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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5 조회수3,984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고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신교선)

24

교회를 위한 저자의 염려가 돋보이며 동시에 그는 고난받는 자로 서 있다. 에페소에 갇혀 있는 고난받는 자로 서 있다. 에페소에 갇혀 있는 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고난받는 사도라는 동기는 이미 바오로 친서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그리스도께서 아직 더 받아야 할 고난이 남아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도 자신이 겪어야 할 고난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것이다. , 사도로서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 수난으로 이끌어들여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25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파하라고”; 직역하면 하느님 말씀을 꽉 채우도록”, 하느님 말씀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말이다. 사도를 교회의 일꾼으로 뽑아 세운 목적은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또 풍요롭게 선포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꾼”; 23절에서 말한 “(복음)의 일꾼과 직결된다. “교회의 일꾼이될 수 있는 자격과 그 근거는 하느님 친히 그 사명을 사도에게 맡기셨다는 데 있다. , 세상과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종합 구원계획 안에서 보아야 한다.

 

26

26-27절의 주제는 한마디로 하느님 말씀의 신비.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이제 계시되었다. 이전과 이제를 그리스도 계시를 정점으로 대조시켜 놓고 있다. 21-22(“한때...이제”)을 연상시킨다.

 

27

이 신비가 얼마나 풍요롭고 영광스러운지를”; 직역하면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로움을”, 신비의 충만성을 말하고자 한다. 이 신비가 지니는 영광의 풍요로움은 인간 언어로 형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신비는 그리스도”, 자신인데, 그 신비 곧 그분이 이제”,“여러분 안에서밝히 계시되었다. 저자가 지금까지 인류에게 숨겨져 있던 신비가 무엇인지를 설명함에 있어 단순히 그리스도대신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데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 말씀의 독특한 성격을 이르고자 하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은 저 멀리 인간과 동떨어진 공중에 홀로 서서 또는 그러한 상태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는 분임을 다시 한번 깨우쳐준다. 따라서 하느님의 이같은 인간과의 관계 추구는 그분 신비의 특성이다.

 

28

28-19절에서 저자는 모든 사람을자신의 복음선포활동 범위에 넣는다. 그가 이 점을 얼마나 강조하는지는 28절에서 모든 사람들이란 표현을 세 번씩이나 쓰는데서 엿볼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이로 세우기 위하여”: 복음선포의 목적을 서술한 말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뒤게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받은 사명이며 의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3.10에서 나타나며, 더욱 상세한 묘사는 3,12-17에서 다시금 전개된다.

 

지혜를 다해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29

그분의 힘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의 수고와 노력은 그리스도의 힘덕분에 헛되이 끝날 수 없다. 흡사한 표현으로 그분 영광의 권능에 힘입은“(11) 참조.

 

21

먼저 콜로새 신도들과 라오디케이아 신도들을 명시적으로 거명한다.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저자가 바오로 자신이 아니라 익명의 저자임을 의식하기에 그렇게 일컬었을까?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갖가지 긴장과 노력을 일컫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말은 1.29“애써 노력합니다와 직결된다.

 

2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오로가 무엇 때문에 프리기아 지역 공동체를 위해 그토록 염려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가 알려주고자 하는 내용은 하느님의 신비다. 그 신비가 이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 신비는 그리스도 자신이다(1.26-27참조).

 

3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이 다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복음선포의 내용이며 풀어야 할 신비다. 이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인간 상호관계 곧 인격적 만남에서 오는 신비다. 콜로새 전체 문맥에서 이 신비를 해독하는 주요 용어는 깨달음”(2)지혜”(3).

 

 

 

 

 

복음<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손을 뻗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6

가르치고는 루카의 가필.

 

마르 3.1에서는 그냥 한쪽 손인데 루카는 오른손이라 고쳤다.

 

7

루카는 적수를 명시하여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라 한다.

 

8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는 루카의 가필

 

11

11절은 마르 3.6 개작.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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