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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7.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 / 통일 왕국의 분열[2] / 1열왕기[3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3 조회수3,606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1열왕 14,21-31; 2역대11,5-12,16)

 

한편 유다에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다스리고 있었다. 르하브암은 마흔한 살에 임금이 되어,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선택하신 도성 예루살렘에서 열일곱 해(기원전 933-916) 동안 다스렸다. 처음 세 해동안은 그도 할아버지 다윗과 아버지 솔로몬을 따라 유다 왕국을 튼튼하게 하였다(2역대 11,17 참조). 온 이스라엘에 있던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저마다 자기 고장과 예로보암을 버리고, 르하브암에게 넘어왔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르하브암은 왕권이 튼튼해지고 힘이 커지자, 주님의 율법을 저버렸다. 온 이스라엘도 덩달아 그의 죄를 뒤질세라 따라하였다. 그들이 주님을 배신하였으므로, 르하브암 임금 제오년에 이집트 임금 시삭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 그가 여러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스마야가 임금에게, 그리고 시삭 때문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저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저버려 시삭의 손에 넘긴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장수들과 임금은 자신들을 낮추며, “주님께서는 의로우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을 낮추는 것을 보시고, 스마야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자신들을 낮추었으니 내가 그들을 멸망시키지는 않고, 가까스로 난을 피하게 해 주겠다. 나는 시삭을 시켜 내 분노를 예루살렘에 다 쏟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들을 시삭의 종이 되게 하여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의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는 하겠다(2역대 12,1-8 참조).”

 

이렇게 주님께서 유다에게 은혜를 내렸지만, 그들도 북 이스라엘마냥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이 지은 죄는 자기 조상들이 지은 모든 죄보다 더 커서 주님의 격정을 불러왔다. 그들 역시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마다, 산당과 기념 기둥과 아세라 목상들을 세웠다. 또한 그 땅에는 신전 남창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그대로 따라 하였다. 사실 계절의 주기에다 바탕을 둔 가나안 종교는 풍산 예식을 포함하는데, 이 예식에서 성 행위는 중요한 상징적 자리를 차지하였다.

 

사실 당시만 해도 고대 근동에는 풍산 신의 신전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곳에 예배하러 오는 남자와 여자들을 맞아 신전 창녀와 남창들’(신명 23,18)이 있었다(15,12; 22,47; 2열왕 23,7 참조). 어쩌면 신전 매음에 관한 규정은 매우 엄격했다. 이스라엘인들의 아들과 딸들은 신전 창녀와 남창이 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신전 창녀의 해웃값이나 신전 남창의 몸값을 하느님의 집에 제물로도 사용이 일절 안 되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매우 역겨워하시기 때문이었다. 종교적 매춘은 이스라엘 신앙의 순수성과 온전성을, 끊임없이 해치는 위협이었다.

 

아무튼 르하브암 제오년에 이집트 시삭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주님의 집에 있는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을 가져갔다.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또한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모두 가져갔다. 사실 솔로몬의 번영을 누리던 옛 완국이 갈라진 뒤, 이집트는 르하브암이 약해진 틈을 타서 군대를 동원 유다를 공격하였다. 또한 이집트는 북 왕국 예로보암 임금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줄도 알았다(11,40). 시삭의 이 침략이 언제 일어났는지의 정확한 연대를,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리비아 출신으로 제22왕조(기원전 950-730)를 창건한 이집트 임금 시삭의 침략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지속적으로 점령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는 르하브암에게 엄청난 조공을 바치라고 강요하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르하브암 임금은 금 방패 대신 청동 방패들을 만들어, 왕궁 대문을 지키는 호위 군관들의 손에 그것들을 맡겼다. 임금이 주님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호위병들은 그 청동 방패를 들고 있다가, 다시 호위대실로 가져다 두곤 하였다. 르하브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물론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사이에는 여러 전쟁이 있었다. 르하브암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 그의 아들 아비얌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 임금 제십팔년에 르하브암의 아들 아비얌이 유다의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세 해 동안(기원전 915-913) 다스렸다.[계속]

 

[참조] : 이어서 ‘8. 아비얌의 유다 통치(2역대 13,1-22 참조)’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르하브암,예로보암,스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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