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05 조회수4,344 추천수9 반대(0)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남한산성은 2개의 주장이 충돌하는 영화입니다. 하나는 명분이고 다른 하나는 실리입니다. 명분은 오랫동안 사대의 관계를 맺었던 명나라에 대한 외교입니다. 명나라는 조선의 개국과 비슷한 시기에 원나라를 물리치고 개국하였습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군인을 파병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조선은 명나라를 황제 국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의 왕은 명나라 황제의 인준을 받아야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를 공격하라는 고려의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 회군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실리는 새롭게 시작된 청나라와의 관계입니다. 명분을 중시했던 대신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청나라와 외교를 맺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나라와 외교를 맺는 것은 명나라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리를 중시했던 대신들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판단하였습니다. 이제 곧 명나라는 청나라에 의해서 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새롭게 아시아의 강국으로 등장하는 청나라와 친분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청나라는 당시 조선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분과 실리에서 조선은 명분을 선택하였고, 그렇게 병자호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본당이 속한 산을 9미터 정도 깎아야 했습니다. 산을 깎으면서 성당에는 작은 마당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마당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우들은 마당을 조금 더 넓히자고 하였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마당을 더 넓히면 그 넓어진 마당에서 본당의 행사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마당으로 만족하자는 교우들도 있었고,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더 큰 마당으로 꾸미자는 교우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동창신부들에게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동창신부들은 모두 비용이 더 들더라도 큰 마당을 만들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본당신부가 책임지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넓어진 마당은 공동체의 친교를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동창신부들의 조언을 듣고 마당을 넓히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마당에 꽃을 심으니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습니다. 11년이 지났지만 잘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임 신부님들은 그곳에 정자를 만들었고, 여름에는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하나의 기준이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또 다른 명분과 실리의 충돌을 보았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의 명분입니다. 이유는 하느님께서 안식일에는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번번이 안식일에 일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 주셨습니다. 그것도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는 도발이었습니다. 그들의 속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명분과 실리에서 예수님의 기준은 확고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시련과 고통까지 기꺼이 감수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과감하게 바꾸셨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문득 생각합니다. 나는 명분이라는 이유로 하느님의 더 큰 영광보다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닌지, 나는 실리라는 이유로 하느님의 더 큰 영광보다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닌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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