 변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곧 나무랄 데 없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또한 화해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실현되었다. 인간 실존 영역에서 화해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실현되었다. 인간 실존 영영에서 화해는 얼마나 믿음에 충실한가에 달려 있다. 콜로새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은 모든 피조물에게 일어난 일의 구체화일 뿐이다.

 

21

콜로새 신도들이 악행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3.10에서 말하는 새 사람이 되기 전 이방인의 신분을 말하는 듯하다.“한때”; 22절의 이제와 대조를 이룬다. “한때는 그러했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새롭게 되었음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콜로새 신도들이 한때, 곧 구원을 얻기 전에는 이방인의 신세였음을 강조한다.

 

마음이 사로잡혀”; “마음에서또는 생각하는 데 있어서로 옮길 수 있겠다. 이로써 저자는 콜로새 공동체에 직접 말을 건다.

 

22

18-20절의 내용을 다시금 다룬다. 이 점은 화해시키다죽음을 통하여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화해시키다동사의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목적어로 여러분을을 보충하면 된다. 나아가 문법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화해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주어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주어로 봄이 문맥상 더 타당하겠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곧 그분의 세계내적 실존인 육체적 죽음을 통해 만물과 인간을 당신과 화해시키신다.

 

화해의 목표는 명료하다. 하느님 앞에서 성스러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함이다. “거룩하다는 의미는 나무랄 떼 없고 흠잡을 데 없다는 두 가지 부연설명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이같은 존재방식의 바탕은 앞서 설명했듯이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사건이다.

 

23

기초를 두고”; 사실상 머물러 있어서와 동의어로 볼 수 있다. 복음을 등지고 떠나지 않음을 뜻한다.

 

믿음에 기초를 두고 굳게 머물러 있어서”; 믿음에 인간 전실존의 바탕을 둠을 말한다.

 

여러분이 들은”; 복음이 콜로새 신도들에게 이미 전해졌음은 6절에서 언급되었다.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을 뿐 아니라 이미 열매를 맺고 있다는 데 대해, 나아가 만물의 정체 곧 창조 목적 등에 대해 언급한다.

 

바오로가 바로 그 복음의 일꾼이다. 이로써 교회의 일꾼 바오로란 다음 단락이 준비된 셈이다. 동시에 7-8절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복음<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다

루카는 마르 2.23-38을 옮겨썼는데 그 중 2.27을 뺀 것이 특이하다. 27절에서 인본주의적 법이론을 전개했다면 28절에서는 그리스도론적 근거를 내세워 안식일 자체를 문제삼는다. 본디 하느님이 안식일의 주님이신데 이승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전권을 받은 인자로서 안식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이 그리스도론적 근거는 이방꼐 그리스도 교회에서 덧붙인 것 같다. 사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안식일(토요일) 대신 일요일(주님의 날)을 축일로 지냈다.

 

3

3-4절의 말씀은 1사무 21.1-10의 이야기다

 

5

루카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 않았습니다”(마르 2.27)을 삭제했다. 즉 인본주의적 답변은 없애고 오직 그리스도론적 답변(5)만 남겨 두었다.

 

마르 2.27절에서는 바리사이들의 추궁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 것 같다. 하느님이 먼저 사람을 창조한 다음에 안식일을 정하셨다는 천지창조 신화를 상기하고 그렇게 답변하셨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하튼 27절의 말씀은 제자들이 어느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일 뿐 아니라 안식일의 뜻 자체를 밝히는 원칙적인 답변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안식일법을 상대화하고 사람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적 법이념을 내세우셨다. 요즘 말로 법률만능 사상을 물리치고 인권을 부르짖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주 안식일법 준수보다 인간애를 앞세우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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