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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 아비얌의 유다 통치 / 통일 왕국의 분열[2] / 1열왕기[3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4 조회수4,709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 아비얌의 유다 통치(1열왕 15,1-8; 2역대 13,1-22)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 임금 제십팔년에 르하브암의 아들 아비얌이 유다의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세 해 동안(기원전 915-913) 다스렸다. 역대기에서는 아비얌을 아비야로 부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마아카인데 아비살롬의 딸이었다. 히브리 성경에는 이 아비살롬을 압살롬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비살롬을 다윗의 아들 압살롬(2사무 3,3 참조)과 동일시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는 않다. 그런데 임금은 제 아버지가 앞서 지은 죄를 모두 따라 걸었다.

 

아비얌이 임금이 된 내력은 이러하다. 아버지 르하브암은 마할랏을 아내로 맞았고, 그 다음으로 다시 아비살롬의 딸 마아카를 아내로 맞았는데, 마아카는 그에게 아비얌를 낳아 주었다. 르하브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소실 예순 명을 거느리고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두었지만, 아비살롬의 딸 마아카를 더 사랑하였다. 그는 마아카의 아들 아비얌을 임금으로 만들려고, 그를 형제들 가운데에서 첫자리에 세웠다. 르하브암은 슬기롭게 여러 아들에게 온 요새 성읍을 나누어 맡긴 다음, 양식을 넉넉하게 대 주고 아내도 많이 구해 주었다.(2역대 11,18-23)

 

그렇지만 아비얌은 조상 다윗의 마음과는 달리 주 하느님께 한결같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생각하시어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일으키시어 예루살렘을 굳게 해 주셨다. 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 사건 말고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하였으며,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다. 아비얌과 예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아비얌은 전투에 능한 정예 용사 사십만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고, 그에게 맞서 예로보암은 정예 용사 팔십만을 거느리고 전열을 갖추었다.

 

그때에 아비얌이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있는 츠마라임 산 위에 서서 말하였다. “예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은 내 말을 들어라. 너희는 예로보암이 신이라고 만들어 준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해서, 다윗 자손들의 손에 맡겨진 주님의 나라에 맞설 힘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수송아지 한 마리나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오는 자마다 사제 직무를 맡는다면, 신이 아닌 것들의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우리는 주님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을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주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지만, 너희는 그분을 저버렸다. 보라, 우리 선두에는 하느님께서 계신다. 그분 사제들이 너희를 공격하라는 나팔을 불려고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과 싸우려 하지 마라. 너희는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예로보암은 복병을 유다군 뒤로 가게 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군은 유다군 뒤에 복병을 숨기고는 그들과 정면서 맞섰다. 유다군이 돌아보니, 전투가 앞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 부르짖었다. 사제들이 쇠 나팔을 불자, 유다군은 함성을 올렸다. 유다군이 함성을 올릴 때, 하느님께서 아비얌 앞에서 예로보암을 치시니, 이스라엘 자손들은 도망쳤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군을 유다군의 손에 넘겨주시어, 아비얌과 그의 군대가 적들을 크게 무찔렀다. 이스라엘에서 쓰러져 죽은 정예 군사는 오십만이나 되었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굴욕을 당하고 유다 자손들이 이기게 된 것은, 유다 자손들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아비얌은 예로보암을 뒤쫓아 가서, 그의 성읍들, 곧 베텔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여사나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에프론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을 점령하였다. 예로보암은 아비얌의 생전에 힘을 회복하지 못하였으며, 주님께서 그를 치시니 그가 죽고 말았다.

 

이렇게 아비얌의 세력이 커졌다. 그는 아내 열넷을 거느리고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두었다. 아비얌의 나머지 행적과 언행은 여러 주석서에 쓰여 있다. 거듭 되풀이하지만,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사이, 그리고 아비얌과 예로보암 사이에도 늘 전쟁이 있었다. 아비얌 임금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말은 유다 임금들의 여러 실록에 상세히 쓰여 있다. 아비얌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사가 그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의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마흔한 해 동안(기원전 912-871) 다스렸다.[계속]

 

[참조] : 이어서 9. 아사의 유다 통치(2역대 13,23-16,14)’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아비얌,아비야,아비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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